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安寧)에는 두 가지의 뜻이 있다. 만나는 사람에게 건네는 안녕과 헤어지는 사람에게 전하는 안녕. 이번의 주제는 헤어지는 사람에게 전하는 안녕에 관하여 써보고자 한다.
최근 나의 고향, 경상북도에 다녀왔다. 사실 대구가 나의 고향이지만 이제는 경주와 영천이 내가 편안하게 쉴 수 있는 나의 보금자리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산에서의 삶이 모두 정리된 후 가족이 이사를 했다. 그래봤자 거기서 거기니 태어난 곳은 대구일지라도 이제는 아버지가 터 잡으신 곳이 곧 나의 고향이다.
내가 고향으로 내려간 토요일, 아버지의 환갑이기도 했고 오래간만에 온 가족들이 모일 수 있었는데 아버지, 어머니뿐만 아니라 가정을 꾸린 동생의 가족 그리고 나까지, 조카의 돌잔치 이후로 모두가 아주 오랜만에 모였다. 화기애애한 모습이 얼마만이던가? 최근까지 고된 일은 어떻게 버티며 살아낼 수 있었다지만 그러면서 마음이 병들어 가는 것에는 무신경할 수 없었다. 타이밍이 정말 좋아서 오랜만에 만난 가족들과 함께 서로의 근황을 묻고 그리고 웃었다. 그리고 조카 서윤이의 애교는 가족모임을 더욱 밝게 만들어 주기까지 했으니 아버지의 환갑잔칫날은, 당신의 '세 번째 스무 살'의 시작을 밝게 만들어 주는 것 같았다.
"호국원에 들렸다 가자."
식사를 마친 아버지께서 나지막이 내게 말씀하셨다. 집으로 돌아가기 전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계신 곳에 한번 가자고. 그러고 보니 제대로 찾아뵌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마침 가자고 하셔서 기분이 묘했다. 모임장소와 집 사이에 영천 호국원이 있었으니 동선도 나쁘지 않았고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환갑을 맞으신 당신께서 얼마나 보고 싶었을까?
아버지를 모시고 가는 내내 마음이 묘했다. 나중에 동생에게 들었을 때, 아버지께서 호국원에 가자고 하셨을 때부터 내 눈가가 슬퍼 보였다고 했다. 틀린 말도 아니었다. 차에서 나오는 음악을 끄고 아버지와 어린 시절을 추억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나는 운전에 집중하기 어려울 정도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아버지와 내가 떠올리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추억은 같은 그림이었다. 당신은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막내아들이었고 나는 그의 첫째 아들이었으니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고 살았겠는가. 그래서 두 분을 추억하는 내내 흘리는 눈물은 나쁜 눈물이 아니었다. 너무 보고 싶어서 참지 못했던 감정을 톡 건드렸을 뿐.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걸 그때는 제대로 인지를 못했어요. 돌아가시고 나중에 가족들이 모여서 추도예배를 하는데 '내 주를 가까이'가 흘러나왔을 때 그제야 울었으니까요."
이걸 말하는 데도 한참이 걸렸다. 그만큼 참을 수 없는 감정을 억누르는데 힘겨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할머니가 해주신 계란찜 기억나요?"
"기억하지"
"그 특유의 짠맛이 있었거든요. 그걸 엄마는 재현을 못했잖아요? 그래서 그 계란찜을 절대 못 잊어요."
"니 엄마가 요리는 잘했는데 그거 하나만 별로였다. (웃음)"
계란찜에 대한 추억을 나누면서도 어찌 부자간의 추억이 많은지. 그 당시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사셨던 대구의 집 배경도 하나하나 생생하게 떠올랐다. 벽돌공장 사무실 안에 있는 작은 방도 기억이 생생했고 큰집 내부의 모든 것도 기억이 났다. 특히 제일 기억에 남는 건 명절에 가족들에게 인사를 드리고 할아버지 방으로 가면 TV옆에 박카스 같은 자양강장제 음료수가 있었는데 나는 어린 나이에 그 맛을 알아버려서 매번 달라고 했다. 아버지나 어머니는 왜 그걸 달라고 하냐고 웃으며 잔소리를 하셨지만 할아버지는 그게 참 귀여우셨는지 매번 주셨다. 그래서 늘 기억에 남아있을 수밖에.
"할아버지는 대학교 4학년 때 돌아가셨거든요? 그날도 기억나요. 엄마가 그 시간에 전화하실 분이 아닌데 집으로 바로 오라고 했어요. 그때 거의 꼭대기에 위치한 강의실에서 버스정류장까지 엄청 뛰어서 내려갔는데 선배들이 그걸 보고 '왜 그렇게 급하게 내려와?' 하길래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라고 했죠. 버스 안에서 계속 눈물을 훔치는데 계속 제 어깨를 두드려줬던 기억이 나요."
어머니의 전화를 받고 나서 정말 빠르게 달렸다. 갑작스러운 헤어짐이 정말 낯설기도 했겠지만 그런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리고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할아버지 장례식 때 모든 가족을 볼 수 있어서 너무 좋았는데... 할아버지 영정사진을 한참 쳐다봤거든요? 그때 저는 영정사진 보면서 뭐라도 한마디만 해달라고 마음속으로 엄청 빌었어요."
하지만 당연하게도 듣지 못했다. 그래도 그날을 떠올리면 할아버지께 정말 감사하다. 오랜 시간 못 봤던 가족들도 한자리에 모일 수 있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나중에 돼서야 다시 모이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라는 것도 한참 후에야 알았으니.
추억을 꺼내면서 같이 흐르는 눈물을 그치는 데는 상당히 오래 걸렸다. 호국원에 도착하고 나서야 조금 그쳤지만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같이 계신 곳에 도착했을 때는 안경을 벗고 울어버렸다.
"이리 와라. 할아버지 할머니한테 인사해야지"
제일 위칸에 계시는 할아버지의 할머니의 얼굴을 너무 오랜만에 뵈었다. '손자가 이제야 왔네요. 너무 보고 싶었어요. 이제야 찾아봬서 죄송해요.'
짧은 만남을 가진 후 부자는 조용히 서로 담배를 물고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내가 그 정적을 깼다.
"여기(호국원) 오자고 해줘서 감사해요."
"왜?"
"그냥.. 보고 싶었거든요."
"짜식"
환갑을 맞은 아버지와 서른을 넘긴 아들의 같은 추억이 담긴 그림은 붓을 내려놨다. 완성했거나 미완성이거나 상관없다. 늘 좋았던 두 사람만 있을 뿐. 할아버지, 할머니를 오랜만에 만났을 때 안녕을 알렸고 그 자리를 떴을 때도 안녕을 그리고 살아가는 삶 속에서도 늘 안녕하기를 빌며 살아갈 뿐이다. 우리가 살면서 만나거나 헤어질 때 가장 많이 쓰는 단어는 '편안할 안(安)'과 '편안할 녕(寧)'이 만나서 '안녕'이 되었다. 만났을 때는 그간 편히 잘 지냈냐는 의미로 헤어질 때는 다음에 만날 때까지 편안하게 보내라는 의미라 생각한다. 그래서일까 나의 인생을 조금 더 '안녕'하기 위해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물론, 내가 사는 곳으로 돌아갈 때, 먼 길을 운전하며 "아이고~ 할아버지 할머니, 내 잘 좀 돌봐주이소."하며 집으로 돌아가는 운전의 '안녕'을 기원했다. 5시간의 운전을 끝으로 안전하게 다시 나의 삶으로 돌아온 것은 덤.
(이들의 곡을 들어보시며 읽으시는 것도 아주 괜찮은 방법입니다.)
오프코스의 히트곡 사요나라 가 담겨있는 싱글. 뒷면은 汐風のなかで.
(좌측부터 스즈키 야스히로(G), 마츠오 카즈히로(G) , 시미즈 히토시(B), 오마 지로(D), 오다 카즈마사(V) )
오프코스(Off Course / オフコース)의 결성은 보컬이자 키보드를 담당하는 오다 카즈마사(小田和正)와 기타리스트 스즈키 야스히로(鈴木康博)의 만남부터 거슬러 올라간다. 이들은 유년기에 만났는데 스즈키는 당시 음악에 대해 잘 모르던 어린 오다를 음악의 세계로 끌어들이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하였고 이것이 훗날 오프코스의 결성까지 이르게 하였다. 그리고 이들이 대학교에 재학 중, 지누시 미치오(地主道夫), 스도 타카후미(須藤尊史)와 함께 만든 팀이 바로 'the Off Course'가 된다.
1969년, 이들은 '야마하 뮤직 콘테스트'에 출전하여 지역 예선에서 1위를 차지하고 본선에 진출하게 되는데 당시 이들은 최종 1위를 거두고 해산하기로 마음먹었으나 2위를 하게 된다. 당시 1위는 아카이 토리(赤い鳥)라는 팀이었는데 어찌 되었든 두 팀은 일본 대중음악계에서 유명한 팀이 되었으니 결과적으로는 좋은 셈.
아무튼 1위를 하지 못한 이들은 오기가 생겼던 것인지 계속 음악인의 길을 걷겠다는 마음을 굳히게 된다.
Off Course 두 번째 BEST 음반. 1978~1981년 사이에 발표한 히트곡들로 묶여있다.
오프코스가 1979년에 발표한 さよなら(사요나라)의 뜻은 우리가 중학교 때 배우는 헤어질 때의 '안녕'이다. 하지만 그냥 안녕이라고 해석하면 약간은 곤란한데 다시 못 볼 것 같은.. 기약 없이 헤어질 때 쓰는 표현이 알맞을 것 같다.
노래 가사는 헤어지는 연인에게 보내는 마음을 노래로 표현했다고 봐야 하지만 그래도 '헤어짐'은 무겁고 슬프기 때문에 나는 돌아가신 조부모님을 떠올렸다. 언제 다시 뵐 지에 대한 기약이 전혀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많은 정보는 없지만 대략 비틀스의 '매미투' 음반을 패러디 한 것이다. 자켓에 있는 검정색 곰인형 탈을 쓴 사람이 오다 카즈마사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음반을 수집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위의 세 음반은 정말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다. 중고 LP사이트나 발품을 팔아도 꽤나 저렴한 가격에 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며 특히, 두 번째의 베스트 음반은 오프코스의 초창기 히트곡들을 모아 놓았기 때문에 양질의 사운드와 멜로디를 한 음반에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음반은 さよなら의 연주곡이 삽입되어 있다. 단순히 가사가 없는 버전이 아니라 당시 1982년에 오프코스가 셀프로 제작한 드라마에 삽입된 곡이며 드라마 분위기에 맞게 만든 연주곡인 듯하다. 그래서인지 하모니카의 선율이 굉장히 인상 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