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건강하게 술먹고 싶습니다
팀 선배가 회사를 그만둔다고 했다. 6년째 같은 팀에서 함께 지내왔던 선배였다. 일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의지했던 사람이었지만 그가 그만둔다는 말에도 잡을 수 없었던 건 그가 그간 얼마나 열심히 불태웠는지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 때 그의 넘치는 열정에 같이 일하기 힘들다고 느낀 적도 있었는데. 그랬던 그가 그냥 다 그만두고 파리에 가서 일단 한 달을 살거라고 했다. 앞으로의 내 인생은 어떻게 될까, 라는 말에 그저 저도요, 하고 말았다. 지금의 그는 많이 지쳐 보였다.
직장인으로서 지낸 지 9년차. 일을 앞으로 어떻게 해나가면 좋을지에 대해 종종 생각하는 요즘이다. 구체적으로는 일을 어떻게 하면 더 잘할까, 보다 어떻게 오래 건강하게 버텨낼 수 있을까, 쪽에 가까운 고민이다. 일을 꽤나 좋아하고 그래서 오래 일하고 싶어하는 편이지만 사실 직장인으로서 지내는 하루하루는 어떻게 보면 특별한 낙 없이 반복되는 지루한 일상이기도 해서, 내가 과연 언제까지 지치지 않고 일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한 것이다.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자신의 직업인 소설가에 대해 쓴 책을 집어들게 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었는데(그의 소설보다 에세이를 좋아하지만), 소재 발견부터 등장인물, 화자를 어떻게 정하고 쓰는지까지 이런저런 이야기가 많았던 와중에 막상 내 머릿속에 남은 건 그의 생활 태도였다. 매일 규칙적으로 분량을 정해서 작업하고, 이를 오랜 기간 할 수 있도록 육체적 정신적 건강을 만들어두는 것. 이렇게 최선을 다해 자신이 재밌고 만족할만한 작업물을 만들었을 때 세간의 평가와 같은 외부 요소에도 쉽사리 흔들리지 않게 된다는 것.
그의 명성에 맞는 특별한 무언가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잠깐 생각했지만, 결국 그를 만든 건 건강한 일상과 이를 통해 만들어진 단단함이었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라는 책 제목에 걸맞게 어떻게 하면 소설을 잘 쓸 수 있을지에 대한 가이드라기보다 소설가라는 직업인으로서, 나아가 인생이라는 장기전을 뛰는 인간으로서 어떻게 오래 버텨나갈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의 결과에 가까웠다. 몸 마음 건강한 하루. 나의 고민이 돌고 돌아 원점과도 같은 기본으로 돌아온 느낌이었다.
친한 술친구와 얼마 전 우스갯소리로 주고받은 이야기가 떠올랐다. 아파서 병원에 갔는데, 제일 먼저 의사선생님께 물어본 말이 "술 먹어도 되나요?" 였다고. 혹시나 몸이 안 좋아져서 좋아하는 술을 못 먹게 되는 것이 제일 걱정된다고, 우리 다 같이 오래오래 술먹을 수 있도록 평소에 운동 열심히 하자고 다짐하며. 술이든, 일이든, 내가 좋아하는 그 무엇이든 오래도록 해나가기 위해서는 몸 마음 건강한 하루를 차곡차곡 쌓아가는 지루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며 힘내보는 일요일 저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