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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치원 Sep 12. 2023

희미한 역마살에 대한 슬픈 고찰

떠날 사람과 남겨질 사람

 모든게 끝난 마당에 적어보자면, 1년도 되지 않는 시간동안 두 명의 여자친구를 만났다. 모두 내가 한국에 돌아간다는 것 쯤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얘기했다. 그러곤 같은 결과를 도출해냈다. 마치 짜기로도 한 듯이. 하지만 이해한다. 이성과 감정은 분명히 다른 것이다. 그러나 이건 나에게도 적용되어, 이해가 될 뿐이지 마음은 여전히 심란하다.


 헤어지기 며칠 전은 나의 생일이었다. 그 아이가 전해준 편지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우리가 언제 다시 보게 될 진 모르지만..."


 타국에서 듣는 흔한 문장은 조금 더 깊다.




 서울로 학교를 가게 된 이후부터 나는 늘 떠날 사람이었다. 1년 뒤면 입대할 사람, 군대를 미뤄도 1년 뒤에 입대할 사람. 전역할 사람, 퇴사하고 대구로 내려갈 사람. 반 년 뒤에 코로나가 끝나면 서울로 올라갈 사람. 코로나가 이어져 또 반 년 뒤면 서울 갈 사람. 마침내 대면 수업을 하려니 웃기게도 워킹홀리데이가 눈에 들어왔다. 때 마침 날아온 캐나다 인비테이션. 곧 있으면 캐나다에 가겠구나. 밴쿠버로 오니 1년 뒤면 한국 갈 사람이 되었고, 2주 뒤면 정말 한국으로 가게 되었다.


 이런 일을 반복 하다보니 어쩔 수 없이 인간관계에 소극적으로 변한다. 상대라고 그러지 않을 이유는 없다. 원래 떠나는 사람보다 남겨진 사람이 더 슬픈거니까.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는 거란 말은 큰 위로가 되지 않았다. 계약기간의 명시화는 관계의 판도를 바꾼다. 우리는 괜히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구분해온게 아니지 않는가. 숫자가 서서히 줄어들면, 감정은 상상에 잡아먹혀 스스로를 방어하는 듯 했다. 다급함은 관계에 단연코 도움이 되지 않았다.


 한국에 간다고 해도 크게 달라지는 건 없다. 한국 갔다가 인도를 다녀오면 2달 뒤에 서울로 올라갈 사람이고, 운좋게 대기업 취직을 한다면 지방으로 내려갈테지. 심지어 난 한국에 살 생각이 없으니 또 언젠가 떠날 사람이 될거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주에 역마살이 있는 걸까. 아직 얼마 살 진 않았지만 조금 기구한 듯 싶다. 예전엔 이리저리 발발 거리며 돌아다니는 걸 되게 좋아했는데... 정착하고 싶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내가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진 않을까? 나는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싶은 건데. 사랑하는 것도 힘이 있어야 지킬 수 있다는 명분으로 자꾸 사랑을 치는건 아닌지. 취직을 한다고 해서 이 마음이 멈출까? 그저 누군가보다 내가 더 중요해서 변명을 늘어놓는건 아닐까.




"이제 어디로 이사 가?"

"저는 한국으로 돌아가요.

"돌아가면 뭐하려고?"


 집주인 대신 예비 테넌트 뷰잉을 도와주러온 한국인 리얼터 아저씨. 친근감 있고 재밌는 분이셨다. 곧이어 집주인이 늦게 들어와서 테넌트를 담당했다.


"이제 다시 학교 다녀야죠."

"바쁘네."

"네. 어디 하나 정착해있는 법이 없네요. 하하"

"어릴 때 어머니가 사주를 봐주신 적이 있어. 그 때 나에게 역마살이 있다고 하시더라. 그 말만 믿고 살아온 건 아니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고등학교 시절 담임 선생님만 7번이 바뀌었어. 커서는 미국 지사에 2번 다녀오고, 아랍에 갔다가 캐나다에 정착한거야.


 내가 지금은 늙어서 Slow-down 되었는데, 한창 할 때는 차 타고 미친 듯이 돌아다녔어. 지나고 나니 그런 생각이 들더라. 그 때 그 사주쟁이가 맞았을 지도 모르겠다고. 결국 캐나다에 와서도 돌아다녔으니 말이야."


 아저씨는 담담하게 얘기했다. 집주인이 가져다 준 무알콜 맥주를 홀짝이셨다.


"그렇게 살아보니 어떠세요? 좋나요?"

"안좋지. 소중하고 좋은 것을 봐도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더라고. 어차피 두고 떠나야 하니까."


어제는 비포선셋을 봤다. 영어로 보니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좋아하는 장면 하나와 대사 하나를 아래 붙인다.


I feel I was never able to forget anyone I've been with. Because each person have their own, specific qu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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