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살 이혁
대학 합격의 결과가 나오자 단이가 알바를 시작했다.
어릴 때부터 봐왔던 단이는 자립심도 강하고 생각도 깊었다. 단이는 혁이에게 고3 초반부터 대학에 합격하면 등록금은 본인이 벌어서 내겠다고 말했다. 그렇기 때문에 단이의 알바는 혁이에게는 당연히 예상되던 일이었다. 하지만 단이와 함께 할 19살이 얼마 남지 않았는 생각에 혁이는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대학교도 다른 학교를 가게 되었고 왠지 모를 서운함을 지울 수가 없었다.
하지만 혁이는 단이에게 서운하다 말하지 않았다. 혁이는 단이에게 오래된 친구였다. 하지만 단이는 혁이에게 단순한 친구가 아니었다. 어쩌면 표면적 친구이기 때문에 혁이가 단이에게 놀아주지 않아 서운하다고 말을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말을 들었을 때 혹시라도 본인이 감추고 있던 마음을 단이가 알게 될까 혁이는 겁이 났다. 그래서 혁이는 서운한 마음을 단이에게 말하지 않았다.
혁이에게 단이가 단순한 친구가 아니었던 건 고등학교에 올라오면서부터 였다. 그때 혁이는 본인이 단이를 그냥 친구로 보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혁이가 느끼기에 단이는 혁이를 이성으로 느끼는 감정은 없어 보였고, 단이를 향한 일방적인 마음이 친구사이조차 유지하기 힘들게 만들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혁이가 단이에 대한 본인의 마음을 인지 했을 때 단이에게 마음을 말해볼까 라는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니다.
그런 생각을 하며 혼자 고민했을 때쯤 고백에 의지를 접게 하는 단이와 의 대화가 있었다.
고1 겨울 방학이었다.
걸어서 5분 거리에 사는 단이는 종종 혁이의 집에 놀러 왔다. 둘은 그렇게 10년을 지낸 사이였다.
“추워! 추워.”
“겨울이니까 당연하지.”
“너 봉사할 동은 어디서 할 거야?”
“너 어디서 할 건데 같이 가자.”
“알았어 알아보고 얘기해줄게. 야! 우리 반 지수가 너 좋아한데. 알고 있었어?"
"지수가 누구야?"
"너는 뭐 게이야? 여자애들한테 관심이 없어?"
"아니... 나는 내가 관심 갖고 보는 사람만 봐... 내가 뭐 여자애들 다 알아야 되냐?"
"아니 그건 아닌데 그래도, 너도 듣는 귀가 있을 거 아니야. 우리 반애들도 많이 알고 있다던데? 나도 좀 늦게 알긴 했는데 내가 너랑 친하니까 나한테 얘기한다면서 지수가 직접 연락했는데? 너한테 말해 달라는 거겠지?"
"걔는 뭐 그런 걸 너한테 말하냐? 난 별로 신경 쓰고 싶지 않은데?"
“하긴 뭐 그게 지금 중요하겠어? 한가하게 연애하고 놀러 다니는 건 여유 있는 애들이나 그렇게 하는 거지.”
단이는 친구인 혁이를 좋아하는 지수 이야기를 하면서 혁이를 당황시키고 장난을 치려고 말을 꺼냈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학생에게 있어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마음이 단이에게는 ‘여유 있는 애들’이 하는 사치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했다면 속 이야기를 하지 않았겠지만 혁이랑 하는 대화라서 단이는 그냥 생각이 나는 대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왜 얘기가 그렇게 돼?”
“맞지 않아? 우리는 고등학생이고 대학교도 가야 되고, 해야 할 게 너무 많잖아. 그러니까 연애한다는 게 학생한테는 좀 사치잖아?”
“그래도 요즘에 애들 많이 연애하잖아? 선생님들도 그냥 두는 분위기던데… 뭐, 학생은 감정도 없냐?”
“뭐야 너 여자한테 관심 없다면서 무슨 이제는 또 감정 타령이냐?”
“내가 언제 여자한테 관심이 없다고 했냐, 나는 내가 관심 가는 사람한테만 관심 있다고 했지.”
“어쨌든 나는 지금 연애는 좀 아닌 거 같아. 그리고 너 저번에 너네 반 애들 사귀다가 헤어져 가지고 걔네둘, 정말 친했었는데 모른 척하고 지내는 거 봤지? 걔네 앞으로 어쩔라고 그런 거야? 난 아무튼 친구끼리 사귀는 건 아닌 거 같아.”
혁이의 고백하면 어떨까 하는 ‘혹시나’하는 마음이 ‘안 되는 거는구나’라는 확신으로 바뀌는 시점이었다. 그날을 기점으로 혁이는 고백이라는 단어를 잊었고 그 덕에 지금까지 단이에게 혁이는 친한 친구로 남을 수 있었다.
그렇게 2년이 지났고 19살 10대에 마지막 겨울을 보내고 있다.
단이는 첫 알바를 결정하고 걱정을 했었다. 알바를 시작하고도 한 동안은 일이 어색해서 그랬는지 집에 갈 때 종종 혁이에게 전화를 해서 그날의 알바 이야기를 하면서 집에 갔다. 혁이는 그런 단이의 전화를 좋아했고, 하루 중 기다려지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집으로 갈 시간인데 전화가 없다. 혁이는 단이가 궁금했다. 결국은 혁이가 단이에게 전화한다.
“어디야? 아르바이트 끝났어? 밖에 추워? 나는 집이지. 그냥 있어. 운동도 갔다 왔지. 요즘 운동 완전 제대로 하잖아. 근육은 조금 생긴 거 같아. 3일 만해도 근육 생기거든 너는 뭘 몰라. 집에 도착하려면 얼마나 더 가야 돼? 아니 너 심심할까 봐 전화한 거지. 경보는 무슨 다리도 짧은 게. 오늘 일하는데 사람은 많았어? 안 힘들었어? 아니, 알바 하긴 해야지. 지금은 별로, 나는 뭐... 천천히 하려고, 안 되면 뭐. 공장 가야지. 글쎄? 안 뽑으면 뭐 어쩔 수 없고...
"여보세요? 어? 아르바이트 끝나고 집 가는 길, 어. 좀 춥네? 넌 어딘데? 집? 집에서 뭐하는데? 그냥 있어? 운동은? 운동 다닌다더니 근육 좀 붙은 거 같아? 뭐야~ 구라 좀 치지 마 말도 안 돼. 어떻게 간지 3일 만에 펌핑이 되냐? 내가 암만 몰라도 그 정도는 알거든? 암튼 꼴통 새끼, 웃겨. 응? 집 도착하려면? 한 10분은 더 가야 돼. 아! 왜 심심해? 나 심심할까 봐 전화한 거라고? 나 안 심심한데 경보 수준으로 노래 들으면서 집에 가는데 뭘 심심해. 오늘 알바? 괜찮았지. 뭐 별거 있냐? 맞아. 썐척해봤어. 응 근데 진짜 할만하기는 해. 처음에 걱정했던 거랑은 좀 다르더라고 식당이 힘들다고는 하던데 내가 다른 건 안 해 봐서 강도 차이를 모르겠네? 너는? 알바 안 하고 운동만 하려고? 알바 하긴 할 거라고? 근데 빨리 잡아야 하지 않을까? 나중 되면 자리 없을 것 같은데? 공장 가서 일한다고? 그건 식당보다 더 힘들 거 같은데? 그건 거의 출근이잖아? 그리고 단기는 잘 안 뽑는다고 하던데?... "
단이랑 통화하면서 혁이는 나갈 준비를 했다. 단이가 알바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끝에는 조금 어두운 골목이 있다. 혁이는 그 골목이 늘 신경 쓰였다. 그래서 오늘은 단이도 볼 겸 그 골목 끝에서 단 이를 기다리려고 한다. 왠지 좋아할 것 같은 단이의 반응을 상상하니 길을 걸어가면서 마음이 두근두근 했다. 괜히 엇갈리면 안 된다는 생각에 골목 끝에 서있었다.
"엄마야!!"
단이는 골목 끝에 혁이가 있을 것이라고 예상을 못했고 혁이를 보고 소리를 질렀다. 단이가 소리 지름에 혁이도 덩달아 당황했다.
"야. 야! 나야 뭘 그렇게 놀래"
단이의 표정이 엄청난 일이 벌어진 것 같은 토끼눈으로 미간에는 인상을 쓰고 신경질 적인 표정이라 기다린다고 말할 것을 이라는 후회가 들 었다.
"아씨! 너는 왜 거기 서있어. 아니?! 방금까지 나랑 통화했잖아?"
"어... 아 그냥 몸이 찌뿌둥해서 산책 나왔지"
깜깜한 골목을 지나 올 네가 걱정돼서 마중 나왔다는 얘기를 할 수가 없어서 그냥 산책 겸 나왔다는 변명을 어설프게 둘러댔다
"뭐야 진짜~ 나오면 나온다고 말을 하던가, 날도 추운데. 놀랐잖아!!”
단이는 타박을 하면서 혁이를 때리기 시작했다. 단이는 목소리도 카랑하지만 손도 제법 맵다.
"야야! 그렇다고 뭘 때리고 그래 아파! 너는 네가 여자라고 생각하는 거야? 여자가 때려도 아프다고!"
추워서 발그래해진 단이에 얼굴이 부끄러운 모습 같아 보이는 건 착각일까? 하는 생각이 들며 그렇게 단이의 온갖 타박을 다 받아주는 혁이는 혹시라는 괜히 기대를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