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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을꾸다 Nov 17. 2023

이렇게 옹졸해도 될까.

다 된 밥에 서운함 빠트리기.

아이가 말문이 트고 나서부터 잠들기 전 아이에게 오늘 하루는 어땠는지 묻곤 한다. 어떤 순간이 생각나는지, 어떨 때 기분이 좋았는지, 슬펐는지, 가장 좋았던 일이 있었는지 등 아이의 하루를 함께 돌아본다. 그 하루에는 대체로 나와 함께하는 시간이기에 가끔은 아이의 속마음을 통해 반성하거나 보람을 느끼기도 한다. 그리고 내가 놓쳤던 부분을 깨닫기도 하고, 아이가 어떤 부분에 마음을 더 쏟는지 알 수도 있다. 물론 아이들의 기억은 왜곡이 많기도 하고, 가장 가까운 순간이나 슬펐던 순간만 말하는 경우도 많긴 하다.



여느 때처럼 아이에게 오늘 하루가 어땠냐고 물었던 지난밤이었다. 아이는 속상한 기분이었다고, 좋은 건 하나도 없었다고 말했다. 사실 매일 그렇게 대답해 왔기에 특별할 것도 없었다. 이렇게 말해도 아이가 좋아했던 순간을 꺼내어 이건 어땠는지, 저건 어땠는지 물으면 그건 좋았고, 또 하자고 말하기도 하니깐. 그런데 내 마음이 여느 때 같지 않았다. 아이는 평소처럼 장난 반 진심 반 슬펐다고 대답했지만, 나에게는 진심으로만 꽉 채워진 대답처럼 느껴졌다. 같이 노을을 보며 간식도 먹고, 도서관에 가서도 놀고, 그 외에도 아이와 좋은 시간을 많이 보냈다고 느껴서일까. 아이가 오늘 하루 정말 즐거웠다고 말해주기를 기대했던 욕심 탓일까.


갑자기 울컥 무언가 올라왔다. 아이 곁에 누워있다가 등을 돌리고 앉아 버렸다. 아이는 내 등을 보며 울기 시작했다. 엄마가 등을 돌리고 자기를 보지 않아서 슬프다며 울었다. 아이의 울음 속에서 나도 연신 눈물을 훔쳤다. 고단했던 하루가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나는 무엇을 위해 매일 애쓰고 있는 걸까. 그걸 아이가 알아주기를 혹은 그 마음을 표현해 주기를 바라는 게 의미 없는 일이고 욕심이라는 걸 안다. 그렇지만, 그 순간 나는 기대하고 있던 선물을 뺏긴 아이처럼 그저 서운하고 속상하고 서러웠다.


시간이 조금 지났다. 아이도 나도 울음이 멈췄다, 울컥 올라왔던 마음도 어느 정도 가라앉았다. 아이 곁에 다시 누웠다. 아이를 토닥이며 말했다. 오늘 하루가 어땠냐고 물으면 매일 속상하기만 했다고 하고, 슬펐다고만 해서 엄마도 조금 속상하고 슬펐다고. 그리고 물었다. 혹시 내일은 즐거웠던 순간도 말해줄 수 있느냐고. 언제나 슬플 수도 즐거울 수도 없지만, 슬픔과 속상함만 이야기하지 말고 기쁨과 즐거움도 같이 이야기하면 좋겠다고.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품에 안겼다. 



우리가 함께 봤던 노을과 그 공간, 함께 했던 시간이 줬던 행복을 다시 떠올리며 기분 좋게 하루를 마무리하고 싶었다. 그런데 이렇게 옹졸한 마음으로 아이도 나도 눈물 바람으로 끝나다니. 정신을 차리고 나니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밀려왔다. 그 순간을 참지 못한 후회와 자책감으로 아이를 재우고 나서 나는 한참을 더 울었다. 무언가 대가를 바라고 하는 일도 아니고, 그저 아이와 하루를 잘 보냈으면 그걸로 충분함을 알면서도 왜 그랬을까. 정작 아이에게 하루의 기억을 슬픔과 서러움으로 끝낸 게 너무나 미안했다.


육아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 중 하나는 외로움이었다. 아이가 말을 하지 못하던 때나 표정 변화도 거의 없고 옹알이도 하지 않던 때는 더욱 자주 밀려왔던 그 감정. 대화가 나누고 싶고, 무언가 감정을 나누고 싶었던 그때. 아이가 말문이 트이고 조금 더 자랐지만, 여전히 육아 중 외로움은 찾아온다. 아이 탄생 후, 남편이 아닌 성인과 만나서 대화를 나누는 일은 나에게 일상이 아니라 이벤트가 된 것 같다. 아이의 장난스럽고도 무심한 대답에 울컥 올라온 마음도 외로움과 서러움이었으리. 


사랑스럽고 다정한 딸과 함께 하는 순간이 주는 행복은 정말 크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채워지지 않는 그 마음 한 조각이 참 어렵다. 그래도 아이에게 이런 이유로 더는 옹졸해지지 말자고 다짐하며 이 글을 남긴다. 엄마의 길은 갈 길이 참 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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