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제일 예뻐”
“와… 그런 말은 어디에서 배웠어?”
뜨거운 공기로 숨이 턱턱 막히는 5월의 어느 날, 오랜만에 만난 동창 K는 여전히 못 말리겠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입에 가져가려던 참이었다. 친구의 따가운 시선에도 나는 굴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아니, 맞잖아. 5년 뒤에 보면 오늘이 제일 예쁠 거야.”
어쩌면 누군가는 오그라든다고 할 법한 이 말은 요즘 내가 미는 유행어 같은 건데, 사실은 스스로에게 하는 주문이자 두 살 터울의 동생 J에게 하는 말이다. 계기는 이러했다. 등산 후 카페에서 토스트를 먹던 J가 인스타그램을 보더니 한숨을 팍 쉬었다. “나 되게 예쁘게 입고 다녔었네? 지금은 살도 찌고 못 생겼어. 휴” 그 말에 J의 인스타그램 피드를 쭉 내리면서 살펴보니, 검은색 트레이닝 복으로 위, 아래 깔 맞춤을 한 지금과는 무척 다른 모습이긴 했다. 생각해보니 전에도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미술관처럼 생긴 카페를 가자고 하니 “오늘은 꾸미고 갈 거야”라고 했다. 평소와 달리 새로 산 하늘색 줄무늬 블라우스를 입고 왔는데, 여러 겹의 프릴이 달린 화려한 옷이었다. 인스타 업로드를 위해 책을 들고 찍었는데 굉장히 행복해하면서도 살이 쪄서 옷 태가 나지 않는다고 우울해했다.
J가 자신의 패션 스타일을 점검한 이유는 제주도 여행 때문이었다. 2박 3일의 제주도 여행에서 입을 주황색 라운드 티셔츠를 구매했는데 적합한 코디를 찾지 못했다는 점과 5kg나 불어버린 자신의 몸 상태가 마음에 들지 않은 탓이었다. 사실 주황색 라운드 티셔츠도 자기 스타일이 아니라 남편이 요즘은 왜 칙칙한 색만 입냐면서 골라준 색이라고 했다. 불만이 쌓이자 J는 자연스럽게 예전의 모습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이 옷이 마음에 들었나 봐, 맨날 입었어.”
“숱 달린 옷도 입고… 나 화려한 거 엄청 좋아했네? 다 어디 갔지?”
J는 초라한 몸뚱이에 갇혀 검은색 옷만 입는 현재보다는 인스타그램 피드 아래쪽에 꽁꽁 숨겨져 있는 화려했던 시절을 그리워하는 것 같았다. 덩달아 나도 예전 사진을 보며 추억에 빠졌다. 본인의 착장 사진을 주로 업로드하던 J와 달리 나는 그날 먹은 음식에 대한 기록이 많았다. 지금이나 예전이나 카페 가는 걸 좋아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어떻게 하면 주변의 배경과 예쁘게 담을 수 있는지 연구한 흔적들이 가득했다. 동시에 내가 왜 음식 사진을 주로 찍게 됐는지 기억해냈다. 나도 내 몸이 싫었던 거다. 50kg 초반의 몸무게를 유지하다 일을 시작하고 잦은 야근으로 인해 10kg이 확 늘어났고, 전신사진을 찍느니 먹음직스러운 음식 사진을 찍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원색 계열, 호피, 뱀피 무늬를 좋아하던 내가 어느 순간부터 무채색의 옷을 즐겨 입게 된 것도 그 이유였다. 물론 한 살 한 살 먹으면서 취향의 변화도 있었겠지만 살찐 내 모습은 마주하기 싫어서 외면했다. 오랜 시간 나도 모르게 나를 혐오하고 있었다.
그렇게 10년의 기록을 꼼꼼하게 살펴본 나와 J는 당연한 사실 하나를 깨달았다. 살이 조금 쪘다고, 얼굴에 여드름이 났다고 못 생겼다고 스스로를 비난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금 이 순간조차도 굉장히 예뻐 보일 거란 사실 말이다. 젊다는 이유만으로 항상 예쁘다고 말해주는 어르신들처럼 나는 이 순간을 또 그리워할 거란 점을 말이다. 이 글을 쓰는 2022년 5월 26일 오후 4시 55분의 모습도 1년 후에는 클라우드에 <1년 전 오늘>이라는 제목으로 남겨질 것이고, 난 또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때 참 예뻤구나”
갑자기 시간이 아까워졌다. 가장 예쁜 순간을 충분히 누리지 못했다는 걸 늦게 깨달아 버린 탓이다. 그래서 나는 J를 만날 때마다 얘기한다. 네 인생에서 오늘이 제일 예쁜 날이니까 오늘을 즐기고 마음껏 사랑해주라고. 지금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외면하면, 미래의 내가 또 후회할 게 분명하다고 말이다. 현재 나는 코로나로 인해 10kg가 더 불어나버렸다. 그럼에도 이제 못 생겼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옷 태가 나지 않는다고 상처의 말을 하지 않는다. 대신 운동을 시작했고, 매일매일 나를 향해 말한다. 오늘도 건강해서 참 다행이라고, 오늘도 참 멋지다고. 그리고 이왕이면 전신사진을 찍으려고 노력한다. 언젠가 보게 될 오늘의 나를 담아두고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