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리는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다

주말농부일기(2023년 3월 3일 - 4일)

by 석담

퇴근 후 맘이 바빠진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먹을 양식이랑 술 안줏거리, 그리고 군것질거리를 챙겨 부리나케 청도로 향한다. 마누라가 챙겨 가라고 신신당부한 음식물 쓰레기도 두 손 가득 들고서.

주말 농장을 하고 나서 우리 부부는 음식물 쓰레기를 아파트에서 버리지 않는다. 일주일 동안 열심히 모아서 주말에 텃밭에 가져다 묻는다.

음식물 쓰레기는 다시 썩고 분해되어 천연 거름으로 우리 가족의 먹거리를 살찌우는 것이다.


3월 3일이 삼겹살을 먹는 날이라 하니 문득 향긋한 미나리에 삼겹살이 떠올랐다. 농막 가는 길에 보이는 마트 한 곳에 들러 미나리가 있냐고 물으니 하루 종일 미나리 찾는 사람은 많은데 정작 미나리는 오전에 다 팔리고 없단다.


마지막 실오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농막 앞에 있는 삼겹살과 청도 특산물 미나리를 파는 가게에 들렀다.

나는 미나리만 따로 팔겠냐는 선입견으로 쭈뼛거리다 미나리 좀 팔 수 있냐고 물었다.


주인아주머니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냉장고 문을 열더니 한단의 미나리를 들고 나왔다.

그리고는 올해는 너무 추워서 미나리가 금값이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나는 금값을 지불하고 미나리 한 단을 들고 농막에 도착했다.

삼겹살 대신 대신 목살을 굽고 미나리를 얹어 미나리 삼겹살을 만들어 지난번에 쟁여 놓은 저렴한 가성비 와인이랑 늦은 저녁을 먹었다.

미나리의 향긋한 향은 언제나 나의 봄의 기억을 되살리는 전령사였다.


아침 일찍 일어나 봄의 자취를 찾으려고 텃밭의 여기저기를 둘러보았다. 오랜만에 푸근한 영상의 봄날씨였다.

다음 주 월요일이 경칩이지만 밭 주변을 아무리 쏘다녀도 봄의 전령사 개구리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그렇지만 개구리들은 이미 봄맞이 나올 채비를 마치고 출격 대기 중일 것이 분명하다. 개구리가 잠에서 깬다는 경칩에 맞춰 봄소식을 전하러 분명히 달려 나올걸 믿어 의심치 않는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 했던가? 봄은 이미 왔건만 나는 개구리가 진정한 봄을 알리러 금방 달려올 듯한 착각 속에 빠져있다.


해가 높이 떠서 한낮의 열기가 서서히 느껴질 무렵이 되어서야 나는 서서히 아주 느리게, 마치 슬로비디오를 보듯이 느릿느릿 밭으로 걸어 나갔다.

그리고 잠시 휴대폰 계산 기능을 이용해 간단한 숫자를 계산했다. 그리고 마침내 나름의 값을 계산해 냈다.


300평의 밭에 50포의 퇴비와 15포의 유박 비료를 살포하기로 마음먹었다. 우선 퇴비 포대와 유박 비료 포대를 밭으로 옮겨야 한다. 하나에 20kg에 달하는 포대를 65개나 옮겨야 한다는 것 고역이었다.


그래서 오늘 옮긴 포대의 개수는 고작 여남은 개였다.

아직 옮겨야 할 포대가 50개도 넘게 남았다.

결국 나는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고야 말았다.


점심 나절에 동네 터줏대감 격의 친한 58년 개띠 형님에게 전화를 했다. 이맘때쯤에는 항상 밭 만들기를 위한 로터리 치는 작업이 필수다. 퇴비와 유박 비료를 뿌려 둔 밭을 트랙터로 갈아엎어 골고루 섞이게 해서 잘 부숙 되고 분해되어 기름진 토양을 만드는 작업이다.

트랙터를 이용한 작업은 로터리라고 하고 경운기를 이용한 작업은 경운작업이라고도 하는데 그 역할은 동일하다.


퇴비와 유박비료와 섞인 밭 토양을 골고루 갈아엎어 2주 정도 비를 맞히거나 물을 주면 비료가 녹고 퇴비가 발효하여 가스가 빠져나가서 종자를 심기 위한 준비 작업이 거의 마무리된다.

그러고 나서 이랑을 만들어 두둑을 쌓고 고랑을 파고 비닐 멀칭을 하는 것이다.

이달 마지막 주말에는 그러한 작업에 대해 설명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오늘 한 가지 일을 더 했다.

겨우내 잘 버티고 살아온 마늘과 양파를 위해 웃거름을 주었다. 농사꾼들은 한자를 써서 추비(追肥)라 하기도 한다.

비가 내리지 않는 탓에 비료를 물에 녹여서 충전식 분무기로 촉촉하게 주었다.


오늘도 하루가 저물었다.

본가에 들러 저녁을 먹고 다시 나만의 시간 속으로 돌아왔다.

내일은 또 어떤 힘들지만 새롭고 신선한 농사가 날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된다.


여담 : 패스트 볼(Fastball)의 더 웨이(The Way)라는 팝송인데 귀에 익숙한 곡이었는데 얼마 전에야 제목을 알았어요. 그냥 들어도 곡이 슬펐는데 가사의 사연을 알고 보니 더 슬픈 곡입니다.ㅜ.ㅜ

https://youtu.be/9Dkbn4LL36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