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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담 Apr 03. 2024

우리 회사는 정부를 닮아 있다.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 즈음하여

빵 한 조각을 게눈 감추듯 입에 욱여넣고 채 어둠이 가시지 않은 거리에 나선다.

매일 비타민까지 수북하게 입에 털어 넣어 보지만 나이 탓인지 자고 일어난 아침에도 몸이 개운치 않다.

오늘따라 엘리베이터는 왜 이리 꾸물거리는 건지. 오늘도 한바탕 출근전쟁이 시작된다.

신호를 기다릴 때마다 텀블러에 담아 온 커피를 홀짝 대며 오늘 하루를 또 어떻게 부대끼며 살아갈까 생각하니 긴장감이 스멀스멀 가슴속을 엄습해 온다.


역시나 오늘도 새벽같이 출근해 공장 마당을 서성이는 칠순의 노인네가 있다.

회장이다. 직원  50명도 채  되지 않은 중소기업에 회장이라는 직책이 어울리는지 모르겠다.

21년째 출근하는 회사지만 여전히 낯설다.

매의 눈으로 공장 구석구석을 돌아보고 자신의 안목에 만족스럽지 않은 부분은 담당자를 불러 욕설을 섞어  가며 거칠게 나무란다.

정제되지 은 그의 언어를 보면서 "바이든 날리면"하던 웃지 못할 유행어가 떠오른다.


오늘도 밤새 내린 비가 아침까지 내리고 있다.

회장실 문을 열고 차를 준비했던 여직원이 회장실을 나오며 내게 볼멘소리를 한다.

"회장님 비 오는 데 우산 안 씌워 드렸다고

혼났어요.ㅠㅠ"

그랬다. 비 오는 날 회장은 항상 차에서 내려 내가 받쳐준 우산을 쓰고 회장실로 들어갔다.

처음 겪어보는 황당한 현실에 여직원은 난감해했다.

문득 청와대 경호실이 떠오른다.


7시 40분.

출근시간이 8시인데 아침회의를  그 시간에 하는 이유를 아직도 알 수 없고 내가 7시 반쯤 출근하면  왜 늦게 출근하냐며 화를 내는 회장을 나는 이해할 수 없다.

회의라지만 말하는 이는 회장밖에 없다.

소통은 없고 그냥 일방적인 지시만 내리고 끝난다. 거의 담당자들을 훈계하는 시간이다.  심지어 어떤 나이 많은  직원에게는 "제대로 안 하면 나갈 준비 하라"는 엄포도 놓는다.

50여분 동안 혼자서 읽었다는 대통령의 담화가 떠올랐다.


그리고 아주 아이러니한 한마디를 내뱉는다.

"나는 절대 갑질 같은 것 안 하는 사람이다. 자네들도 절대 갑질하면 안 된다."

마주 앉는 조 부장과 나는 서로 눈을 크게 뜨고 '풉'하며 쓴웃음을 짓는다."

회장이 절대 갑질을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정부가 2000명의 의사를 증원하겠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한 것이 갑질인 지 아닌지 의문이 생긴다.


생산일보를 작성하고 커피 한잔 하며 한숨 돌리려는데 내선전화가 울린다.

회장실  내선번호가 보였다.

전화기 너머로 화난 목소리가 들린다.

종종걸음으로 회장실로 가는데 가슴이 두근거린다. 대통령실에 근무하는 비서관과 행정관도 나와 같은 심정일까?


"자네는 부장이라는 사람이 직원들한테 모범을 보여야지 휴일 근무한 거 수당 받으려고 하면 되나?"

자다가 봉창 뜯는 소리라는 표현이 딱 맞을 것 같다. 가슴이 답답해 온다.

지난 3월에 현장실사가 있어서 준비하느라 주말에 3일을 출근했다. 경리과에서 급여 계산을 하면서 결재올렸는데 그걸 주겠다고 오리발을 내밀고 있는 것이다.


나는 마음속으로 "헐"이라고 말하고 있었지만 입 밖으로 내뱉지는 않았다.

작년에는 반강제적으로 동의서 한 장 쓰게 하고는 연차수당도 없애더니 한술 더 떠 주말근무 수당까지 못주겠다는 것이다. 모든 근무 수당을 포괄임금제라는 미명하에 묻어 버리려는 아주 비열한 처사다.

주 52시간을 후퇴시키려 하고 R&D 예산을 삭감하는 정부의 정책과 닮았다고 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내가 다니는 회사에는 직장 스트레스로, 아니 엄밀히 이야기하면 회장의 잔소리에 마음의 상처를 입고 신경정신과를 다니는 직원이 몇 있다.

정부의 실정과 대통령의 무책임이 싫지만 우리가 이 나라를 떠나지 못하듯이 그들도 여전히 회사를 떠나지 못하고 처자식을 먹여 살리기 위해 오늘도 고단한 하루를 보낸다.


오는 4월 10일은 국회의원 선거일이다.

20년 동안 근무하면서 투표일에 쉬어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출근하기 전에 투표를 하고 한두 시간 늦게 회사에 출근하는 게 고작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선거하는 날 쉰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웬일인가 했다. 아뿔싸, 그  대신에 토요일에 근무하란다.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였다.


문득 언젠가 브런치에서 한 번은 했던 말이 생각난다.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어쨌든 우리 모두가 빠짐없이 투표는 하고 볼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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