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어느 날과 다름없었다. 누군가와 만나는 일에 잔뜩 힘주지 않으면서 계절 바뀌는 것만 즐기고 있던 와중이었지만 그렇다고 굳이 먼 길 정성스레 찾아오겠다는 친구를 거절하진 않았다. 갑자기 친구 녀석에게 전화가 와 2시간 거리에 있는 내게 달려오겠다고 했다. 그러라 했다. 그의 목소리에서는 사소한 일이든 심각한 일이든 기분전환이 필요해 보였고 그렇다 보니 쉽사리 만나기 귀찮다는 말은 할 수 없었다.
누군가를 시간 내서 만난 게 얼마만인지 생각해보았다. 석 달 만이었다. 그러고 다시 생각해보니 석 달 전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도 이 친구였다. 그때 만남의 주제는 이 친구의 퇴사문제였는데 아마 이번엔 연애에 대한 고민이 주를 이룰 것이라는 예감을 해보기도 했다. 아니면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과 결혼에 대한 고민일 수도 있겠고.
아. 이 인간은 5시에 만나기로 하면 항상 6시에 맞춰 오는 부류 중 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5시까지 오라고 했다. 예상대로 친구는 5시 45분에 도착했다. 15분이나 일찍 와서 조금은 서운할 뻔했다. 내 얼굴을 보자마자 미안함을 풀기 위해서인지 이 녀석 특유의 주접을 보고 있으면 그냥 만나기 귀찮다고 말할 걸 그랬다.
서로가 회를 좋아하는 취향에 맞춰 곧바로 횟집으로 향했다. 친구는 왁자지껄한 분위기에서 곳곳에 있는 미인들 구경하는 걸 좋아했지만 나는 맛없어도 사람 없는 걸 좋아했기 때문에 조용한 곳으로 자리를 잡았다. 친구에게는 유명 맛집이라며 사람들도 와글와글하다 유인하면서.
초저녁이라는 명분 때문인지 아니면 정말 형편없는 가게였는지 20개가 넘는 테이블에 우리가 첫 손님이었다. 아마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친구는 내게 속았다는 예감을 했을 것이다. 구석에 자리를 잡고 회가 나오기도 전에 서로 소맥 4잔을 비웠다. 3월부터 금주 생활을 이어가던 터라 한 달 넘게 한 모금의 술도 입에 대지 않았는데 결국 고삐가 또 풀려버렸다. 조심스럽게 걱정되기도 했다. 또 만취가 될 것이라는. 그렇게 1차에서 10잔 이상의 소맥을 비워내고는 그때부터는 자기합리화에 돌입한다. 몇 달 만에 처음이니까. 이 정도 금주도 잘 견뎌왔으니 나를 위한 보상의 개념이라고. 내 생각들이 부끄러운 탓인지 2차에서는 정신을 금방 잃고 말았다.
그렇게 그다음 날은 하루 종일 변기를 붙잡으며 술과 나 자신을 원망하며 보냈고 초대받지 않은 손님의 성향은 그날 저녁부터 나타났다. 온몸이 으슬으슬 떨리며 몇 분 단위로 이유 없는 헛기침이 나오기 시작했다. 해발 1500m 산 등반을 하고 내려온 것처럼 온몸에 힘이 풀려 누워있는 게 가장 편했고 이때까지만 해도 두통은 평소 가지고 있던 두통보다는 미약했기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아. 뭐야. 이거 코로나 아니야?”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도 모르게 친구에게도 같은 증상이 있기를 바라면서.
“에이. 난 아무 증상 없는데? 자가키트 해봐.”
친구는 태평했다. 곧바로 편의점과 약국에서 자가키트 종류별로 3개를 사 왔다. 이때까지만 해도 사실 코로나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고 난생처음 자가격리를 해보겠다는 생각에 이상한 떨림이 느껴지기도 했다. 집에 와서 유튜브에 자가키트 사용방법을 치고선 천천히 따라했다. 어느 정도의 확신으로 머릿속을 가득 채우며 본 반응 결과는 작대기 하나. 음성이었다. 2시간 뒤에 다시 해봤다. 다시 음성이었다.
“잉? 아니었어? 아. 감기인가?”
이때부터는 근 10년간 다녀간 감기의 흔적을 되살펴보기도 했다. 태생적으로 기관지가 약하다 보니 봄이나 가을 때쯤에는 항상 알레르기성 비염이 감기와 비슷한 역할을 해냈고 그렇다고 오한이나 기력이 없거나 헛기침을 했던 적은 없었다. 왜 때문인지 자가키트의 결과가 확실하다는 믿음을 가지고선 내가 겪고 있는 몸의 불편함이 단순히 심한 감기로 결론지었다.
2주가 지났다. 시중에 나와 있는 감기약은 모조리 먹었는데도 하루 세 번 꼬박 먹었는데도 증상은 여전했다. 그래도 일주일 차보다는 증상이 나아졌다. 어느 하루는 목이 찢어질 것 같은 기침 때문에 고생했고, 또 다른 하루는 머리를 조금만 움직여도 머리가 깨질 것 같은 두통 때문에 하루 종일 천장만 보며 누워있었다. 감기 따위에 병원에서 주사를 맞는다는 건 내 청춘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라 배제시켰지만 2주가 지나고 나서는 결국 동네 병원을 찾았다. 증상을 얘기하고 나니 의사는 그래도 코로나 신속 검사를 해보자고 했다.
“양성이네요. 왜 이제 오셨어요?”
이럴 줄 알았다. 내가 뭐랬어. 망할 자가키트. 세 번을 했는데. 방법도 내가 얼마나 정확히 했는데.
“저희 쪽에서 보건소에 신고해드리니 아마 오후쯤에 문자 갈 겁니다. 일주일 자가 격리하시고요.”
집에 와서는 소파에 가만히 앉아 범인이 누구였는지 다시 생각해봤다. 1차에서는 우리가 나올 때까지 세 테이블 밖에 없었으니 서빙하던 알바생이 유력용의자가 될 것이고 2차에서도 구석에 앉았으니 굳이 생각나는 사람이 없다. 아. 대리기사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마지막 가장 강력한 용의자는 친구가 될 것이다. 친구는 증상이 없다고 했다. 아무렇지 않다고 했다. 근데 본인 여자 친구도 걸렸다고 했다. 뭐지? 이게 말로만 듣던 무증상 환자인가? 생각해보니 억울하다. 몇 달 만에 한 번 사람다운 외출했는데 그때 딱 걸려버렸다.
3주 차가 되어서는 병원에서 처방해준 약 때문인지 시간이 약이었는지 이제 웬만한 일상생활이 가능해졌다. 일상생활이라고 해봤자 산책이나 집에서 누워있는 것뿐이었지만. 이전의 몸으로 한 80%까지는 돌아왔다고 느껴졌다. 그리고 4주 차가 되어서는 운동을 다녀왔는데 한 달 가까이 운동을 안 해서 그런지 체력은 엉망이 되고 말았다. 체력적인 부분은 앞으로 정밀적인 분석이 필요하다. 살이 쪄서 그런 것일 수도 있으니. 어찌 됐든 코로나의 후유증이라는 점은 통하는 부분이다.
아버지에게 다 나았다고 연락했다. 걱정하시는 마음을 달래려 잠깐이라도 내려가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아버지는 기밀사항이라도 전달하듯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이번엔 자기가 걸렸다며. 지난 주말에 다녀온 테니스가 화근이었다며. 그 유명 식당에 괜히 갔다며. 휴대폰 너머로는 방에서 나오지 말라는 엄마의 우렁찬 목소리가 생생히 전해졌다. 네 엄마 덕분에 수감 생활을 처음 해본다는 아버지의 말에 실컷 웃어버렸다.
그래도 코로나 덕분에 한 번 웃었네. 하긴. 지치고 짜증난다고 한탄하면 더 우울해지는 거 아니까. 이것도 그냥 웃으며 추억 삼지 뭐. 요즘엔 코로나 걸리는 것도 꽤나 힙한 증거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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