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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고향의 맛

by 석담

어릴 적 고향 가는 길은 설렘과 기쁨의 연속이었다.

기차와 시외버스를 갈아타고 한나절이나 달려가는 고향길에는 미루나무가 반겨주고 파란 하늘과 포근한 들녘이 안아 주었다.


신작로를 따라 달려가면 문 앞에서 환하게 웃으며 맞아 주시던 큰어머니의 인자함이 있었고 명절날 가족들이 모이면 족보책을 보여 주시던 큰아버지의 자상함도 떠오른다.

마을을 지키는 동수 나무 아래 개울가에서 멱감던 기억과 송사리며 미꾸라지를 좇던 친구들의 웃음이 그립다.


한여름 평상에 누워 무수히 쏟아지는 별들을 보며 여우 나는 산골 이야기를 듣던 그 밤에 하모니카 불며 먹던 옥수수의 고소함은 더 이상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맛이 되었다.

마당에서 자면 늑대가 물어간다는 무서운 이야기에 큰어머니 품을 찾았던 어린 시절의 소년은 흔적도 없고 흰머리 성성한 중년의 아저씨로 돌아왔다.


할아버지 밥상의 고등어에 눈독 들일 때쯤 손주를 향한 할배의 사랑으로 맛 본 간고등어는 최애 생선이 되었다.

술도가 심부름에 훔쳐먹던 막걸리의 알싸함도 아궁이에 구워 먹던 고구마와 콩의 감칠맛도 이제는 추억으로만 남았다.


오일장이 열리면 장터에 나타나던 약장수의 구수한 랩도

잔칫날이면 어김없이 등장하던 노숙자 아저씨의 불편함도 이제는 그리운 풍경이다. 엿장수 아저씨가 맛보기로 끊어 주던 호박엿의 단맛은 초콜릿만큼 기분 좋게 만들어 주었다.

장터에서 선물 받은 고무신 한 켤레를 내내 아까워 못 신고 고이 모셔두었다.


가을이면 빨갛게 익은 홍시의 단맛이 있었고 겨울이면 얼음이 사각사각 씹히는 골금짠지의 단짠이 입맛을 돋우었다.

산토끼를 잡겠다며 눈 내린 겨울 산을 하루 종일 헤매다 물에 빠진 생쥐꼴로 돌아와 따뜻한 아랫목에서 맛 본 곶감의 달콤함은 오늘날 고급 과자의 홍수 속에서도 찾을 수 없는 고향의 맛이다.


이제는 차를 타고 한 시간이면 도착하는 고향에는 더 이상 찾아갈 그리운 얼굴들이 없다.

큰어머니도, 큰아버지도, 사촌들도, 친구들도 모두 떠난 공허한 도시가 되어 버렸다.

세월을 이기지 못한 고향집 마당에는 시간의 무상함을 말해주는 무성한 잡초들만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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