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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어리 Nov 10. 2022

어젯밤 꿈과의 대화

어젯밤 꿈과의 대화      

 어젯밤 꿈은 나를 또 시험에 들게 했다. 선택의 기로에 놓일 때면 항상 같은 꿈을 꾼다. 깃대를 붙잡고 부들부들 떨고 있는 유년의 나를 만나는 꿈이다.      

 어린 시절 동네 한 복판에 있던 마을 회관은 마을에서 유일하게 양옥으로 된 건물로 옥상이 있었다. 기와지붕이나 스레트 지붕만 보고 자란 나는 옥상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있었다. 놀잇감이 없는 시골에서 옥상은 새로운 도전, 탐험과 모험이었다. 우리 또래는 만나기만 하면 마을 회관 옥상에 오르고 싶어 했다. 콘크리트로 잘 지어진 옥상에 올라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기분은 광개토대왕만큼의 정복감과 쾌감을 불러일으켰다. 계단이 없는 옥상을 오르는 일은 근력, 신체조건, 담력이 모두 갖춰져야만 해낼 수 있는 일이었다. 그만큼 옥상에 오르는 일은 대단한 일이었고 소수의 아이들만 누리는 특권이었다. 

 사춘기에 접어든 사내아이들은 건물 앞에 세워진 태극기나 새마을기 민방위기 깃대를 타고 옥상에 올랐지만 여자아이나 어린 남자아이들은 깃대의 반도 못 올라가 미끄러지고 말았다. 어쩌다 재수가 좋아 깃대를 타고 옥상 근처까지 올라가더라도 깃대와 옥상 난간 사이의 1미터 안팎의 폭이 큰 난관이었다. 두 손으로 깃봉을 움켜잡고 양다리를 모아 무중력 상태로 하체를 띄워 옥상 난간을 향해 다리를 뻗는다. 양팔의 후들거림을 참고 발가락에 모든 신경세포를 세워보지만 닿을락 말락 애태우는 사이 자연스럽게 힘이 풀리면서 미끄러지고 만다. 설령 발끝이 난간에 닿았다한들 깃봉을 잡고 있는 양손을 놓고 건물로 아슬아슬하게 올라서는 상황이 남았다. 그곳을 오르는 일은 체격을 떠나 가장 담력이 좋은 겁 없는 아이들이 아니면 어림없는 행동이었다. 먼저 올라간 아이들은 미끄러진 아이들을 끌어주겠다며 재도전을 시도하라고 하지만 떨어지면 분명 어디 하나는 단단히 부러질 수 있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기에 옥상에 오르는 일은 쉽지 않다. 옥상 난간은 이처럼 안쪽에서는 떨어지는 것을 막아주는 안전한 구조물이지만, 정복하고자 하는 아이들에게는 절대 쉽게 내어주지 않는 철 옹벽인 샘이었다. 

 옥상을 오르지 못한 아이들은 결국 가을까지 기다려야 했다. 깃대를 잡고 오르는 일보다 조금 쉬운 방법이 있었기 때문이다. 추수가 끝나고 나면 마을에서는 볏단을 회관 구석에 쌓았다. 어른들은 볏단을 차곡차곡 정교하게 잘 쌓았다. 우리가 타고 올라가도 절대로 흐트러지거나 무너지지 않는 성처럼 말이다. 위로 올라갈수록 폭이 좁아지긴 했지만 옥상과의 거리가 상당히 가까워졌다. 가끔 미끄러져 아래로 떨어지긴 했지만 푹신하게 깔린 볏단으로 큰 부상은 당하지 않았다. 나는 수차례 미끄러지는 반복 끝에 옥상에 오를 수 있었고, 그 반복되는 행동들이 줄어들면서 나이를 먹었다. 그리고 아래를 내려다보는 기분도 맛볼 수 있었다.      

 그런 날은 어김없이 꿈에서 깃대를 붙잡고 있는 나를 만난다. 발을 뻗을까? 말까? 한참 망설이고 있는 나에게 빨리 올라오라고 너만 올라오면 된다고 다그치는 친구들의 모습도 보인다. 그리고 쭉 뻗은 다리가 난간에 닿기도 전에 어김없이 떨어지며 화들짝 놀란다. 떨어진 내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꿈은 항상 거기에서 끝났으니까. 

 어떤 작가는 ‘꿈은 현실 속의 내가 소심하고 우유부단하게 느껴질 때 꿈속의 나는 결핍을 보상하기 위해, 더 나은 나를 만들기 위해 또 하나의 내 모습을 이미지로 만들어 보여주는 거라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현실에서도 꿈에서도 항상 우유부단하고 실패를 두려워하며 망설이다가 결국 패배하고 마는 결론이 난다. 

 성인이 된 지금도 깃대를 붙잡고 있는 꿈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현실에 도전 과제가 있을 때 이런 꿈이 항상 따라다닌다. 어떤 선택이나 나름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결론을 내려야 하는 시기 앞에서 말이다. 그러면서 나는 내 앞에 안정적인 볏단이 있는지부터 찾는다. 그리고 내면의 진심을 묻게 된다. 진정 오르고 싶은지? 오르고 싶지 않은 건지? 왜 오르려고 하는 것인지? 오르는 것을 가로막는 마음속 장애물은 무엇인지? 의식적으로 내가 거부하고 있지만 동경하고 있는 대상은 무엇인지? 등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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