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좋은음악수집가 Dec 31. 2022

모든 도전에 '늦음'은 없는 것 같아요.

김추자 - It's Not Too Late (2014)

 나는 유튜브를 즐겨보는 편이다. 수많은 프로페셔널 아티스트뿐 아니라 아마추어로 활동하는 아티스트들도 볼 수 있으며 전 세계의 아티스트의 공연을 볼 수 있다. 그렇게 알게 된 아티스트 중에서 실제로 SNS를 통해 알게 된 사람들도 더러 있고 언젠가는 내가 직접 세계를 돌던지 그들이 우리나라에 방문하게 되어 직접 볼 날이 있지 않을까? 어떻게든 만날 사람은 만나게 되어있다는 생각을 늘 가슴속에 간직하며 사는 것 같다.


몇 년 전, 유튜브를 통해 알게 된 '아메리카 갓 탤런트'라는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는데 거기에 나타난 꽤나 고령의 한 할아버지를 알게 되었다. 84살의 레이 제셀(Ray Jessel)이라는 할아버지는 나이가 몇 살이냐고 묻는 심사위원의 질문에 "남들에게 나눠 줄 만큼 많이 먹었다." 라며 재치 있게 응수했고 그리고 시작된 그의 곡은 담담하게 불렀지만 관객들과 심사위원들에게 충격과 공포(?) 그리고 환호를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84세 레이 제셀의 아메리카 갓 탤런트 도전! 그리고 그는 당당히 합격한다. 가사는 영어를 조금 알면 알아들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 늦은 나이임에도 '도전'을 했다는 것이다. 만약 그가 떨어졌어도 나의 마음은 레이 할아버지를 응원했을 테지만 안타깝게도 85세의 나이로 그는 세상을 떠났기에 그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없게 되었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수많은 상황을 두고 많은 도전을 한다. 나라고 도전하지 않았다고 하면 그것은 100% 거짓이다. 도전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갓난아기 시절에 겪은 뒤집기, 유치원 시절에 높은 미끄럼틀에서 안전함을 사뿐히 무시하고 모래사장으로 뛰어내린 것, 유년기에 많은 친구들에게 날린 주먹, 경상북도 도민체전, 대학교 합격, 밴드를 결성하고의 첫 공연, 취업 그리고 브런치 작가와 피아노 성인반 등 모두 내가 저지른 '도전'이다. 절대 가만히 있는 성격도 아닌 것도 한몫할 것이다.


모든 도전에 성공이 있으면 정말 좋겠지만 그렇지 않았던 도전도 많았다. 2022년 한 해만 두고 봐도 그렇다. 자격증을 따보겠답시고 시도만 하고 건진 것은 1개뿐이었고 공모전에도 엄청나게 도전했지만 제대로 성공한 사례가 없었다. 없어도 된다. 나는 또 도전할 것이다.


물론 또 처참하게 실패해도 나는 상관없다. 특히 글쓰기 하나만 두고도 정말 부지런히 살아왔다고 자부한다. 2주에 딱 한편 발행하는 대신 중간중간에 돌발성 발행을 하였지만 단 한차례의 휴재가 없었다. 내가 아무리 실패해도 결국 나의 무기는 꾸준함에 있는 것. 차라리 계속 도전은 하면 했지 그만두는 일은 없을 것이다. 어떠한 자격증이건 악기건 공모전이건!




아버지가 어느덧 환갑을 맞이하실 때가 되었다. 거의 주말마다 통화를 하는 부자가 대화를 하다가 당신의 생신을 앞두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문득 머릿속을 스쳐 지나는 것을 말씀드렸다.


"오! 아버지 아버지!!"

"왜?"

"환갑이 60이잖아요? 그걸 조금 다르게 생각하면 세 번째 스무 살이네요?!"


그렇다. 2023년 음력 1월은 아버지의 환갑이 예정되어 있다. (나는 내년 양력 1월에 서른둘!) 나는 이리도 호들갑을 떨었는데 정작 아버지는 세 번째 스무 살에 별 감흥이 없으셨다가도 


"첫 스무 살 까지는 시간이 정말 안 가는 것 같았는데 두 번째 스무 살 까지는 시간이 빨리 갔고 지금까지는 더 빨리 가는 것처럼 느껴진다."라고 말을 이으셨다. 나도 시간이 빠르다고 느끼는데 아버지도 그렇게 느끼시는 걸로 봐서는 부자가 늘 바쁜 삶은 사는 것이 아닐까 하는 걱정도 든다. 근데 틀린 말이 아니다. 연말도 바쁘고 연초도 바쁘게 생겼다. 목표를 세운만큼 다시 움직여야 하니까. 그만큼 또 힘을 내서 움직여야겠다.



2022년이 역사의 한 페이지에 자리하는 동안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정말 바쁜 한 해였습니다. 2023년도 잘 부탁드립니다. 많은 응원도 부탁드립니다. 마음으로 응원하셔도 좋지만 대놓고 해주시는 응원도 저에겐 큰 힘이 된답니다!




전곡 감상은 여기에서!


모든 음반에 이렇게 싸인이 되어있다. 그중에서 가장 모양이 이쁜 것으로 구입했다.


 33년 만에 돌아온 김추자의 음반의 타이틀은 <IT'S NOT TOO LATE>, 복귀하는데 30년이 넘게 걸렸으나 오히려 덤덤한 그녀의 너스레마저 느껴지는 타이틀이 아닐까? 보통 오래된 가수라면 공연 잠깐하고 다시 들어가는 것에 반해 김추자는 달랐다. '복귀선언 - 음반 발매 - 공연'의 삼박자가 완벽하게 이루어졌다. 정말 아쉬운 것이 있었다면 내가 그녀의 공연에 가지 못했다는 것. 그래도 그녀의 음반을 발매직후 바로 구입했다는 것만으로도 위안을 삼는다. 그때 나는 겨우 대학생이었을 뿐.


김추자가 신중현 사단에서 가장 핵심적이고 많은 히트곡을 남긴 가수이다 보니 이 음반에 담긴 9곡 중, 5곡이 신중현의 곡이다. (몰라주고 말았어, 가버린 사람아, 태양의 빛, 내 곁에 있듯이, 고독한 마음) 특히 신중현의 싸이키델릭 록 사운드를 33년간 모아놓은 원기옥을 한방에 터뜨리는 듯한 김추자의 표현을 극대화하기 위해 국내 최고의 세션들이 모였다는 것도 인상깊다.


음반의 뒷면

 김추자는 1951년에 태어나 1969년, 신중현의 눈에 띄어 <늦기 전에>라는 음반을 통해 세상에 자신의 이름을 알리게 된다. 당시에 발표했던 '늦기 전에',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가 좋은 반응을 이끌어냈고 신중현은 당시 덩키스라는 그룹을 이끌고 이 음반에 반주를 맡았고 신중현 음악에 있어 싸이키델릭을 최대치로 이끌어 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였다. 그리고 덩키스를 해체한 후에 만들었던 퀘스천스를 결성하였을 때도 김추자는 보컬리스트로 활동하였으며 1969년부터 1971년 초 까지는 신중현이 작곡한 '님은 먼 곳에', '거짓말이야' 등의 곡으로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당시에는 파격적이었던 패션과 육감적인 몸매 그리고 댄스까지 섭렵한 그녀에게 '담배는 청자, 노래는 추자'라는 수식어도 붙기도 했다. 


당시 연예인(가수)이라는 직업은 '딴따라'라는 수식어와 더불어 상당히 하찮은 대우를 받았던 시기다. 1971년 여름, 김추자는 돌연 은퇴를 선언하기도 하였다가 그해 겨울에 다시 복귀를 예정하였지만 1971년 12월 5일, 자신의 매니저 소윤석에게 소주병에 얼굴이 찢어지는 부상을 당하는 시련을 겪어서 가수활동에 비상이 걸려버리기도 했다.


하지만 1974년에 발표한 '무인도'를 통하여 그녀는 재기에 성공하지만 1975년 12월, 가요계 정화운동이라는 명목 아래에 모든 아티스트들이 자유롭지 못한 그 시절에는 김추자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리고 그녀는 1980년대부터는 아주 가끔씩 그녀의 무대를 만들어주지 않는 이상 만나기가 어려운 가수이기도 했다.


음반을 활짝 펼치면 이런 모습이다. 싸이키델릭한 아트웍이 멋지다.

 그런 그녀가 다시 무대로 돌아올 수 있었던 원동력은 딸의 한마디가 굉장히 컸다고 한다. 

"엄마 나랑 같이 늙어가는데, 엄마 늙지 않았어. 주름도 없어. 그러니까 엄마 노래해."

듣는 이에게 얼마나 힘이 되는 말이 되었을까? 그리고 그녀는 2014년, 33년 만에 컴백을 발표하여 기자회견을 하였으며 그해 5월에는 이틀간 공연을 하였다! 정말 가지 못한 것이 아쉬울 뿐. 다시 돌아오는 날을 더 기다려 본다. 더 늦기전에!

매거진의 이전글 동요는 어른의 마음을 움직이는 노래예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