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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은음악수집가 Feb 25. 2023

공포게임 좋아하세요? 저는 안 좋아하지만...

황병기 3집 - <미궁>

 게임을 즐겨하는 편은 아니다. 지금도 PC방에서 인기가 많다고 하는 리그 오브 레전드(LOL)나 배틀 그라운드 같은 게임이 인기가 있다고 하지만 1년에 술을 마시는 빈도와 PC방에 가는 횟수가 거의 비슷하니 아예 안 가는 게 맞겠다. 유일하게 지금 시점에서 하는 게임은 오로지 모바일 게임인데 그것은 슈퍼셀에서 만든 '클래시 로얄'과 국내게임회사 HIDEA에서 만든 '고양이와 스프'. 이 두 가지를 하는 것 말고는 전혀 하는 게 없다. 그나마 본업으로 인해 귀찮아져서 손도 못 대고 있다는 게 안타까울 뿐.


그래도 어릴 때는 게임을 꽤나 했다. 어릴 때 했던 게임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들을 꼽으라고 한다면...


1. 드로이얀 온라인

2. 스타크래프트 1

3. 디아블로 2

4. 메탈슬러그 1~4

5. 킹오브파이터즈 95~98

6. 테크모 월드컵 98

7. 피파 온라인 1

8. 바람의 나라

9. 메이플 스토리

10. 거상


 바로 떠오른 어린 시절에 즐겨했던 게임목록들이다. 물론 더 있다. 생각은 많지만 10개로 줄였다. 아마 저 게임 목록에서 나와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독자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불후의 명작이라 불리는 '슈퍼마리오 브로스'를 왜 안 해봤겠는가! 게임보이가 집에 없었으니 제대로 즐긴 적이 없었을 뿐 어지간히 명작으로 불렸던 게임들은 야금야금 다 해봤다. 위에 선정한 게임 중 극히 희박한 확률로 고전명작이 있는 오락실을 가면 꼭 플레이를 해본다. 몇 년 전에만 해도 동네에 '메탈슬러그 1'이 있던 오락실이 있어서 정말 반가웠는데 언제부터인가 사라지고 카페가 들어선 후로는 마음이 떨어져 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나의 인생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알고 지낸 녀석과의 추억을 잠시 꺼내본다. 그 녀석은 내가 발행한 글에도 등장했던 <불청객, 다시 기타를 잡다.>에서 '불청객'으로 등장한 녀석인데, 이놈을 어느 정도로 오래 알고 지냈냐면 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이 녀석은 미취학 아동이었으며 그 녀석이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쯤에 알게 되었으니.. 그리고 지금도 연락을 하고 지낼 정도로 징글징글한 녀석이다. 그래도 나와 결이 맞는 편이 있어서 인지 대학교도 한때 같은 학과의 선후배 사이기도 했다.


이 친구의 집은 당시 '플레이스테이션 1'이 있었는데 그때가 1999년~2000년이라 감안했을 때 아주 대단한 게임기였고 집에서 '철권 3'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그곳은 굉장한 곳이었다. 아무나 들이지 않았고 당시 같은 교회를 다녔기에 나는 수시로 그 집을 갈 수 있었던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그때의 그 녀석과 내가 성인이라는 타이틀을 달면서 대학교도 같은 학교를 다녔고 그 녀석이 집을 못 가는 상황이 발생하면 내 자취방으로 데려갔는데 그때마다 어디서 알아왔는지 컴퓨터에 게임들을 다운로드하여 놓았다. 온라인 게임도 아닌 혼자서 가능한 게임이었는데 지금도 기억하는 것은 <To the moon><화이트데이 : 학교라는 이름의 미궁>이었다.


음반의 주제도 있고 하니 후자를 두고 이야기를 조금 풀어 나가야겠다. <화이트데이 : 학교라는 이름의 미궁(이하 화이트데이)>의 명성은 꽤나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섣불리 내가 플레이하지 못했던 이유는 간단했다. 그것은 '공포게임'이었기 때문이다.




 공포영화도 못 보는 내가 공포게임은 어떻게 하겠는가. 내가 절대 안 된다고 극구 말렸지만 그 녀석은 자신이 플레이할 것이니 괜찮다는 말로 나를 안심시켰다. 게다가 정말 내가 경악할 정도로 놀랬던 것은 이 게임의 엔딩이 한 가지가 아니고 여러 가지라는 것과 모든 엔딩을 보여주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보통 이 게임을 아무리 빠르게 한다고 쳐도 (물론 타임어택 기록을 보면 10분도 안 걸리긴 한다.) '어떻게 모든 엔딩을?' 하면서 대놓고 의아함을 드러냈다. 심지어 이 녀석은 쉬운 난이도도 선택하지 않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것도 신경쓰지 않으며 여유롭게 플레이한 후 여러 엔딩 중 하나만 보게 해주긴 했다.


숙달된 게이머가 아니라면 이 녀석에게 그냥 몇대 맞고 죽는거다. (출처 : 구글)


언젠가 나 혼자서 화이트데이를 한 적이 있다. 그 녀석이 했던 모습을 그대로 떠올리면서 천천히 하였지만 불쑥 튀어나오는 수위 아저씨의 소리를 오래 버틸 자신이 없었다.(열쇠 소리, 웃음소리 모든 것이 공포다.) 결국 쫄보의 화이트데이 점령은 끝끝내 이루어질 수 없었다. 나중에 이 이야기를 그 녀석에게 들려주었을 때 차라리 한심하다는 듯 내게 한마디 해주었으면 내가 공포게임에 대한 생각도 하지 않고 살았을 텐데... 그 녀석은 오히려 "그럼 아오오니 (일본에서 만든 공포게임, 보라색 괴물이 툭 튀어나옴과 동시에 깔리는 BGM이 인상적이다.)라는 게임 해볼래?"라고 해서 또 설득되고야 말았다. 다행히 그 게임은 오기가 생겨서 다 깼지만... 이제 더 이상 내 인생에서 공포게임은 없다! 절대!




가야금 명인 황병기의 3집 <미궁> 가야금을 다리에 놓고 오른손에 첼로 활을 들고 있는 모습이 굉장히 신선하다.

 황병기의 작품집은 1집부터 3집까지 소장하고 있다. 1집 <가야금 작품집>은 1978년에 나왔고 2집 <가야금 작품집 / 비단길>은 1980년 그리고 대망의 문제작 3집 <제3 작품집 / 미궁>은 1984년에 나왔다. <미궁>은 1975년에 지금은 명동예술극장인 명동 국립극장에서 초연하였으며 기존의 1집과 2집에서 선보인 황병기의 가야금 연주와는 차원이 다른 세계로 인도하는 탓에 실제로 공연 때 귀신을 봤다며 소리를 지르고 공연장은 나가는 관객도 있었으며 내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 '이 곡을 들으면 금방 죽는다.' 혹은 '이 곡을 들었던 사람이 자살을 했다.'라는 식의 소문이 끊이지 않았다.


그럴만한 것이 한 아티스트의 작품의 해설을 듣고(혹은 보고) 음악을 접하는 것과 그냥 음악을 듣는 것은 확연한 차이가 있다. <미궁>을 처음 들었을 때는 어렸을 때이긴 해도 그저 무서운 곡으로 인식하고 성인이 되어서 들어도 내겐 그저 '무서운 곡'이었다. 하지만 그의 작품세계와 그가 이 작품으로 표현하고자 했던 것을 알고 들었을 때는 조금 새롭게 들렸다. 홍신자의 웃음과 울음, 내레이션 하듯 읊조리는 알 수 없는 말들까지 모두. 완벽하게 이해했다는 말은 절대 하지 않겠다. 삶에서 희로애락을 어찌 내가 정의할 수 있겠는가. 단지 사자성어 일지라도 인간의 희로애락은 결국 나의 삶이 마무리되는 그 시점에 깨달음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곡이 워낙 길기 때문에 한 면이 <미궁>이다.


 "그.. 처음에 혼을 부르는 것.. 초혼의 노랜데 그것은 탄생을 의미합니다. 혼이 우주 어딘가에 있는 것을 끌어내는 것이 탄생 아닌가...  그래 가지고 그 소리가 산울림처럼 변하면 웃음소리하고 우는 소리 하고 섞입니다. 인간의 목소리 중에서 가장 원초적인 목소리.. 언어 이전에 목소리는 똑같지 않습니까? 미국사람이나 한국사람이나 웃는 소리는 통역이 필요 없죠. 똑같이 웃으니까요. 그래서 언어이전에 인간의 생명적인 어떤 소리, 그 (도입부를) 생각해서 그랬고 그다음에는 신음소리로 바뀌는데 신음소리라는 것은 고통을 이겨내는 소리이기도 하고... 어떤 역경을 이겨내는 의지의 소리가 되겠지요."


"그다음에는 말똥말똥하게 신문을 읽는 것이 나갑니다. 신문을 읽는 것은 인간의 문명을 상징하는 건데 그러다가 보면은 그 신문 읽는 소리가 점점 이렇게 말이 흐트러져 가지고 절규하는 소리로 변하고 그러고서는 모든 여태까지 소리를 전부 쓸어버린다고 할까요? 그런 바닷소리 같은 희한한 소리도 있고, 모든 것을 다 삼키면은 맨 마지막에 반야바라심경, 반야심경의 그 주문.. 신비한 뜻 모르는 그 주문으로 일종의 찬송가 같은 식으로 부르면서 모든 것을 저쪽 세계로 인도하는 인간의 한 주기를 제 나름대로는 생각하면서 쓴 곡입니다.


(EBS 스페이스 공감에서 <미궁>을 연주하며 나오는 인터뷰 중에서..)


 <미궁>에서 사용하는 악기는 가야금과 오로지 홍신자의 목소리뿐이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튕기는 주법에서 벗어나 첼로 활로 현을 켜기도 하고, 장구채를 사용하여 가야금의 몸통을 이리저리 긁고 치며, 거문고에서 사용하는 술대까지 사용하여 가야금의 현을 긁어내는 소리까지! 가야금이 낼 수 있는 소리의 한계를 뛰어넘어 최대치로 이끌어냈다. 괜히 가야금의 명인으로 불리는 것이 아닌 듯하다. 어떻게든 사물이나 보이지 않는 세계를 여러 시각으로 접근하는 것은 그가 이 시대에 내린 숙제가 아닐까? 그 숙제는 정말 어렵겠지만 많은 음악인들에게 귀감이 되기에 충분했던 작품이라 생각한다.



게임 화이트데이가 모바일 버전으로 제작할 당시 새로 녹음한 장면과 인터뷰. 목소리는 소프라노 윤인숙이 맡았다.


1996년 11월 17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에 위치 한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황병기 창작음악 35년’ 행사에서 연주한 <미궁> 목소리는 홍신자가 맡았다.


황병기 <미궁>의 원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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