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하고 나하고 만든 감자밭

주말농부일기(2023년 3월 25일)

by 석담

도심 곳곳에는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도시인들의 메마른 가슴을 적시는 이 좋은 계절에 주말 농부는 더 바빠졌다.

봄비 내리고 나서 며칠째 찌푸린 하늘이 못마땅하지만 그렇다고 할 일을 팽개쳐 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늦은 아침을 챙겨 먹고 주말 농장이 있는 청도로 향했다.

누렇게 황사에 찌든 하늘만큼이나 몸이 무겁다.

빌리기로 예약해 둔 두둑을 만드는 관리기를 끌어다 놓고 시동을 걸어 본다. 작년에 한번 다뤄본 농기계라 쉽게 작동하리라 생각하고 덤벼든 것이 사단이었다.

시동은 쉽게 걸리는 듯했는데 밭을 가는 쟁기가 도대체 돌아갈 생각을 안 했다. 잠시 털털 거리던 기계음도 곧 멈춰 버리고 속수무책이었다.


텃밭농사의 멘토 격인 동네 형님에게 긴급한 SOS를 타전했다.

"쟁기가 작동을 안 합니다. 형님"

"작년에는 잘하더구먼 안되나?"

나의 구세주 동네 형님은 들에서 약을 치는 중이라 했다.

농막 앞에서 멍 때리고 있기를 얼마였던가?


동네형님이 도착해서 간단하게 시동을 걸고 쟁기 작동하는 것까지 해주고는 가셨다.

혹시라도 시동이 꺼질까 노심초사하며 관리기를 몰고 앞으로 나아갔다.

초보 농부 인증이라도 하는 것일까?

분명히 앞으로 나아간다고 생각했는데 지나온 밭고랑을 돌아보니 트위스트를 추는 구렁이 형상이다.

그래도 '이 정도는 괜찮지'라며 스스로를 위로하며 300평이나 되는 밭의 두둑을 만들었다.


제멋대로 나아가려는 관리기를 힘으로만 잡아 돌리니 팔목이며 어깨가 레슬링이라도 한판 한 것처럼 뻐근하고 힘이 들었다.

일단은 이랑을 다 만들었음에 만족했다.


본가에 들러 어머니를 모시고 와서 싹틔우기를 해둔 씨감자를 잘라 심었다. 엄마는 심고 나는 비닐 멀칭을 하고 제초매트를 깔았다. 제초매트는 작년에 썼던 걸 재활용했다.

감자는 가장 많이 식용으로 애용하는 수미감자와 분이 많은 두백감자, 그리고 속이 붉은 홍영이라는 품종의 감자도 올해 처음으로 심었다.


세 고랑을 심고 나니 해는 어느덧 뉘엿뉘엿 서산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나는 또 욕심을 내어 엄마에게 완두콩도 심자고 제안했다. 엄마는 농사에 관한 한 거절하는 법이 없다. 완두콩 한 고랑을 심고 나자 해가 졌다.

이번주에 해야 할 농사가 다 마무리되어 마음이 가벼웠다.


본가에 엄마를 모셔다 드리고 여유롭게 밭 주위를 둘러보았다. 지난주에는 볼 수 없었던 여러 가지 꽃들이 눈에 들어왔다. 수선화의 노란색이 유난히 밝아 보였고 튤립도 어느새 자라 꽃봉오리가 맺혔다.

올해는 튤립이 만개한 주말 농장이 기대된다.


해마다 맛있는 살구 열매를 선물하던 살구나무도 꽃이 만개했고 매화, 자두꽃이 덩달아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눈으로 보는 즐거움과 입을 즐겁게 해주는 맛난 열매를 베푸는 유실수의 역할은 항상 고맙고 소중하다.


장마가 오기 전에 감자밭에서 수확할 튼실한 감자를 생각하니 피곤함도 즐거움이다.

완두콩은 또 어떤가?

밭에서 수확하여 갓 쪄낸 파란 완두콩의 단맛과 그 식감은 먹어보지 않고는 그 맛을 논할 수 없다.

도시 농부 삼 년 차의 고단함도 이제는 이력이 났다.

내 든든한 노년의 유희는 이곳 주말농장에서 시작하고 그 열매를 맺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