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신이 되다

말명신

by 윤선태

고아였지만 선남선녀인 우리는 도랑선비와 개울각시

천생연분이어서 결혼하기로 약속했는데

나쁜 점쟁이가 잡아 준 혼삿날은 액과 살이 낀 날


그런 줄도 모르고 장가가는 날

까막까치와 구렁이, 멧돼지까지 나타나

“오늘밖에 날이 없냐?”며 길을 막아섰지만

혼례는 인륜지 대사이므로 포기할 수 없었지요


힘들게 초례를 치르며 버틴 당신

엄습해오는 운명을 막지 못해 초상이 된 혼례

울며불며 다시 만날 수 있게 해 달라고

눈물로 빌고 또 빌었습니다


표주박에 이슬 맞힌 정화수 떠 놓고 석 달 열흘 빌고 빌면 만날 수 있다기에 그렇게 했더니 나타난 당신은 잡으려 하자 연기처럼 사라졌습니다

이번엔 내 머리카락으로 노끈을 만들어 벼랑에 이어놓고 아흔아홉 번 왔다 갔다 하면 만날 수 있다기에 그렇게 했더니 이번에도 나타난 당신은 잡으려 하자 연기처럼 사라졌습니다

그다음은 댓잎 기름을 손에 발라 여러 차례 말린 후 손가락에 불을 붙여 태우기였지만 결과는 역시 마찬가지


정성이 부족했다고 생각해

빌고 또 빌며 치성을 드리자, 마지막으로

아흔아홉 구비 산길을 맨손으로 닦기였지요

반대편에서는 당신이 닦아 온다기에

진짜 어려운 줄 몰랐습니다


드디어 꿈같은 해후

기쁜 맘으로 손잡고 집으로 향하는데

누런 흙탕물이 길을 막네요

나는 탈 없이 건넜지만

당신은 당신의 조상이 지은 죄로

갑자기 나타난 용에게 잡혀갔지요


얼마나 간절했는데, 그럴 수는 없었지요

이승에서 인연이 여기까지라면

차라리 저승에서 만날 수 있도록

명주로 노끈을 묶어 목을 맸습니다


다행히 옥황상제의 도움으로

천상에서 다시 만난 우리

조상을 돌보고 지키며 심판하는

말명신으로 임명 되었답니다


가끔 조상을 위한 제사에

함께 와 흠향하며 심판하기도 하니

기제사 지냄에 정성을 다하세요

다 복 짓는 일입니다



<주> 말명신은 조상을 돌보고 지키며 심판하는 일을 관장하는 가신이다. 조상님께 제사를 지내면 말명신도 함께 와서 흠향한다고 한다. 도랑선비와 개울각시의 눈물겨운 사랑이 이 신들의 탄생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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