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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제이 Aug 04. 2023

글쓰는 찰나 - 나의 행복은 가깝지만 멀리 있네

정말 바쁜 나날들이다. 시간을 분초 단위로 쪼개 쓴다는 말을 절감한다. 나는 원래 일을 할 수 있는 데까지 미뤄두고 빈둥대다가 막판에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는 스타일인데, 요즘 나는 매순간 초인이 될 때가 많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다. 그저 내 욕심으로 이렇게 되었다. 조금 더 잘해보고 싶어서, 새로운 경험을 하고 싶어서 일을 벌였다. 그런데 내가 벌인 일에 기존에 있던 일에 갑자기 밀어 닥치는 일까지 ‘일’은 그야말로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이렇게 일에 묻혀 사는 것이 워커홀릭의 삶인가? 스스로도 이 상황이 믿기지 않을 때가 많다.

   

오늘 오후 5시 30분에 교과 파트너 선생님이 헐레벌떡 뛰어오더니 말씀하셨다.

“은정 샘, 우리 원안지 오늘 밤에 집에서 좀 봐줄 수 있어요? 오늘 내가 출장인데 도저히 마지막으로 검토할 시간이 안 돼. 내일 제출해야 하니까 샘이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봐줘.”

오늘 오전에 둘이 검토에 검토를 끝낸 원안지였다. 편집자인 그 선생님이 마지막 편집 후 확인 작업을 해야 하는 터였다. 그 선생님에게 나는,

“아뇨. 네. 아뇨, 네. 네, 아뇨. 네.”라고 대답했다.

(오늘밤에 집에 가서 다른 일 해야 하는데)아뇨. (그래도 원안지는 내 일인걸)네. (마지막 작업은 저 선생님이 하기로 했잖아.)아뇨. (지금 제일 중요한 게 내 원안지 검토 일이지.)네.

결국 원안지가 담긴 봉투를 받아 내 해야 할 일 목록에 추가했다.     


어떤 순서로 일을 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지금 나의 하루 중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았다. 그러다가 가장 뒤로 밀려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되었다. 가슴이 저미어 오기 시작한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왜 지금 이 순간에는 가장 뒤에 가 있는 것일까. 나는 왜 이런 상황을 자초했을까.     


퇴근하고 집에 들어가서 아이들을 꼭 한 번 안아주고 나는 바로 노트북을 켠다. 풀리지 않는 일들을 끙끙대며 붙잡고 있다 보면 내 옆에서 풍경처럼 뛰어놀던 아이들이 어느새 조용해진다. 각자의 방에서 잠들어 있는 아이들에게 이미 늦은 굿나잇 뽀뽀를 하고 나는 다시 노트북으로 돌아온다. 12시가 한참 지나서야 나는 무거운 몸을 일으킨다. 그리고 잠깐 눈을 붙인 뒤 새벽같이 집을 나선다. 아침에 집을 나서기 전에 자고 있는 아이들에게 뽀뽀 한 번. 이것이 요즘 내가 아이들과 함께 한 것의 전부이다.     


그런데 그 뽀뽀 한 번, 포옹 한 번이 내 하루에 갖는 의미가 특별하다. 결국 이렇게 아이들의 온기를 느끼는 힘으로 버티고 있으면서 왜 이렇게 노트북을 붙들고 있는건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주말에도 도서관으로 가서 일을 하는 내게 아이들은 묻는다.

엄마, 언제 일 다 해?


그래도 다행인 것은 이런 삶에 끝은 있다는 것이다. 내가 만약 이렇게 계속해서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면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만두었을 것이다.     


나의 행복, 나의 사랑을 옆에 두고도 나는 또 노트북만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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