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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은음악수집가 Jan 01. 2022

불청객, 다시 기타를 잡다.

반쪽짜리 음악인이 아닌 반의 반의 반쪽 뮤지션의 삶의 이야기.



불과 지난주에 <소년! 기타를 처음 만난 날.>을 발행하였는데 오늘의 제목은 <불청객, 다시 기타를 잡다.>다. 기타를 잡고 평생 기타를 아껴주고 계속 연주해왔을 거라 생각한 독자들에게는 아주 약간의 배신감(?)을 느낄 수 있을 테지만 어떻게 사람이 맨날 좋은 것만 하고 살 수 있겠는가!

가끔씩 권태기도 있을 수 있고 그것을 얼마나 슬기롭게 극복하는가 아니면 그만두는가는 오롯이 본인의 몫 아니겠는가!


기타를 처음 잡았던 순간부터 대학생 때 까지는 거의 매일 기타와 함께 했다. 대학교 4년간은 기타를 들고 다니는 것이 일상이었고 군대에 가서도 선임들에게 기타를 가르쳐 줄 정도로 다행스럽게 기타가 있어서 취미를 일정하게 유지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2015년, 직장을 잡고 나서는 기타를 본가에 놔두고 들고 올 생각이 없었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이 멀어진다고나 할까?

기타도 그랬다.




인생은 항상 뜻하지 않는 곳에서 사건이 발생하듯 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그렇지 않을까?

'사건'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조금은 가볍게 접근하고자 한다.


그냥 길을 걷다가 잊고 살았던 노래가 거리에 흘러나와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던가 지나가는 이성이 너무도 그 모습이 아름다워 계속 바라만 보게 된다던가 느닷없이 카카오톡으로 모바일 청첩장을 받는다던가.. 어쩌면 이런 것들이 전부 예상치 못한 '사건'이 아닐까?


가만히 있다가도 카카오톡을 바라보고 있으면서 느끼는 것은 요새 '업데이트한 친구' 기능 덕분에 추억 속의 인물들이 스쳐 지나갈 때가 많다.

'뭐야? 언제 결혼했대?'

'내가 아는 걔가 맞나?'

'잘 지내고 있나 보네...' 등등

그냥 하루하루가 늘 이런 식으로 지나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공감할 것이다. 그날 업무가 여러 곳에서 터져서 몸과 마음이 조급한데 전화기까지 뜨거우면 모든 것을 던져 버리고 싶지 않던가?

그리고 연락이 한동안 안 되던 '친구'라고 말하기 아까운 놈이 갑자기 연락이 와서 보험을 권유한다거나 다단계의 향기가 난다면 그때는 전화기를 부숴버리고 싶을 것이다.

(실제로 나는 당시 친구라는 놈이 친 다단계의 덫에 걸릴 뻔했다가 다른 친구에 의해 빠지기 직전에 도망 칠 수 있었다.)


직장인이 되고 지금 살고 있는 곳에 터를 잡고 나서 대학생 때 했던 밴드를 '다시 해볼까?'라는 생각조차 못한 채 하루하루 살아가다가 다른 취미를 가지면서 '밴드'와는 거리가 자연스레 멀어지게 되었다. 당시 내가 가졌던 취미 중 하나는 놀랍게도 그림 그리기였고 단순히 따라 그리기에 불과했지만 비용도 적게 들고 오롯이 혼자 하기엔 부담 없는 취미였다.

그리고 나만의 좁은 공간을 채워보고자 지금 필명에 걸맞게 음반을 모으기 시작했다. 단순히 음반을 모으는 것이 아니라 음반에 대한 에피소드를 혼자 공부하기도 했고 마음속 스승님으로 모시는 최규성 선생님(한국대중음악연구소 소장)을 알게 되고 나름의 취미가 무르익어 갈 무렵... 지금으로부터 4년 전 저녁에 전화가 왔다.


"히야! (형의 경상도 방언) 잘 지내고 있나?"


내 인생에서 알고 지낸 지 가장 오래된 녀석의 전화였다. 이 친구의 특기는 술만 마시면 전화를 이리저리 돌리는데 정말 뜬금없이 걸려온 전화였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너무 반가웠다.


"히야! 요새 음악 하나?"

"아니? 안 하는데?"

"기타는 (치고 있나?)"

"기타는 무슨.. 요새 음반 모으는 게 내 낙이여~"

"뭔 소리고? 히야... 기타 다시 잡아라 진짜 안된다.."

"술 마셨냐? 미친 소리 하고 앉았노?"

"히야.. 내 말 들어라 히야는 기타 다시 잡아야 된다."


그렇게 옥신각신 실랑이가 이어지고 통화가 끝난 후에도 그 자식의 말들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기타... 기타... 기타.... 다시 쳐야 하나..."


그날은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계속 '기타'만 중얼중얼거렸던 것 같다.


차라리 누군가 예언하듯 흔히 말하는 '좋은 정보'면 아마 삶을 풍족하게 살았을 것이라는 상상을 해본 적은 늘 있지만... 술에 취한 녀석이 느닷없이 전화를 해 '기타를 다시 시작해야 한다.'라며 경고하듯 말하는데 무시할만한 수준이 그 당시엔 아니었다.


다시 기타를 잡는 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지만 이미 마음속으로 정리된 감정을 다시 돌리는 것이 참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인간관계도 약간 틀어지면 다시 돌리기가 어려운데 악기는 오죽할까?

다시 기타를 들어 조율도 하고 제일 처음 쳤던 곡들을 하나하나 더듬어 갔다. 하나의 취미에 몰두한 적이 있었다면 오래 쉬어도 그 감각을 쉽게 되찾는... 어쩌면 자전거를 타는 것과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자전거를 타다가 오래 쉬어도 다시 오를 땐 금방 탈 수 있는 것처럼 기타도 그랬다.

그 전화 덕분에 아마추어 밴드 생활도 조금 할 수 있었고 새로운 사람들과 음악적인 교류도 있었으니 전화위복이 된 셈이라 치겠다.


밴드 High Wave Chemistry 시절, 서울 홍대에 위치한 하루스페이스버스 (현, 하루뮤직바)에서. 그저 밴드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 연락이 있고 나서 1년 후, 이번엔 내가 그 녀석에게 전화를 했다. 다행히(?) 이번엔 맨 정신이었다.


"어~ 형! 어쩐일이고?"

"야, 지난번에 술 마시고 나한테 전화해서 기타 다시 시작하라고 한 거 기억나냐?"

"기억나지~ 기타 다시 시작함?"

"니놈 덕분에 다시 시작했다."

"오? 진짜가? 아~ 나도 기타 다시 시작해야 하는데 시간이 없네~"

"뭐라고? 니 내랑 뭐 하나 해보려고 나한테 기타 다시 잡으라고 한 거 아이가?"

"아닌데? 그냥 말한 건데?"


아... 그냥 던졌던 말이었다니... 허탈했다. 서로에게 상처가 덜한 긍정적인(?) 욕설이 오갔다.

지금도 이 친구를 1년에 한두 번 정도 만나는데 그럴 때마다

"데스노트가 있으면 니 이름부터 적을 거야"라는 식의 농담을 건네곤 한다.

어쩌면 그 녀석은 예기치 못한 시간에 전화 와서 술주정을 부린 불청객 일수도 있겠지만 그때는 내가 걱정이 되어 툭 던진 말일수 있겠지만 그날 이후 새로운 삶의 시작을 알려준 좋은 의미(?)의 불청객 일 수 있겠다.

 

만약 그 말을 해주지 않았다면?

모르겠다. 지금의 내 인생에서 기타가 없는 삶은 상상하기가 싫다!




오늘의 질문

2021년이 추억이 되었고 2022년이 새롭게 시작되었는데 여러분들의 한해 목표가 있나요?

저는... 연애? 푸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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