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래 긴 밭을 갈고 나니 단비가 내리네
주말농부일기(2023년 3월 11일 - 12일)
by
석담
Mar 12.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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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기상 본격적인 봄이 시작되는 춘분이 가까워오면서 주말 농부의 일상도 바빠졌다
.
흙을 일구고 씨 뿌릴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주말 밖에 시간을 할애할 수 없는 주말농부에게는 금쪽같은 시간이다.
봄이 되면 퇴비와 거름을 하고 밭을 갈아서 기름진 밭을 만들어야 하고 그러한 준비과정은 한 해 농사의 성패를 좌우한다. 그리고 3년간 주말 농장을 하면서 터득한 농사의 핵심은 타이밍(시기)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농업 진흥청에서 만든 텃밭작물 재배 캘린더를 보면 매월, 그리고 계절에 따라 심어야 하는 작물이 정해져 있다.
그 시기와 계절을 거스르고 심어서 제대로 된 농작물을 얻을 수는 없다는 이야기이다.
감자는 장마가 오는 여름 전에 수확해야 한다. 파종 시기가 늦어져 4월이나 5월에 심는다고 가정하면 장마에 감자가 썩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3월에는 아직 겨울의 추위가 채 가시지 않은 계절이라 추위에 강한 감자와 완두콩이 제격이다.
우리 밭에는 반찬으로 즐겨 먹는 수미감자와 분이 많은 두백 감자, 그리고 속살이 붉은 홍영이라는 감자를 심을 예정이다.
또한 완두콩은 내가 좋아하는 최애간식이다. 삶아서 하나씩 까먹는 재미도 쏠쏠하고 밥 할 때 얹어서 완두콩밥을 해도 맛있다.
이 두 가지 작물은 3월의 꽃샘추위도 이겨낼 정도로 추위에 강한 식물이다.
일요일에 비 예보가 있어서 토요일 아침부터 바쁘게 움직였다. 오후에 트랙터로 밭을 갈아 달라고 동네 형님께 부탁해 놓은지라 마음이 바빴다. 물론 공짜는 없다.
소정의 수고비를 이미 준비해 왔다. 그 형님은 3년째 우리 밭 로터리 작업을 해주고 계신 고마운 분이다.
이미 밭에 심겨 있던 봄동을 농막 앞의 빈 밭으로 옮기고 지난 주말에 옮겨둔 50 여포의 퇴비를 개봉하여 밭 전체에 이리저리 흩 뿌렸다. 20킬로그램의 퇴비를 50번이나 들었다 놨다 하고 나니 어깨가 뻐근해졌다.
그래도 6월이면 수확할 튼실한 감자를 생각하니 힘이 들지 않았다.
오후 3시가 되자 웅장한 기계음을 울리며 트랙터가 밭으로 들어왔다. 숙련된 솜씨로 동네 형님은 밭 이 끝에서부터 시작하여 맞은편 저 끝까지 구석구석 흙을 갈아엎었다.
트랙터에 달린 쟁기처럼 생긴 쇠붙이가 땅 깊숙한 곳의 흙까지 뒤집어서 갈아 놓았다.
채 한 시간도 되기 전에 3백 평의 밭이 깔끔하게 일궈졌다.
밭 가장자리의 흙을 밟아 보니 푹신푹신한 스펀지를 밟은 듯 발이 쑥쑥 아래로 내려갔다.
동네 형님께 감사의 표시를 하고 나는 이번 주에 해야 할 가장 큰 과제를 마쳤다.
느긋한 마음으로 밭을 산책했다.
지난주에 보았던 튤립들과 상사화, 그리고 수선화가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자라 장관을 이루었다.
하천 옆에 작년에 심은 매실나무가 예쁜 매화를 보여 주었다. 광양 매화 축제에 비길 바는 아니지만 내게는 이 봄에 소중한 매화이다.
밤늦게 까지 송혜교 배우가 주연으로 나오는 인터넷 영화를 보았다. 이제 학폭이 좀 줄 것 같다는 엉뚱한 상상을 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창문을 비집고 들어 온 햇살의 눈부심에 눈을 떠야 했다.
"어라, 오늘 비가 온다고 했는데 해가 쨍쨍하네."
맑은 날씨에 이렇게 실망해 보는 것도 의외이다. 내가 농부라서 가능한 일이다. 나도 이제 슬슬 농부의 기운이 몸에 밴 것인가?
어제 비료와 퇴비가 흙과 섞여 로터리 작업이 끝났다.
여기에 수분이 들어가서 잘 발효되고 부숙 되면 이보다 더 좋은 토양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오후가 되면서 날씨가 급변했다. 태풍 같은 바람이 불고, 천둥과 번개가 치고, 굵은 빗줄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단시간에 많은 비가 내려서 대지를 촉촉이 적셨다.
비에 젖은 밭을 보면서 나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올해 농사도 이제 시작이다.
2주 후에 감자와 완두콩 파종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봄농사 시즌이 시작될 것이다.
오늘 일기예보가 너무 정확해서 놀랐다.
문득 인터넷 영화 속 기상캐스터가 학폭이었던 게 생각났다.
그리고 강풍 불고, 천둥 치고, 소나기 내리는 오늘 날씨가 그녀의 성격과 닮았다고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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