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살 강단
“아으~ 어젠 비 오더니 날씨 좋네.”
조용하고 차가운 공기를 지나 따뜻한 햇살이 커튼 사이로 들어온다. 날씨 감탄만 하고 다시 포근한 이불 안으로 더 파고 들어가는 강단이다. 평일 아침엔 엄마의 ‘아침 먹고 학교가’라는 말이 알람과 함께 귓가에 울린다. 하지만 주말은 학교 갈 일이 없으니 확실히 조용하다. 한데 오늘은 유난히 더 조용한 주말 아침이다.
‘엄마랑 아빠는 어디 갔나. 전화해볼까.’
전화해 볼까 생각만 하고 포근한 이불의 무게를 느끼며 다시 이불속으로 들어간다. 발가락을 꼼질이며 '춥다 추워' 라고 생각하다 스르륵 눈을 감긴다. 사실 수능이 끝난 이후로는 급한 일 이 없어서 강단의 마음이 평화롭다. 하루하루를 그냥 보내고 있는 수능이 끝난 평범한 고3이었다. 수능을 보기 전에는 수시에 붙어서 대학생활을 준비하는 친구들의 일상이 부럽기도 했다. 하지만 강단은 그 순간에도 수시에는 미련이 없었다.
고등학생이 되고 첫 학년을 보내며 강단은 학종(학생 종합평가)에 진저리가 났다.
강단은 내색한 적은 없지만 학교라는 공간에 불만이 있었다. 사람은 능력이 다 다른데 같은 지식을 투입시키고 시험이라는 결과로 학생의 능력을 점수로 나열한다는 것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학업능력을 평가하고 등수가 매겨지는 평가방식에 불만이 있었다. 하지만 다들 그렇게 살고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문제를 불만이라고 입 밖으로 내뱉을 필요는 없었다. 말해봐야 이상한 사람이라 보이는 것이 당연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말한다고 바뀔 것도 아니란 것을 알고 있었다. 어차피 학생의 신분은 그런 것이라 생각했고 체념을 했다.
근데 그 점수를 매기는 시험도 짜증이 나는데 학종은 잘난 부모님을 못 만났다는 것에 대한 말도 안 되는 아쉬움을 생각하게 했다. 각종 경시대회, 학교 밖에서의 활동들을 하면서 남보다 잘난 증빙 서류들을 가져야 했다. 잘난 부모님을 만난 잘난 친구들이 가져오는 학종에 기제 되는 항목을 보면서 부러움이 생겼다. 잘난 부모님을 둔 친구들이 부럽다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순간 강단은 이건 아니다 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수능으로 대학 간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강단의 결심은 이름만큼이나 강단 있었지만 성적은 딱 평범했다. 평범한 집에 평범한 일상을 보낸 평범한 학생이었으니 평범한 성적이었다. 특출 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엄청 쳐지지도 않게 학교 내신에 충실했고 평범하게 정시를 준비했다.
평범했던 것이 어쩌면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강단이다. 적당한 국립대에 들어갔고 만족하는 결과였다. 물론 인 서울 했다면 좋았겠지만 강단은 지방에 국립대도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우선은 등록금이 저렴했고 집에서 다닐 수 있었다. 그다지 유복한 집이 아니었기 때문에 부모님께도 부담을 덜어 드릴 수 있었다.
입학은 3월이니 3개월 동안 알바를 하면서 어느 정도 등록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한 살 밑에 동생이 있었고 학업에 소질이 있는 동생의 내년 대학 입학금을 예상한다면 일반 가정에서 힘든 일이고 학자금 대출도 피할 수 없는 사항이었다. 강단은 부모님께 부담보단 자랑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강단은 오늘부터 알바를 시작하기로 했다.
“아이씨, 늦었잖아!”
어제 전화를 했을 때 사장님이 네 시까지 오라고 했는데 눈을 떠보니 세 시였다. 별로 한 것도 없는데 주중에 노는 것도 피곤했는지 잠깐 눈을 감는다는 게 늦잠을 자버렸다. 알바를 하는 곳은 집에서 30분 정도 거리에 있는 아귀찜 식당이었다. 다른 알바도 많았지만 강단은 식당일이 힘든 만큼 시급이 괜찮다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까지 평이하게 살았던 삶에서 돈 벌기가 얼마나 힘든지 스스로 느껴 보고 싶은 마음에 알바를 식당으로 구했다. 연 말이라 회식이 많고 유명 맛집이라 손님도 많다고 해서 살짝 겁이 나기도 했다. 하지만 처음 돈을 번다는 생각에 스스로가 기특한 기분에 설레였다.
강단은 정신없이 준비를 한다. 날개뼈까지 길게 기른 검은 머리를 대충 묶어 올리고 화장실로 뛰어 들어간다. 거울에 비친 핏기 없는 얼굴을 바라보며 폭풍 칫솔질을 대충 끝내고 허둥지둥 나와 검은색 기모 레깅스를 급하게 주워 입고 전날에 입고 나갔던 기모 후드티와 패딩을 주워 입고 남색 스니커즈를 대충 발끝에 걸고 뛰면서 신고 나간다. 오랜만에 미친 듯이 달린다. 어제 내렸던 비 때문인지 오늘 공기가 유독 차갑다.
‘진짜 춥다. 이제 올해도 한 달 남았네 드디어 어른이 군아!’
“어? 어어!!”
눈앞에서 버스가 지나간다. 버스 탔으면 5분이면 될 거린데 시작부터 좋지 않아서 살짝 짜증이 났다. 하지만 30분 거리 정도야 뛰면 늦지 않게 도착할 것이라는 계산으로 뛰기 시작한다. 겨울 공기에 얼굴이 차갑다. 뛰기 시작하니 몸은 덥고 얼굴은 차갑다. 그래도 스스로 돈을 벌게 된다는 기분에 설렌다. 뛰어가면서 별생각이 다 든다.
'어제 커피를 너무 많이 마신 게 문제야. 원뿔원에 미쳐서 그걸 다 마셨더니 잠도 못 자고.. 다시는 그렇게 마시지 말아야지.'
‘늦지는 않겠지? 체력이 저질이네 아오 숨차, 헬스장 등록할까.’
본인이 어떤 길을 가고 있는지 한 치 앞도 모르는 19살 강단은 그렇게 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