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비가 되어 내리고 얼음이 녹아서 물이 된다는 절기인 우수(雨水)도 지났으니 봄을 기다리는 농부의 마음이 바빠졌다.
주중에 주문해서 벌써 도착한 사과대추나무 묘목도 식재해야 하고 지난 주말에 미뤄 둔 비닐 걷는 작업도 이번주에는 마무리 지어야 한다.
주말 농장에 도착하자마자 수요일에 택배로 도착한 후 부모님 댁에서 더부살이 신세였던 사과대추나무 묘목을 데려와 토질 좋은 농막 앞 언덕 옆의 공간에 심었다.
심기 전에 너튜브를 보고 식재절차를 숙지한 후 정성 들여 심고 물도 충분히 주었다. 그리고 두둑도 높게 쌓아 주었다.
3년생 결실주라 했으니 올해에 어떤 식으로든 열매를 볼 수 있으리라 기대해 본다.
오늘은 아내가 큰 딸애를 데리고 청도에 왔다.
본가에 들러 어머니를 모시고 우리 농막을 찾았다.
어머니는 밭 주변에 흉물스럽게 쌓여 있던 검정비닐 쓰레기와 퇴비 포대를 정리하셨다.
멀칭 비닐을 걷으면서도 나는 뒤통수가 뜨거웠다.
내가 게을러서 어머니를 귀찮게 해 드린 것 같아서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아내는 농막 앞의 꽃밭에 있는 잡초 뽑기에 돌입했다.
작년 봄 농막 앞에서 펼쳐진 꽃들의 대향연을 추억하며 올해도 아름드리 꽃들의 축제를 기대하고 있으리라.
그녀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어머나, 여기 튤립 싹이 올라와요!"
그랬다. 그곳에는 아기 손톱만큼씩 튤립의 잎들이 올라와 있었다. "근데 난 왜 못 봤지?"
작년 가을에 수확해 밭에 묻어 둔 무를 꺼내었다. 그 혹독한 겨울을 지나왔는데도 불구하고 무는 여전히 싱싱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칼도 껍질을 깎아 내고 한입 베어무니 여전히 예의 그 달착지근한 무의 본연의 맛이 느껴졌다.
'내돈내산'이 아닌 '내밭내무'라 그런지 유난히 달게 느껴졌다.
지난가을에 배추밭에 심었다가 얼어 죽은 줄 알았던 쪽파가 새파랗게 살아서 올라오고 있었다.
신비롭기만 한 식물의 생명력에 다시 한번 놀랐다.
부직포에 덮인 채 겨울을 난 봄동의 파란 잎들도 봄볕을 맞도록 부직포를 걷어 버렸다.
꽃샘추위에 얼어 죽는 일이 없기를 빌면서.
아내는 딸아이와 장인어른 저녁 해드리러 떠나고 어머니도 본가로 모셔다 드리고 다시 혼자가 되었다.
쉬지 않고 비닐을 걷었는데도 여전히 일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번 주말은 지난 주말보다 더 추웠다.
세 시가 넘어 해가 서쪽으로 넘어갈 무렵 하루를 갈무리했다.
여담이지만 해질 무렵 청도천의 풍경을 보고 있노라니 노래방에 가면 즐겨 부르던 '향수'라는 노래가 생각났다.
향수는 서정시인 정지용의 시에 김희갑 작곡가가 곡을 붙여 대중가수 이동원 님과 성악가 박인수 교수가 듀엣으로 불러 크게 화제가 되었던 대중가요이다.
이동원 가수는 이 노래가 대표곡이 될 정도로 유명세를 탔다.
그는 재작년 작고하기 전까지 이곳 청도에서 오랜 기간 생활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 박인수 교수는 대중가요 가수와 같이 노래했다는 이유로 오페라단에서도 제명당하고 오랫동안 고초를 겪었다.
그래도 그는 담담하게 자신의 그러한 행동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어느 인터뷰에서 밝힌 걸 보면서 나는 이 시대의 진정한 귀감이 될 음악가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향수’는 좋은 시이고 좋은 노래입니다. 당시에도 좋아서 녹음을 했을 뿐, 깊이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시적, 문학적, 음악적으로 가치 있는 일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사람의 고정관념은 참 무섭죠. 클래식은 대중음악과 다르다는 고정관념이 거셌고, 제가 이에 위배되는 일을 했기 때문에 파문의 중심에 섰던 것입니다. 하지만 저를 비난했던 사람들을 이해합니다. 너무 파격이니까,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에 앞서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거죠. 개인적으로 ‘향수’를 부르고 나서 잃은 것보다 얻은 것이 훨씬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