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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ramram Mar 01. 2022

결혼준비에 있어서 최고의 난관 '신혼집 장만'

소문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결혼의 승패 여부는 신혼집 장만에 있다는 말. 가장 뚫어내기 힘든 난관이자 내 빈약한 재정 상태까지 되새겨볼 수 있는 과정인데, 걱정이 안 되었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물론 여자친구 앞에서는 계획이 있으니 걱정 말라고 했고, 뒤에선 식은땀을 흘리곤 했다. 눈치 빠른 여자친구도 걱정되기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오빠. 돈 없잖아.”

 어정쩡하게 돈이 없는 남자였다면 남자의 자존심이 긁혔으니 전쟁의 발단이 되었겠지만, 나는 상상 이상으로 돈이 없으니 어느 순간부터 저런 예민한 말에도 겸허히 받아들이는 경지에까지 오르고 말았다.

 “걱정 마. 다 방법이 있어. 알잖아. 난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내는 거”

 여자친구는 “네가 언제?”라며 대답하듯 께름칙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래도 그녀는 좀만 더 기다려보겠다는 눈빛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무슨 자신감인지 몰라도 집은 내가 장만하겠다고 큰소리쳤다. 어떤 예비부부들은 반반씩 보태 합리적인 집 장만을 한다고도 하지만, 복잡한 건 싫었다. 그리 복잡한 것도 아니겠지만. ‘같이 사는 집을 왜 남자만 준비해야 되나. 이제는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는 남자들의 원성이 떠들썩한 시대에 살고 있지만, 그렇게 성별과 문화에 따른 인식보다는 단순한 내 기준이 더 중요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그래도 집은 남자가 해야지’라는 옛날 사람의 마인드를 기초로 하면서. 

 그래도 한 가지 위안 삼을 수 있던 건 지방에 거주하고 있으니, 매번 미디어에 오르내리고 하는 수도권 집값 문제와는 엮이지 않을 수 있었다. 포털사이트에서 내가 있는 지역 아파트 전세가를 검색해보며 ‘이 정도면 방법이 있지 않을까’라는 자신감 있는 생각을 하기도 했는데, 며칠 뒤 그 생각들은 아주 경솔한 생각들이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생각해보니 이유 모르겠는 그 자신감들은 마이너스 통장 개설로 기세가 등등해져 나오는 근자감이었던 것 같다. 

 전세자금대출 상품 중에서도 신혼부부전세자금대출, 버팀목전세자금대출 등 수십 개의 블로그와 게시물을 들락날락하면서 꼼꼼하게 뒤져보았다. 그 결과 나는 ‘답을 모르겠다’의 결론보다 더 절망적인 ‘답이 없다’의 결론에 도달했고, 세상 사람들에게 꾸지람을 들은 기분이기도 하다. 

 ‘이봐. 한심한 청년. 아파트 전세자금 90% 이상 대출해달라는 건 너무 노양심 아니오? 결혼하려면 최소 1억은 준비해둬야지. 너무하네 진짜.’

 ‘1억이요??? 아니, 천만원도 없는데... 미분적분도 모르는 사람이 리만 가설을 어떻게 풀어요....’ 한숨과 함께 속마음을 소심하게 내뱉고는 항상 그랬듯이 차선책에 눈을 돌렸다. 아주 뻔뻔하게.

 불행 중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건지, 이 정도가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건지 그래도 적당한 대출상품을 찾아냈다. 중소기업에 근무하는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중소기업청년전세자금대출’이었는데, 비교 결과 내게 가장 알맞은 대출 상품이었다. 사실 비교랄 것도 없었다. 나 같이 경제상식 없는 사람에게 대출이란 한도와 이자만 보면 되는 것이니. 한도는 1억 원까지, 대출 금리는 1.2%로 가장 낮았다.

 그러고 이틀 뒤에는 여자친구가 언니와 함께 살고 있는 같은 아파트 단지의 전세 매물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언니 바로 옆에 살면 여자친구나 여자친구의 부모님까지 조금이나마 맘이 편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고, 내게도 출퇴근하기 좋은 위치의 아파트였다. 물론 내 모든 생각과 계획은 맘대로 추진하기 전에 여자친구의 최종 결재를 거쳐야 한다. 다행히 여자친구의 부모님과 인연이 있는 중개사가 있어 우리는 바로 그 아파트에 전세로 나와 있는 두 집을 둘러보았는데, 첫 번째 집은 5살 자녀가 있는 부부의 집이었다. 전세로 내놓을 준비를 일찌감치 해놓았는지 벽지를 깔끔하게 화이트톤으로 메꿨고, 주방과 식탁이 있는 공간을 확장해 거실이 넓어 보였다. 그러던 찰나에 거실에서 혼자 놀고 있던 여자 아이는 내 여자친구에게 인형놀이를 하자고 조르고 있었다. 

 “여기는 몇 평이에요?” 매의 눈으로 집안을 둘러보며, 그렇지만 너무 까탈스러운 사람처럼 보이면 안 되니 조심스럽게 물었다. 

 “24평이에요. 신혼부부가 계시기에 딱 좋으실 거예요”

 “여기 2억이면 싸게 나왔어요. 이 옆 단지만 하더라도 2억 2천부터 시작하거든요. 또 남향이고, 벽지도 새 거고.”

 사람 홀리는 중개사의 말을 들은 후에는 여자친구의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연애를 3년 정도 하게 되면 유일한 장점이 하나 있는데, 이 사람의 표정을 보면 느낌이나 감정을 대체로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첫 집이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여자친구는 꽤나 만족스럽다는 표정을 엿볼 수 있었고, 일단은 그 집을 마음속 장바구니에 넣어뒀다. 

 두 번째 집은 누가 봐도 자고 일어난 아저씨가 혼자 있었는데, 아들이랑 둘이 살고 있는 집이라고 했다. 문을 열자마자 동굴에 들어가는 듯이 어두웠고, 순간 엄마가 집에서 매번 얘기하던 “아유, 남자들 쾌쾌한 냄새. 창문 좀 열어!”의 말이 어떤 말이었는지 실감하게 됐다. 

 정확히 10초 정도 흘렀을까. 내가 신발을 벗고 집 바닥에 발을 내딛자마자 여자친구는 나보다 먼저 결단력을 보여줬다.

 “잘 봤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당황해하는 중개사와 나는 집주인에게 어색한 인사를 하고 그대로 있던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속으로는 ‘에이, 그래도 안쪽이라도 한 번 봐보지.’라고 말하려다 옆에 있던 중개사가 먼저 한마디 거들었다.

 “이 집보다는 첫 번째 집이 낫겠네요.”

 “아무래도 그렇겠네요. 여기는 전세든 뭐든 잘 안 나갈 것 같은데요?” 중개사의 말을 받아주는 역할은 내 역할이다. 

 “네. 계속 안 나가다 보면 본인들이 깨닫겠죠. 그나저나 어떠세요? 이쪽도 요즘 집값이 계속 올라서 사람들 연락이 많아지는데, 아마 빨리 결정하셔야 될 거예요”

 “중개사님, 먼저 가 계세요. 둘이 얘기 좀만 하다가 바로 사무실로 가서 말씀드릴게요” 여자친구는 결정을 내렸듯이 서둘러 중개사를 먼저 보냈다.

 “아. 네. 그러세요.” 

  중개사가 다섯 걸음 정도 걸을 때쯤 여자친구는 슬쩍 내 의사를 먼저 물어보았다. 

 “어때?” 

 “첫 번째 집은 괜찮은데?” 사실 여자친구의 생각을 먼저 듣고 싶었다. 

 “어느 정도 괜찮아? 계약해도 되겠어?” 

 “너는?” 

 “오빠 먼저.”

 “성급한 건지 모르겠지만, 나는 계약해도 될 것 같은데?”   

 “그럼 계약하자.” 

 2억이 오가는 결정의 대화를 20초 안에 끝내버리니, 속으론 세상 잘 모르는 철부지 청춘들의 섣부른 결정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그렇다 보니 머뭇거리며 다시 여자친구의 얼굴을 보았는데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내 앞에 있는 사람은 어떤 확신에 가득 차 있었다. 

 “웬일로 이렇게 단호박이야?” 분명히 특별한 이유가 있어 보였다.

 “그냥 느낌이 좋아서. 부부랑 딸이 너무 행복해 보였거든. 우리의 앞날이 되기를 바라는 것도 있고.”

 나는 여자친구의 말을 듣고선 그 집의 모습들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꼬마 여자 아이의 더 어렸던 시절로 보이는 아기 사진들이 집안 곳곳마다 붙여져 있었고, 인형들이 널브러져 있는 거실까지. 집 구경에 눈이 멀어 정작 제일 아름다운 장면들을 스쳐 보내고 말았다. 

 우리는 그렇게 아주 잠깐 둘만의 시간을 보내고 곧장 중개사무실로 가서 계약을 진행했다. 계약금은 전세금의 10%로 딱 2천만원이었는데 마이너스통장을 탈탈 털어 이체했다. 이체하면서도 ‘사기는 아니겠지?’의 눈초리를 보내며 습관적 의심병이 도지기도 했지만, 중개사랑 집주인이 짜고 치는 사기극이라기엔 2천만원이라는 사이즈가 너무 작다고 생각하며 그때부터는 마음을 놓기 시작했다. 

 “한 달 뒤 입주하시기 전까지만 잔금 치러주시면 돼요. 계약금은 보내주셨으니, 잔금은 1억 8천이 되겠네요.”

 “네. 감사합니다.”

 우리는 그렇게 대업(?)을 성사시키고는 각자의 집에서 낮잠 시간을 가지자고 했다. 집을 구하기 위해 제대로 집중한 시간은 2시간도 되지 않았던 시간이었는데, 그 과정에서 이날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버린 탓이었다. 어쩌면 집 장만을 해결했다는 뿌듯함도 느끼면서. 나는 금방이라도 잠들 것 같은 분위기와 함께 천장을 마주했지만, 한 가지의 생각이 내 소중한 낮잠을 방해하고 있었다.

 ‘1억 8천은 어디서 구하냐...’  


이미지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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