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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강 Jul 05. 2023

가만히 있으면 안 더워

오랜만에 집에 왔다. 장맛비가 하루종일 내리는 탓에 방은 수분으로 가득하다. 에어컨을 틀어서 순식간에 쾌적하게 만들 수는 있지만 후끈하고 끈적한 이 습도에 묘한 중독성이 있다. 무릎을 접고 앉아있으려니 오금에 땀이 차서 자주 무릎을 펴서 땀을 말려줘야 한다. 모기도 비 때문에 날기가 힘들어서일까. 창문을 열어놔도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옷걸이에 걸린 검은색 옷들이 수분을 머금어 한층 더 무겁고 답답해 보인다. 봄옷을 정리하지 않아서 더 그렇다. 삼단으로 접힌 매트리스 위에 벌러덩 눕는다. 매트리스를 펴놓고 눕는 게 일반적인 사용이겠지만, 삼단으로 접힌 매트리스에 눕는 게 더 푹신하다. 비록 팔과 발과 머리 끝부분이 매트리스에서 삐져나오기는 하지만 말이다. 매트리스 위에 깔아 둔 이불 역시 물을 잔뜩 머금었다. 누우면 마치 운동하고 땀 흘린 채로 다른 사람과 부대끼는 느낌이 든다. 그런데 좋아하는 사람과 부대낀 느낌이라고 할까. 쾌적하지는 않지만 불쾌하지도 않다. 에어컨을 당장이라도 동작시키면 이 오묘하게 찝찝한 상태를 벗어날 수 있다. 거기에 에어컨을 틀고 이불까지 덮어버리는 사치를 더한다면 쾌적함 속 포근함까지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에어컨 희망온도를 높여도 목이 조금 칼칼해지는 그 느낌을 지울 수는 없었다. 중학교 때 죽어라 에어컨을 안 틀어주시던 과학 선생님이 떠오른다. 있는 문 없는 문 다 열어놓고 가만히 있으면 안 덥다고 하셨다. 지금에서야 어느 정도 공감이 가지만 그래도 그때는 너무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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