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출근을 하면 '온나라'를 확인한다. 대한민국의 모든 공무원이라면 꼭 확인을 해야 하는 그것, 확인하지 않으면 왜 확인을 하지 않았는지 내게 추궁으로 돌아오기도 하고 확인을 했는데 그냥 지나쳐 혼나기도 여러 번, 그래서 사소한 것이라도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그리고 낯선 메일을 발견했는데 그것은 바로 '2022년의 목표 설정'이었다.
"이야~ 이런 것도 해야 해?" 하며 짧은 탄식을 뱉었다. 사실 목표 설정은 곧 버킷 리스트과 같은 것이었다. 살면서 버킷리스트가 없었던 적은 없다. '어떻게든 아득바득 노력하여 연애를 해보겠다.' 같은 목표나 '로또 당첨' 같은... 마치 현실적이면서도 이상적인 것은 딱 질색, 근데 누구나 그런 꿈은 꾸잖아? 아! 연애는 조금 다를 수 있다. 사랑은 있다가도 없는 것이라 생각하며 사는 편이기도 했으니
목표는 구체화시키지 않으면 생각으로 끝나게 된다는 생각을 늘 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추상적인 목표는 목표라고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오우! 그렇게 따지면 위 두 가지 항목은 너무 추상적인걸? 아님 말고. 근데 내가 취업을 한 순간부터 그 '낯선 메일'을 발견하기 전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한번 되돌아보게 되었다. 그래, 적어도 개차반으로 살지 않았다. 부모님께 어느 정도 인정을 받았고 건전한 취미를 가졌고 그것을 또 유지하고 있으니 제법 건강하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2년 아니 앞으로의 목표를 써야 했다. 10년 후, 20년 후, 30년 후까지 한번 써보란다.
제일 위칸에 나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인생 목표>였다. 정말 내 인생의 목표는 뭘까? '와! 이 정도의 목표면 정말 그 누구와도 차별화가 확실할 텐데!' 하는 생각을 한참 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겠냐마는 사실 누구나 '좋은 사람 만나 결혼해서 좋은 아버지 되기' 라던지 목표한 지점까지 끝까지 오른 후 멋지게 은퇴하여 행복하게 살겠다는 동화 같은 마무리를 원한다. 언제나 동화의 끝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로 끝나는 게 정석이고 그것을 보고 자란 우리도 그럴 필요가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
'근데 그건 너무 진부해. 좀 더 강력한(?) 것이 없을까?' 했던 찰나에 스쳐 지나가는 한마디가 있었다. 10대 때부터 줄기차게 외웠던 주문 같은 것, 그것은 바로 'Rock Will Never Die!!!'. 내가 서른이 넘어도 록은 절대 죽어서는 안 된다는 것. 그것을 당당하게 적었다. '27세 클럽'에도 나의 이름을 올리지 못한 마당에 록음악을 외치다 가는 것을 평생의 좌우명이자 목표로 삼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주변에서 나를 이상하게 봐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인생의 목표의 개수는 지구인의 숫자만큼 될 것이다. 아! 근데 우리 가족이 나의 글을 항상 주시하고 있는데 아! 아버지! 어머니! 아들은 여전히 철이 들지 않았습니다.
나의 인생 목표를 보고 누가 이런 질문을 했다. "Rock은 어떤 의미길래 이런 목표를 썼습니까?"
5초 정도 생각에 빠지고 나는 대답했다.
"대한민국에서 Rock이 메인스트림이 되는 조건에 제 목숨이 필요하다면, 나는 기꺼이 바칠 겁니다."
다소 허세가 다분해 보이지만 나는 늘 진심이다. 부모님이 비롯한 모든 가족들이 들으면 경악할 만한 내용이지만... Rock이 언제쯤 우리나라의 메인스트림이 될 날이 올까? 글쎄...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이 우승하는 게 어쩌면 더 빠를 수 있을지도? 내가 죽기 전에는 올려나? 아! 하느님 부처님 천지신명님!! 척박한 대한민국 땅에 기름진 Rock이 부활할 수 있다면, 그 조건에 제 목숨이 걸려있다면 저는 진짜로 드릴게요. 안된다고요? 그럼 말고요.
그의 목소리는 이제 슬프게 들린다. 어쩔 수 없나 보다.
"내 발모가지 잘라내고 월드컵 코리아! 내 손모가지 잘라내고 박찬호 20승!"
어쩌면 내가 이 글을 쓸 수 있었던 가사일 것이다.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의 1집 Infield Fly는 2003년과 2004년의 수록곡이 약간 다르다. 내가 가지고 있는 건 2004년 버전.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본명: 이진원, 1973-2010) 형님의 음악을 접했을 때가 대학교 1학년, 2010년이었다. 서울을 혼자서 가본 적이 없었던 촌뜨기 시절이고 불법 다운로드로 음악을 담고 다녔던 시절... 홍대는 정말 환상으로 가득한 곳이었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거나 음악으로 자신을 알려야겠다는 희망이 가득한 곳인 줄로만 알았던 곳이었으나 희망이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현실과 제일 가까웠던 곳임을 느꼈다.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은 야구를 사랑하는 아티스트답게 CD의 라벨도 야구공이다.
서울에 가야 할 뚜렷한 이유가 단지 '인디밴드'를 직접 보고 그 삶에 뛰어들겠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때문이었다. 그리고 고등학교 친구와 메신저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의 음악을 들려주며 "내가 언젠가 이런 사람처럼 음악을 할 거야."라고 선언한 날, 새벽 인터넷 뉴스 기사에 그가 세상을 떠났다는 기사가 올라왔다. 내가 정말 보고 싶었던 아티스트가 세상을 떠나서 더 이상 그의 음악을 듣지 못한다는 것이 너무 허무했다.
지금도 나는 그의 음악을 찬양한다. 찬양하라 위대한 그 이름 달빛요정
그래서 그의 음반을 2011년 경, 내가 만든 음악으로 경연대회를 나가기 전날에 홍대에 들려 그의 목소리가 담긴 음반을 두 장 구입했다. 그리고 경연대회를 홀로 기타를 들고 올라가서 3등을 한건 자랑이라면 자랑이겠지만...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이 전하는 메시지는 '조금은 어두운 현실을 조금이라도 이겨내기 위한 발버둥'이라 생각한다. 그의 음악이 그랬고 세상을 떠난 후 나온 <너클볼 컴플렉스>도 정말 그 다운 곡이었다. 그가 세상을 떠나고 여전히 그가 사랑하는 LG트윈스가 우승하지 못했지만 그가 남긴 절룩거리네의 가사에서 '내 손모가지 분지르고 박찬호 20승!'에서 아마 LG트윈스의 우승 염원도 담아 있었으리라...!
아! 형님! 조금만 더 살다가 갈 테니 60년만 기다려주세요!
2003년의 초판과 2004년의 재판은 수록곡의 차이가 있다. 11번, 12번 트랙이 새롭게 추가된 노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