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단한 도시농부의 5월

주말농부일기(5월 20일 - 21일)

by 석담

불금을 신나게 보낸 후유증으로 지끈지끈한 머리와 쓰라린 속을 달래며 청도로 향했다.

이번 주말은 감나무 방제, 참깨 파종하기, 완두콩 웃거름 주기 등 처리해야 할 일들이 산적해 있었다.

오랜만에 화창한 주말이라 기분은 상쾌했지만 몸과 마음은 벌써 밀린 과제로 자동 긴장 모드에 돌입했다.


밭에 도착하자 여느 주말처럼 무성하게 자란 잡초들이 먼저 반겼다. 전날 전화로 예약한 살분무기를 수령하기 위해 농기계임대사업소로 향했다.

지난 주말 방제 중에 엔진 분무기 고장으로 중단되었던 부모님 댁 감나무 방제부터 시작했다.


지난 주말에는 1박 2일로 제천 월악산에서 지인들과 모임을 가졌다.

출발이 오후라 약 언제 치냐며 닦달하시는 어머니의 명을 거역할 수 없어 오전에는 본가에서 감나무 총체벌레 방제를 하고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빨리 방역을 마치고 가벼운 마음으로 모임에 참석하려는 생각은 시작도 하기 전에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작년에 인터넷으로 구매한 중국산 저가형 엔진분무기가 발목을 잡았다. 분무기의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작년에 한번 방문한 적이 있는 청도역 근처의 농기계 수리점으로 달렸다.

농기계 수리점 사장은 채 10분도 되지 않아 시동 불량 문제를 개선하고 2만 원을 대가로 받아 갔다.


다시 감나무 방제를 시작하고 채 30분이 되지 않아 또 다른 난관에 봉착했다. 분무기의 엔진은 작동 중이었으나 농약이 분무되지 않는 이상이 온 것이었다.

다시 농기계 수리점에 가서 재수리를 요구했으나 수리점 사장은 두 손을 들고 끝내 분무기의 재기불능을 선고했다.


이번주에는 농기계 임대센터에서 분무기를 임대해서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100만 원이 넘는 고가형 엔진 분무기를 선뜻 산다는 것은 주말농부가 쉽게 내릴 수 있는 결정이 아니었다.


본가의 방제가 끝나고 우리 밭의 감나무 방제도 순조롭게 끝내고 나니 큰 산을 하나 넘은 기분이 들었다.

오후 시간에는 여유롭게 꽃구경을 하며 계절의 여왕 5월을 만끽했다. 일요일에 처리해야 할 산더미 같은 일들은 감히 생각하려고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오후 6시가 되기 전에 빌린 엔진 분무기를 농기계 임대사업소에 반환하는 걸로 토요일은 마무리했다.


안개 자욱한 일요일 아침은 마침내 밝았다.

어머니에게 7시에 모시러 가겠다며 모닝콜은 하지 마시라고 신신당부를 했었는데 눈을 뜨니 7시가 넘어 있었다.

안갯길을 더듬어 본가에 도착했다.

어머니는 밭일을 위한 모든 준비를 끝내고 나의 아침밥을 차려 주셨다.


상추와 물김치에 들어 있는 얼갈이배추를 꺼내어 대접에 넣고 밥과 된장, 고추장을 넣고 비빔밥을 만들어 먹었다.

반찬으로 나온 어머니가 경로당 나들이 때 포항 죽도시장에서 사 오신 생물 고등어 구이가 입맛을 돋우었다.

몸이 건강해지는 느낌이 드는 맛있는 아침식사였다.


어머니와 밭에 도착하여 우선 참깨 씨앗을 파종하기 위한 준비를 했다. 세 곳의 이랑에 비닐 멀칭을 하고 나니 몸이 천근만근이었다. 아직 5월인데 10시만 넘어도 한여름같이 더웠다. 작년에도 어머니는 우리 밭에서 키운 참깨를 수확하여 참기름을 짜 두 병이나 보내 주셨다.


비닐 멀칭한 밭에서 어머니는 참깨 씨앗을 심으셨고 나는 고추 지줏대 박는 작업에 몰입했다.

작년에 너투브를 보고 고춧대를 덜 써도 동일한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설명에 어설프게 따라 했다가 지난 태풍에 다 자란 고추 몇 포기가 찢겨나간 아픈 기억이 있다.


올해는 좀 귀찮더라도 고추 한 포기에 지줏대 하나씩 박는 고전적이고 원칙적인 방법으로 돌아왔다.

고춧대 박는 작업은 오롯이 나의 몫이다. 무거운 망치를 들고 사람 가슴높이까지 오는 고춧대를 박는 작업을 어머니께 맡기는 것은 자식의 도리가 아니다.


고춧대를 다 박고 나니 어깨가 얼얼했지만 아직은 견딜만했다. 어느새 해는 중천에 오르고 시나브로 점심시간이 가까워졌다. 아침부터 노동을 해서 그런지 허기가 졌다. 오늘같이 무더운 날에는 냉면 먹으면 좋겠다는 나의 간절한 바람이 통했나 보다. 큰처남이 전화로 냉면재료 챙겨서 농막으로 오겠다는 반가운 소식을 전했다.


처남 내외가 도착하고 잠시 후 열무김치에 면을 말은 먹음직스러운 냉면이 내 눈앞에 선을 보였다.

나는 첫 술도 뜨기 전에 사리 추가를 외쳤다.

그렇게 맛있는 점심을 먹고 오후 작업이 시작되었다.


완두콩 웃거름 주기를 끝내고 내일 사무실 직원들과 나눔 할 상추와 청경채, 브로콜리 수확물을 챙겼다.

그리고 대망의 마지막 미션인 제초작업을 시작했다.

주차장부터 밭 가장자리, 법면, 하천변에 있는 명아주, 자리공, 환삼덩굴, 쇠뜨기까지 빼놓지 않고 제초제를 뿌렸다.


다음 주에는 남은 밭이랑에 여러 가지 콩이랑 팥을 심으면 올해 봄농사는 대충 끝나는 셈이다. 병충해 관리 잘하고 비료주기만 제대로 하면 올해도 자급자족으로 우리네 식단에 "내 밭내산"을 실현하는 데는 문제가 없을 듯하다.

아리스토 텔레스의 "인내는 쓰고 그 열매는 달다'라는 명언 대신에 나는 "노동은 힘들어도 그 열매는 달다"라는 체험적 사실을 말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