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스토리에 적어놓은 나의 프로필 소개글을 제대로 보셨다면 내가 공동저서로 참여한 책의 제목에 눈길이 가셨을 지도 모른다. 사실 그 책은 바코드가 없어서 시중에서 구할 수 없는 책이다. 그래서 아주 가끔 "그 책 어디서 구할 수 있어요?"라고 질문을 받으면 상당히 난감하다. 그래도 궁금증을 가져주셔서 감사하지만 나도 남은 게 한 권뿐이다. 내가 스물아홉 살 시절 '당장 내일 죽는다면?'과 '10년 후에 죽는다면?'에 대한 유언을 남긴 그 책을 이 글을 쓰면서 다시 한번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제일 첫 문장에는 이런 노래가사를 썼다.
이별은 언제고 또 찾아오는 법 설령 이게 마지막이라고 해도 우리 다시 만날 그날을 위해서 웃으며 서로 떠나보내기로 해 <스위트피 - 한 번만 더>
살아있는 사람이 먼저 떠나는 사람을 위해 과연 웃으며 떠나보낼 수 있을까? 내가 또 다른 세상으로 떠나는 길에서 "그래 내 먼저 간데이~" 하며 의연함을 지킬 수 있을까? 나를 떠나보내는 사람들이 웃으며 나를 보내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만 그래도 지나고 나서 나를 추억하며 웃을 수 있다면 그걸로도 아주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난 사실 세상을 떠난다면 세상에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어떠한 '평가'를 받을지에 대한 어쩌면 쓸데없을 생각에 잠길 때가 있다. 대충 내가 자연스럽게 죽는다고 가정하고 나의 가족들이나 지인들이 모인 자리에서 나의 임종을 지켜준다고 가정했을 때 나는 어떻게든 모인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고 떠나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왜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되었는지 정확한 기원은 알 수 없지만 즐겨봤던 예능 프로그램에서 방송인 후지타 사유리가 자신의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사실 난 중국인이야"라고 숨을 거두셨다고 한다. 당시 그녀의 가족들은 혼란에 빠졌다고 하지만 그분은 생전에 거짓말을 잘하셨다고 한다. 그리고 사유리의 부모님이 결혼식을 올리는 당일에 사유리의 외할아버지는 어디론가 사라지시고 웨이터 복장으로 갈아입은 후 하객들에게 술을 따르고 계셨다고 하니 분명 웃음을 주시려고 한 것이 틀림없다.
최후의 순간에 꼭 농담을 치기 위해 농담을 연구한다거나 한때 유행했던 <최불암 시리즈>, <사오정 시리즈> 등을 사려고 눈에 불을 켜고 중고나라를 뒤적거리지는 않는다. 그냥 염두에만 두고 있다. 사람은 언제 죽을지 모르기 때문에.. 하지만 내가 죽는 날이 도래하였을 땐 꼭 주변에 누구든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웃기고 떠나지. 그래야 내 마지막 꿈이 이루어지지... 그래도 걱정하지 말자 "난 사실 외계인의 임무를 끝내고 올라간다." 같은 농담은 안 칠 테니까.
몇 년 전,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같이 졸업한 동창이 세상을 떠났다. 2020년 10월 18일, 나는 소식을 듣고 머리가 한동안 멍했다. 사실 대학교를 들어가고 나서 딱 한 번밖에 못 봤던 녀석인데 같은 톡방에 있던 친구에게 소식을 들었을 때 의자에 앉아서 정말 펑펑 울었다. 운다고 해결이 될 것은 아니었지만 내가 그 녀석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 녀석과의 추억만큼 쏟아낸 눈물뿐이었다는 것이 너무 가슴 아팠다.
그리고 얼마 전에도 내가 존경하는 분이 세상을 떠났다는 카톡을 받았을 때 그 자리에서 주저앉고 울고 말았다. 감정을 금방 원상복구 시키는 것이 정말 어려웠고 또 나의 마음 한편이 떨어져 나가는 경험을 할 때 참으로 괴로웠음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지금은 괜찮아졌다. 괜찮아져야 한다. 그게 먼저 간 사람을 위한 예의다.
가까운, 가까웠던 아니면 내가 조금이라도 알고 지낸 사람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직접 받거나 건너 건너 듣게 되면 기분이 알게 모르게 다운된다. 물론 알고 지낸 정도에 따라 기분이 원상복구 되는데 시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죽음'이라는 단어에 대해 많은 생각에 잠기기도 한다. 내 나이가 아직 30대 초반에 죽음을 생각하기엔 이른 나이지만 나의 죽음보다 다른 사람과의 이별에 대한 의연한 대처가 여전히 준비되지 않음을 느낀다. 그래서 준비하지 못한 상황에서의 이별은 조금 더 아프다.
그래서 내가 내린 결론은 '죽음'이라는 단어에 늘 준비는 하되 너무 많은 감정을 쏟지 않는 것이다. 100세 시대에서 30대는 아직도 어리다. 지금 나이에서 두 배 이상을 살아도 실감이 나지 않을 수 있다. 아직은 이르다! 슬픈 날도 기쁜 날도 뜻하지 않게 찾아올 수 있다. 마지막이 언제일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지만 그래도 웃으며 떠나보내는 날을 상상해 본다. 정말 저 노래가사처럼 나의 마지막을 장식하였으면 얼마나 좋을까! 나의 묘비명도 이미 정해놨다.
구할 수 없는 책 <그럼 장례식에서 뵙겠습니다.>에 내가 구상한 묘비명은...
그 누구보다도 사람과 음악을 그리고 대한민국을 사랑했던 사람. 당신이 지금 밟고 있는 곳은 제 '그곳'입니다...
'그곳'은 여러분들의 상상에 맡기겠다.
훗! 죽고 나서도 이렇게라도 여러분들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면 난 그것으로 성공! 끝! 그리고 헤어진 사람들과 다시 만날 수 있다는 희망도 짧게나마 가져본다.
델리스파이스의 김민규 솔로 프로젝트, 스위트피의 LP박스세트.
델리스파이스 라는 팀을 우리 세대에서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차우차우>, <항상 엔진을 켜둘께>, <고백> 등의 곡은 어쩌면 그 시절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모던 록이었으며 그 음악들을 다시 들을 때 자신이 가졌던 추억도 다시 생생하게 떠오르게 하는 그런 밴드였다. (나는 많은 곡들 중에서 <Y.A.T.C>와 <Missing you>를 가장 좋아했던 것은 안 비밀)
그랬던 프런트맨 김민규의 솔로 프로젝트 스위트피는델리스파이스와는 또 다른 매력을 선사했고 '월출'이라는 주제로 발매한 모든 음반을 LP로 담아 박스세트를 2020년에 출시했다.
당시 이 음반을 살 수 있었던 계기는 '응답하라 오리지널 팝'의 저자 류석원 형님의 도움이 꽤나 컸는데 형님께서 나의 음악성향을 일찌감치 파악하시고 이 음반이 나온 것에 대한 정보를 내게 알려주셨다. 스위트피의 음반이 개별적으로 LP가 나오긴 했지만 박스세트로 한 번에 나왔으니 이 참에 질러보자는 느낌으로 망설임 없이 구입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3집 <거절하지 못할 제안> A Side부터 C Side 까지가 정규 수록곡이고 D Side는 라이브 버전을 담았다.
경쾌한 어쿠스틱 기타 소리로 시작하는 <한 번만 더>를 처음 들었을 때가 고등학교 3학년이었다. 부끄러웠던 과거지만 인디 음악을 마구잡이로 불법 다운로드 후 전자사전에 왕창 넣어 다녔는데 휴대폰은 학교 규칙상 가지고 다닐 수 없었고 음악은 계속 듣고 싶었기에 어쩌면 유일한 방법이기도 했다. 공부하는 척하며 단어 찾아보는 척하며 음악을 들을 수 있었던 나날이었으니... 그렇다고 해서 선생님이 수업하실 때 음악을 들은 적은 절대 없다. 무조건 야간자율학습 시간에만! 날도 어둑어둑했겠다 나의 감성을 채울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물론 공부를 더 열심히 했다면 더 좋은 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겠지만 후회는 없다. 그때의 감성이 지금까지도 이어져 오는 것에 감사한다.
그리고 LP로 다시 들을 수 있어서 어쩌면 불법 다운로드를 한 것에 대한 죗값(?)을 치렀다고 늘 믿는다. 좋은 음악이 담긴 음반을 제값을 지불하고 샀으니까.
'한 번만 더'도 좋아하지만 '가장 어두운 밤의 위로'도 내가 가장 사랑하는 곡이다.
대학교에 올라와서 밴드 동아리를 할 때, 이 곡으로 공연을 하고 싶었다. 그리 어려운 곡도 아니었는데... 근데 당시 기타를 치던 불청객 녀석(어째 내 글에 너무 자주 나온다.)이 기타솔로가 어렵다는 이유로 무산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아쉽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언젠가는 이 곡을 부를 날이 오겠지 뭐... 혼자서 통기타 잡고 공연할 때는 몇 번 불러봤지만 특유의 흥을 살리기는 참 어려웠다. 근데.. 내 인생에서 과연 괜찮은 밴드가 만들어지긴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