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오늘 하기로 한 것들을 다 해내는 법도, 하지 않기로 한 것을 완전히 끊어내는 법도 없고, 마음먹고 단번에 일어나 씻으러 가는 일은 달에 한 번쯤 일어난다. 나를 설명할 단어는 의지박약, 게으름, 뒹굴뒹굴, 그 정도인 것 같다.
오늘도 나는 어김없이 목표한 것을 다 해내지 못했고, 아직도 밤 세안을 미루는 중이며, 종일 스크린에 고정된 눈을 어떻게든 빼내 오기 위해 펼친 책도 스무 장을 넘기지 못한 채 책갈피를 꼽았다.
침대 맡에서 꺼내 든 책은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다. 나는 책을 읽을 때 구절이 마음에 닿으면 연필로 밑줄을 긋는데, 그게 너무 길게 이어지면 페이지의 꼭지를 접어둔다. 오늘은 두 페이지를 접었다. 그중에서도 눈을 감동시킨 문장을 꼽자면,
‘모든 것은 달이 찰 때까지 품고 있다가 낳아야 합니다’와 ‘여름은 반드시 오니까요’로 하겠다.
나란히 적고 보니 마치 ‘여름은 꼭 오니까, 그때까지 기다렸다가 나의 무언가를 세상에 내어놓으라’는 것 같이 읽힌다. 나는 당근을 싫어했다. 오이도 싫어했고. 지금은 익힌 당근과 할머니표 오이무침을 좋아한다. 중학생이던 내 급식판 위의 버섯은 늘 앞자리 친구의 급식판으로 건너갔다. 그런데 지금은 고기를 먹어도 버섯부터 손이 간다.
이제 스물넷인 나는 꽉 차거나 헐렁했던 많은 시간을 거쳐 맹인과 함께 걸을 때에는 그에게 팔꿈치를 내어주는 게 좋다는 것과, 신발끈이 풀린 만삭 임산부를 향해 매어드려도 괜찮겠냐는 물음을 건네는 것이 서로의 하루치 따스함이 될 수 있다는 것과, 모든 사람에게는 다른 이들 다 쉬워도 나만 참 나오기가 힘든 각자의 늪이 있다는 것을 안다.
달이 차서 알게 된 것들이다. 예전엔 몰랐지만, 경험이 쌓이고 쌓여 어떤 도식을 만들어냈다. 달이 차야만 되는 것들이 있다. 그것만의 시간이 꽉 차고 그것의 여름이 도래해야만 완성되는 진주 같은 게 있다.
아마도 나의 부지런함과 계획성은 아직 달이 덜 찬 모양이다. 어느 날 갑자기 버섯이 미치도록 맛있어진 것처럼, 내 부지런과 내 계획성도 어느 날 갑자기 세상에 낳아지겠지. 아직 여름이 오지 않았으니 게으르고 느리게, 하지만 매일 조금씩 나아지며 달을 채우는 나를 지켜봐 주는 것도 괜찮겠다. 달이 차는 시간이 불행하다면 낳는 것도 기쁘지 않을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