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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비서 Nov 19. 2021

당근 마켓

4년 동안 살던 집을 정리했다. 목표는 소형차에 싣을 수 있는 만큼만 가져가기. 한 푼 두 푼 모아서 장만했던 정든 가구들을 정리하려니 내심 섭섭하기도 했지만, 본가로 들어가는 마당에 바리바리 들고 갈 수도 없었다. 침대, 책상, 수납장, 옷장, 냉장고, 세탁기. 인간 1명이 사람답게 살아가려면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들이 꽤 많다는 걸 이사 준비를 하면서 새삼스레 느낀다.      


처음엔 번거로운 게 싫어서 재활용 센터에 몽땅 넘기려고 했는데, 가구는 3년 전자 제품은 8년 이내의 제품이어야 하고 또 흠집도 없어야 한단다. 깔끔하게 포기해본다. 차선책으로 당근 마켓에 물건을 올리기로 결정했다. 요즘엔 이사 비용을 아끼기 위해 대형 가구 같은 건 전부 무료 나눔을 하고 이사한 곳에서 다시 당근 마켓으로 나눔을 받는 게 트렌드라고 한다. 이건 침대 프레임 구매자님의 피셜이다. 넓은 의미에서 공유 경제인 듯 싶다.      


이사가 3주 남은 시점에서 대형 가구부터 정리를 시작했는데 올렸다 하면 채팅창이 쉴새없이 울려댔다. 특히 이케아 스타일의 사진이 구매자들의 관심을 샀다. 덕분에 나는 수납공간도 침대도 없는 텅 빈 방에서 2주나 버텨야 했다. 방 꼬라지가 너무 산만해서 솔직히 어느 날은 호텔 예매 창을 보면서 갈까말까 고민도 했다.       

가구들이 없어지고 집에 공간이 생기고 나서야 무심코 지나갔던 것들이 누가 확대한 것처럼 눈에 확 띄었다. 언제 사용할지도 모를 세제들, 야무지게 잘 묶어서 서랍 한 칸에 수북하게 모아 놓은 까만 봉지, 기워서 신겠다고 모아놨던 구멍 난 양말들까지 무더기로 나왔다. 더블치즈햄버거를 먹으면서 음료만은 제로 콜라로 주문하는 1g의 양심처럼, 매일 택배로 무언가를 사면서 양말만은 아껴보겠다고 모아둔 꼴이라니. 5분만 더 부지런하거나 내 기억력이 좋았다면 양말이 저렇게 버려져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당근 마켓의 꽃은 무료 나눔이지만, 판매 시작 일주일 만에 접었다. 구매자가 툭하면 연락 두절 되고 지각해서 좋은 마음으로 나갔다가 화가 나서 들어오곤 했다. 거기에 40도까지 올라간 한 여름의 날씨는 나를 자꾸 지치게 했다. 1차로 물건 포장하느라 진을 뺐는데, 거래마저 자꾸 허탕을 치니까 ‘차라리 버리고 말지’라는 마음이 굴뚝 같았다. 이후엔 천 원이라도 받고 물건을 나눔 했는데 희한하게도 어르신들은 천원이라도 꼭 봉투에 넣어서 주셨다. 어르신들의 친절함에 당혹스러우면서도 간사하게 ‘봉투라니, 쓰레기를 받아왔네’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거래를 다 끝내고 밤에 정산을 할 때는 그 봉투가 ‘이렇게 좋은 물건을 천 원에 팔아줘서 고맙다’고 말하는 것 같아 뿌듯함이 밀려오곤 했다. 나눔이라는 이름 아래 사실은 돈 받고 쓰레기를 파는 건데도 수많은 감정이 오고 갔다.      


이사를 마친 후에도 나는 여전히 당근 마켓을 애용한다. 필요한 것과 불필요한 물건들을 나누는 일을 3주 내내 하다 보니 어떤 물건을 봐도 속으로 잣대를 재고 있었다. 이건 버려도 되는 물건이다, 아냐 이건 필요해, 이건 유통기한이 임박했네? 빨리 써야겠다 등등. 내 기준에서 쓸모 있음과 쓸모 없음을 나누고 쓸모 없다는 판단이 들면 바로 사진을 찍어 당근 마켓에 올렸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집에 잡곡쌀이 있다. 그러면 일단 유통기한과 소비기한을 확인하고 그다음엔 우리 가족이 소비기한까지 다 먹을 수 있는지를 확인하다. 먹을 수 없다고 판단되면 그 잡곡쌀은 당근 마켓행이 확정된다. 이런 식으로 오래된 사기 그릇과 물컵, 곤약짜장면 같은 걸 팔았다.


그런데 요즘 엄마가 자꾸 물이 없어진다며 나를 찾는다. 그럴 땐 조용히 지폐를 꺼내 들고 말한다.

“컵이 5천 원이 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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