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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담 Jun 08. 2024

소확행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한때는 자주 듣던 신조어였는데 이제는 예전처럼 흔히 듣기는 어려워진 말이 되었다.

아마도 소소한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점점 사라져 가는 것은 아닌가 씁쓸한 마음이다.

점점 더 거창하고 핫하고 힙한 것을 찾아서 그런 것은 아닐까?

6평 농막에서 빗소리를 들으며 마시는 막걸리가 소확행과  맞는 느낌이다.

안주가 삼겹살이 아니고 밭에서 따서 어머니가 만들어 주신 오이 무침이라서 더 소소하다.

소확행에 어울리지 않게 이북리더기냐고 묻는다면 종이책에 게을러진 독서 습관을 다잡아 보려고 중고마켓에서 싸게 하나 업어 왔다고 변명해야겠다.


농막 앞에는 돌보지 않아 제멋대로 자라난 낮달맞이 꽃과 솔잎도라지, 달맞이꽃이 지천으로 피었다.

오후 내내 비가 내렸다.

비가 내리니 꽃들은 일제히 고개를 숙인다.

고개를 빳빳이 들고 있는 건 나 혼자 뿐이다.


탐스럽게 익은 브로콜리를 보니 뿌듯해진다. 브로콜리는 한 번도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한 번도 으로, 고사로 내게 아픔을 주지 않고 언제나 풍성한 결실을 안겨줬다.

나는 주섬주섬 선물해야 할 이들의 이름을 하나씩 메모장에 적어 본다.

조 부장 1개, 김 차장 1개, 그리고 거래처 소부사장님 1개...

20개 남짓 심은 브로콜리가 거의 남지 않았다. 그래도 괜찮다.

"It's  my  pleasure."

예전에 해외 영업하면서 내가 즐겨 쓰던 영어 표현이다.

참 잘 만들어진 말 같다. 나는 브로콜리를 선물하는 이들에게 그렇게 말하리라.


자두도, 매실도, 호두와 수박도, 그리고 토마토도 결실을 맺었다.

때로는 마지막까지 함께하지 못하고 중도에 도태되는 과일도 있고 채소도 있다.

그것은 온전히  잘못 가꾼 내 때문이다.

야채나 과일은 잘못이 없다.


나이의 앞자리가 바뀌니 중년에서 노년이 된 느낌이다.

비단 나이뿐만 아니라 몸도 나이를 따라가는 느낌이다.

가급적 음주와 가무가  많은 모임을 피하다 보니 외톨이가 된 느낌도 든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것은 진리인데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그 진리를 거스르고 사는 사람이 너무 많다.


며칠 전에 캐나다 로키 패키지여행이 싸게 나온 게 있길래 아내한테 물어보지도 않고 덜컹 예약을 했다.

더 나이 들면 장거리 해외여행이 더 힘들 것 같아 서둘러 예약을 했다. 아내는 너무 좋아했다.

회사 회장의 싫어할 모습이 교차되었지만 나는 무시했다.


비가 오면 고개를 숙이고 싫으면 "NO"라고 이야기하고

술 마시기 싫을 땐 도망칠 줄도 아는 삶이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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