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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제이 May 02. 2023

글쓰는 찰나 - 나의 살던 고향은

‘고향’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노래가 ‘나의 살던 고향은’이다. 평화롭고 아름다운 산골 마을의 정경이 눈앞에 그려지게 하는 이 노랫말을 떠올릴 때마다, 나는 왠지 반감이 든다. 산 들에서 온갖 꽃들이 피고 지는 산골 동네 출신인 내게 ‘고향’은 그리움의 대상이 아니다.

‘나의 고향’이라는 말 속 관형격 조사의 쓰임이 의미상 주어를 나타내는 특이한 구조라는 사실을 떠올릴 때마다, 나는 반감이 든다. 내게 고향은 관형격 조사를 사용할 만큼 소유하고 싶은 대상이 아니다. 태어날 곳을 잘못 골라 태어난 사람인 것처럼, 다른 곳 어딘가에 있을 ‘나의 고향’을 나는 애타게 찾아다녔다.


고향을 물어 보는 말이 싫었다. 시골 출신이라는 프레임으로 나를 재단하는 것이 싫기도 했지만 그것이 가장 큰 이유는 아니었다. 유년기 많은 시간을 보낸 공간이라고 해도 나를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준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고향’이라는 말로 부를 수 없다고 생각했다. 집밖의 세상에 무관심했던 나의 유년기는 성장이 멈춘 시기였다. 홀로 부유하며 나에게 맞지 않는 공간 속에서 숨어 지내는 시기였다. 그때 나는 알 수 없는 병에 시달렸고 내내 가슴이 답답했다. 고등학교를 다른 지방으로 진학하면서 집을 떠나게 되었을 때, 나는 비로소 ‘고향’을 찾은 기분이었다.


그래서 그곳을 나의 '고향'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친구들과 장난치며 놀다가 선생님에게 혼나고, 체육 시간에 세수를 하다가 물놀이를 했던 곳. 친구들과 지하상가에서 쫄면과 돈까스를 나눠 먹던 곳, 길가 나무에 달린 복숭아를 따서 한 입씩 나눠 먹던 곳.

그곳에서 나는 많이 웃었고 비로소 자라났다. 그곳에서 오랫동안 멈춰 있던 나의 내면이 성장하기 시작했다. 새로 태어나는 느낌이었다. 그곳의 길과 나무, 자주 가던 상점들, 호수가 있는 풍경들 하나하나 의미가 있었고 소중했다. 그래, 이런 것이 ‘고향’이라고 생각했다. 그곳은 늘 그립고 그리웠다. 그곳은 관형격조사를 사용해서 표현할 수 있는 곳이었다. 비로소 ‘나의 고향’이라고 말할 수 있는 곳이었다.


엄마가 아프고 난 후 주말마다 친정에 간다. 친정은 나의 유년 시절의 그곳에 아직 그대로 있다. 그런데  주말마다 본의 아니게 마주치는 익숙한 이 풍경이 외면하고 있었던 나의 유년기를 자꾸 상기시켰다.


집을 마주한 동산에 올라가면 큰 산소가 있었다. 그 봉분 뒤에 숨어서 차나 사람이 지나갈 때마다 내 몸이 들키지 않도록 숨죽이며 숨박꼭질을 했다. 해가 떨어질 때까지 나 홀로 숨박꼭질을 해도 지루하지가 않았다. 고요한 풍경이 차나 사람으로 살짝 이그러지는 그 순간의 변화가 좋았다. 그 봉분 뒤에서 나는 우리 마을의 유일한 관찰자가 되어 하루의 변화를 남몰래 기록했다.

달빛 없는 여름밤에는 친구들과 함께 공원묘지를 걸었다. 그것은 우리의 극기체험이었다. 서로 귀신 소리를 내며 공원묘지를 처음부터 끝까지 걸어다. 관리인의 눈에 띄지 않게 살금살금 조심하며 걸었다. 그렇지만 결국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던 그때의 우리. 신명나는 여름밤이었다.

계절마다 마을은 꽃의 옷을 갈아 입었다. 봄에는 동산마다 진달래가 지천이었고, 여름에는 누군가가 심어 놓은 노랗고 작은 해바라기가 길가에 한무더기 피어났다. 우리는 그 꽃을 멕시코 해바라기라고 불렀다. 내게 여름은 강렬한 노란색이었다. 가을에는 들국화와 쑥부쟁이가 자연스럽게 들판에 자리잡았다. 계절의 흐름이 눈앞에 그려지는 풍경이었다.


등하굣길에 숱하게 마주쳤던 그 풍경들이 갑자기 생각나는 순간이었다. 어쩌자고 나는 이런 기억들을 다 잊었던 걸까. 왜 내가 골방에 갇혀 있던 것처럼 스스로의 기억을 왜곡했던 것일까. 내 유년기의 기억은 작은 마을에 엉겨 붙어 있었고, 달라지지 않는 풍경은 하나씩 하나씩 그 기억을 풀어놔 주었다. 기억하지 못했던 나의 시간들이 남아 있는 이곳이 ‘나의 고향’인 것을 나는 이제야 깨달았다.


작은 마을들이 띄엄띄엄 이어지고 허리가 꼬부라진 할머니가 아슬아슬하게 도로를 걸어간다. 채석장 트럭이 속도를 줄이지 않고 지나간다. 차창 밖에 보이는 벌거벗은 산은 폭음과 먼지로 뒤덮인다. 만수인 저수지는 공원묘지를 품고 찰랑인다. 슬프지만 아름답다.


엄마를 만나러 고향에 갈 때마다 어린 시절의 나를 만난다. 곳곳에 숨박꼭질하듯 숨어 있는 나를 찾는다. 슬프지만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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