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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치리치 Oct 27. 2021

엄마의 하루는 육아로만 끝나지 않는다.




   세상의 시선이 서운하다면서 친구가 말한 적이 있다.     


  “회사를 가야 일이고 집에서 하는 일은 일이 아니야?”               


  ‘어디서 많이 들어 본 이야기인데?’ 라는 생각이 들면서 친구의 일상이 걱정되는 말이었다. 사람이 늘 같은 마음으로 살 수 있겠느냐. 그날은 친구의 마음이 우울했는지 괜찮다고 생각한 일들이 갑자기 불합리로 다가왔는가 보다. 주로 우울한 날 나에게 연락을 하는 친구다. 어쩌면 내가 대나무 숲 같은 느낌인가 보다.                 

    

   “아침에 아이들을 챙겨서 어린이집에 보내면 하루를 청소와 빨래 집안일을 하면서 보내. 하다가 보면 애들 오기 전까지 앉지도 못하고 애들을 데리러 가는 시간이 되기도 해. 종종 한두 시간 정도 산책가고 커피 마시기는 하는데 그런 여유가 마음의 여유가 되지는 않더라.”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생활이 변하면서 친구는 조금 예민해졌다. 결혼하기 전에는 세상사에 관심이 없던 친구가 요즘에는 주변에 일어나는 일들을 하나하나 예민하게 이야기한다. 그만큼 본인의 삶을 좌지우지하는 일들이 많아졌다는 이야기인 거 같기도 하다. 어쩌면 신경을 써야하는 것들이 너무 많아졌다는 그런 표현일 거라고 추측한다.                    


   친구는 아이들을 키우면서 몰라도 되는 이야기를 너무 많이 알아버렸다. 원하지 않은 일들을 알게 되고 신경 쓰게 되면서 지식이 늘어나고 노하우가 늘어나니까 어쩔 수 없이 어른이 되는 건가 보다. 결혼을 하면 어른이 된다는 게 선택적인 일은 아닌 것 같다.  맑고 밝았던 내 친구는 결혼 전, 말버릇처럼 ‘철’ 들면 늙어 버린다는 이야기를 우스갯소리처럼 했었다. 친구야 너 지금 늙고 있는 것 같다.               


   지금의 친구는 나보다 어른이 되다 못해 ‘철’이 들었다. 근데 내가 걱정하는 건 ‘철’이라는 그게 ‘철’ 인척 하는 ‘우울’일까 봐서다.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사실 그게 ‘철’이 확실한 건가? 라는 의문이 든다.                              

   전에 친구가 친정에 한 달 정도 온 적이 있다. 우리는 동네친구다. 서로의 집이 걸어서 5분 거리다. 하지만 그 한 달이라는 기간 동안 얼굴 한 번을 못 봤다. 아이가 아파서 내려온 친정이었기 때문이다. 아기가 아픈 엄마가 나가서 친구를 만날 정신이 어디 있었겠는가. 집으로 돌아가기 하루 전에 친구가 전화를 했다.       

       

 

  “사실 저번 달 초에 왔어, 애기가 노로바이러스에 걸렸어. 애기가 물만 먹어도 분수 토해서 탈수가 왔는데 혼자서는 진짜 못하겠더라. 그래서 엄마한테 전화했어. 그랬더니 엄마가 집에 오라고 하시더라. 그래서 내려는 왔는데 애는 아프고 너한테 전화하면 나가서 놀고 싶어질 것 같아서 전화 못했어. 이제 괜찮아져서 내일 집에 갈 거라 가기 전에 너 얼굴이나 보려고 전화했지.” 


   한 달을 코앞에서 있었는데 친구는 돌아가기 전날에서야 연락을 했다. 이젠 어딜 가든 본인의 뜻과는 상관없이 움직이는 친구였다. ‘결혼과 육아’ 그게 친구의 발을 잡고 놓지를 않는다. 엄마가 되었다는 건 아내가 되었다는 것보다 며느리가 되었다는 것보다 삶의 무게를 더 무겁게 보이게 한다. 엄마이기 때문에 하는 걱정을 해야 되니 친구의 삶이 너무나도 버거워 보인다.

                

  혹시라도 '철' 들고 있어 친구가 늙어간다 해도 친구는 여전히 나에게는 12살 소녀다. 소녀가 지금 결혼 안 했으면 엄마가 해주는 밥 먹고 부모님 집에서 그렇게 살았을 텐데 이젠 엄마가 되었다. 그 소녀가 엄마라는 무게를 잘 버티고 있는지 괜찮은 것인지 물어보고 싶지만 긁어 부스럼일 것 같아 만나면 그냥 하하호호 한다. 나를 만나는 순간만은 소녀로 만들어 주고 싶다.  

   

           

   가끔은 결혼을 하지 않은 나의 인생이 완성시키지 않은 여백의 그림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 그에 비하면 소녀인 내 친구의 그림은 매일매일 달라지는 풍경화 같다. 그 그림에 비도 오고 천둥도 치겠지, 완성되지 않는 그림보다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하는 풍경화가 더 예쁘고 아름답고 기대되니, 친구야 삶의 버거움보단 기대감을 서두에 넣고 힘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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