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에 낸 첫 기사 폭염에도 에어컨 타령이 없는 독일 ( https://omn.kr/29una )이 Top 뉴스에 배치되었고 단 며칠 만에 누적 조회수는 14만을 훌쩍 넘었다. 익명의 독자가 후원금을 보냈고, 소원해진 분들과 연락이 닿았다. 독일 상황을 잘 아는 지인들은 격려를 해줬다.
첫 기사에 대한 뜨거운 반응은 댓글에서도 드러났다. 댓글 중 '지금 독일 날씨 확인하니 덥지도 않구만', '한국에서 에어컨 없이 어디 살아봐라', '원고 쓰고 있는 그 사무실부터 에어컨 없애라' 등이 눈에 들어왔다. 한국 여름 무더위가 얼마나 징글징글한지 몰라서 그런 기사를 썼냐는 볼멘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렇다. 전통적으로 독일 여름은 짧고 '시원한 여름'이었다. 그래서 에어컨 없이도 살 수 있었다. 그랬던 독일이 이상해졌기에 쓴 것이다. 이상해진 기후는 우리삶을 바꿔놓기 시작한다.
이상해진 독일 기후
시원했던 유럽 여름이 매년 폭염이다. 유럽통계청(Eurostat)은 2023년 한 해 동안 유럽에서만 4만7000명이 폭염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했다.
독일 공중보건국연방의사협회(BVöGD)는 시에스타(siesta)를 채택하라고 권고했다.
시에스타는 스페인, 그리스, 이탈리아 처럼 더운 나라에서 더위에 지치기 전에 근무시간 중 더 힘든 일을 아침으로 전환하고 가장 더운 시간에는 휴식(낮잠)하는 제도를 말한다. 독일노동조합총연맹(DGB)은 기후변화와 폭염을 대비하지 못한 것은 고용주들의 범죄 행위라 성토했다.
비도 갑자기 많이 내렸다. 독일 기상청(DWD)은 1881년부터 독일 강수량을 집계해서 발표했다. 1961년부터 1990년까지의 연평균 강수량은 제곱미터당 약 789리터이다. 지난 10년간 독일 연간 강수량은 평균 이하에 머물렀다.
그러나 2023년 7월부터 올해 6월까지 이 12개월 동안 강수량은 제곱미터당 약 1,070리터이다. 10년 가뭄 끝에 지난 1년간 내린 비는 역대 최대 강수량을 기록한 것이다. 지난 6월 남부 독일 지역의 홍수로 많은 피해가 발생했다.
이상기후로 인해 아이들의 삶도 영향받는다. 아이들은 야외에서 체험 활동, 실외놀이를 주로 한다. 하지만 유치원, 학교, 방과후 기관에서 아이들 실외활동은 축소되고 영향을 받았다. UN 아동권리위원회에서는 "기후위기는 아동권리 위기"라 선포하고 각국에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달라지는 생활
독일 음식 중 얼음을 띄웠거나 아주 차가운 음식은 찾기 어렵다. 시원한 냉면 하나 먹으려면 옆 도시로 가야 한다. 팥빙수 배달은 꿈도 꿀 수 없다. 일반 독일 카페에서 주문한 아이스 아메리카노에는 시원한 얼음이 없다. 동동 뜬 얼음 대신, 뜨거운 커피에 금방 녹아 진득해질 아이스크림을 얹어준다.
우리 동네에는중국인이 운영하는 버블티와 차가운 음료 전문점이 작년 여름에야 비로소 생겼다. 플라스틱 잔에 찬 음료를 들고 다니는 청소년들이 길거리에 하나 둘 보이기 시작했다.
▲ 낡은 선풍기 탁자 위엔 낡고 작은 선풍기 하나 올려져 있을 뿐이다. 바람세기도 약해 거의 장식용에 가깝다. ⓒ 서정은
이렇게 더운데 내 일터에도 선풍기만 있다. 집에는 선풍기조차 없다. 전기요금이 한국에 비해 몇 배나 비싸서 선풍기 이용을 포기했다. 작고 얇아서 조악한 부채를 구할 수는 있지만 크기와 디자인이 다양하고 시원한 부채는 구경할 수도 없다. 나는 파리채와 부채를 한국에서 사와 주변에 선물로 주곤 했다.
비가 흩뿌리듯이 자주 내렸다면 이제는 소나기처럼 한꺼번에 퍼부어 내리는 스콜(squall)도 더러 볼 수 있다. 그간 우산 없이 부슬비를 맞거나 방수 외투 하나 걸치던 모습들은 바뀌었다. 이제 독일에서도 우산은 필수품이 되었다. 우비 하나 입고 공원과 숲에서 몇 시간씩 자유로이 뛰어놀던 아이들에게도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파리, 모기나 해충들은 독일 공공 방역 덕분에 흔히 볼 수 없었다. 하지만 올해는 비가 많이 내려서 모기가 특히 늘었다. 남부 독일 보덴제(Bodensee)나 도나우 강 지역처럼 인기있는 여름 캠핑장, 호텔은 올해 여행객이 예년 성수기보다 50%이상 줄었다 한다. 아예 취소하는 여행객도 늘었는데 그 이유는 늘어난 모기로 야외 활동을 할 수 없기 때문이라 한다.
▲ 독일 집 창문 벌레가 많지 않아서인지, 독일 창문에 설치된 방충망을 거의 볼 수 없다. 미관상의 이유도 있을 테다. ⓒ 서정은
그럼에도 독일 건물 창문에는 대부분 방충망이 없다. 도시에서 지정한 유서깊은 옛날 건물들은 물론이고, 일반 건물도 사정은 비슷하다. 이전까지 필요하지 않았던 것이다. 내가 사는 마을에는 설치해 줄 사람을 구하기 어렵고 예약과 설치에 비싸고 번거롭다. 튼튼한 파리채도 흔히 살 수 없다. 그동안 뜨거운 여름은 남의 나라 이야기였던 것이다.
오늘은 9월 첫날인데, 낮기온 섭씨 32도. 예년과 달리 아직도 덥다. 우리 지구를 살리기 위해 나는 오늘 무엇을 해야 할까.
*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오마이뉴스(2024. 09. 03) 에 실렸습니다. 사단법인 3P아동인권연구소와 개인 블로그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