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그치면 도시농부의 삽질은 시작된다.

주말농부일기 (5월 5일 - 7일)

by 석담

목요일 저녁부터 시작된 빗줄기는 일요일 저녁 무렵까지 그칠 줄 몰랐다. 일기예보에는 일요일에는 비가 그치는 걸로 나왔지만 일요일 오전에 잠시 소강상태를 보이다가 점심 무렵부터 다시 내리기 시작했다.


지난 주말에 아내와 여행을 다녀온 후유증이 주말농장에서 현실로 나타났다.

밭에 도착해 보니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천방지축으로 자라난 잡초군단이었다. 아직 식재를 하기 전의 밭이랑과 가장자리까지 가리지 않고 잡초들이 우후죽순처럼 자라나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이번주에는 고추, 고구마 모종을 심어야 하는데 비까지 내리고 있어서 어떻게 이 난국을 헤쳐나갈지 막막했다. 일단은 비가 내리는 상황이라 병충해 방제를 위한 농약 분무는 물 건너갔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생각과는 달리 몸은 따로 놀았다.

금요일과 토요일 이틀은 비멍까지 하는 여유를 부리며 OTT 영화도 한편 보고 낮잠까지 자는 여유를 부렸다.

비가 내리는 텃밭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없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그래, 일하지 못하면 쉬기라도 제대로 해야지.

금요일 저녁에는 지난주에 마시던 와인도 한병 꺼내 취해 보기도 했다.


토요일 아침 눈을 뜨니 비는 여전히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다가오는 화요일이 어버이날이라 부모님과 점심 약속을 해두었다. 아내가 도착하고 우리 부부는 동생 부부와 만나 근처의 한식집에서 간단한 식사를 했다.

어머니는 내년에는 집에서 고기나 구워 먹자며 항상 외식 후에 하시는 레퍼토리를 여전히 반복하셨다.


이틀간의 꿀 같던 휴식이 끝나고 일요일 아침 식전 댓바람부터 휴대폰이 울렸다.

'고추 심게 빨리 데리러 와라"

시계를 보니 6시 반이었다.

나는 잠에서 덜 깬 부스스한 얼굴로 창밖을 보니 하늘은 잔뜩 흐려 있었지만 비는 그쳐 있었다.


본가에서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어머니를 모시고 텃밭으로 왔다. 어제 미리 고추모종 100주, 청양고추 20주, 밤고구마 한 단, 호박고구마 한 단, 가지 모종 3주, 가시오이 2주, 백다다기 3주를 미리 구매해 두었다.

최대 난제인 고추 심기를 시작했다.


고추 심는 작업을 난제라고 한 까닭은 지난한 삽질의 시작이기 때문이었다.

원래 고랑 만드는 기계로 이랑과 고랑을 만들어 두었는데 어머니의 엄명(?)으로 다시 수정작업을 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쉽게 말하면 고추 심는 이랑은 3개가 필요한데 고랑 사이가 너무 좁아서 고추 따는 작업에도 불편하고 통풍에도 문제가 있다 하셔서 5개의 이랑을 합치고 분리하여 3개의 이랑으로 만드는 작업이었다.

문제는 그 작업을 오로지 삽 한 자루에 의지하여 진행해야 하는 것이었다.


실로 예전 반공 교과서에서 배운 "천 삽 뜨고 허리 한번 펴기"를 내가 몸으로 체득하는 시간이었다.

점심때부터 비 예보가 또 있어서 빈둥거리고 시간을 허비할 여유가 없었다.

팔도 아파오고 허리도 아프고 다리도 후들거렸지만

나는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도시 농부이기 때문이었다.

악과 깡으로 버텼다.


고추 심을 밭을 다 만들고 비닐 멀칭을 하고 고추 심을 자리에 구멍을 뚫는 것까지가 내 역할이었다.

그러면 어머니가 한 구멍씩 고추 모종을 심는 것이다.

그렇게 오전 작업이 끝나고 고구마 모종을 심는 작업이 이어졌다. 고구마 모종은 고추 심기에 비하면 그저 먹기였다.


고구마 모종 심기는 비닐을 씌운 후 고구마 모종을 심는 도구를 이용하여 줄기를 비닐 속으로 적당히 밀어 넣어 수평으로 찔러 넣으면 끝이었다. 그 도구는 드라이버처럼 생겼으면 약간 휘어져 끝은 "V"자로 갈라져 있다.

나는 이미 몇 번의 실전 경험이 있어서 수월하게 심는 편이다.

고구마 모종 심는 도중에 빗줄기가 굵어졌지만 나는 멈추지 않고 오늘의 과업을 마무리했다.

오이와 가지 모종까지 심고 나서야 나는 흙 묻은 장화를 벗었다.


이제 농번기가 시나브로 끝나간다.

저 빈 밭이랑이 다 채위지면 내 어깨도 한결 가벼워지리라.

지치고 힘들지만 주말농부의 삽질은 계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