론다 5. 누에보 다리
"인간을 넘어서는 신비한 자연 속에서 직접 느낄 수 있는 감각적 현실만이 전자 장치로 생성된 풍경과 조작된 즐거움으로 가득한 오늘날의 경험적 세계에서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시금석으로 남아 있다."
- David Abram -
그라나다에서 론다로 가는 길은 복잡했다. 그 구간이 공사 중이었어서 기차역에서 버스를 타고 안테퀘레라는 곳까지 가서 다시 렌페로 갈아타야 했다. 다른 도시로 이동할 때도 버스나 렌페를 이용했지만 그 여정은 조금 더 특별하게 느껴졌다.
마치 공항 같았던 삼엄한 짐 검사, 길고 긴 환승 여행. 힘든 것엔 다 이유가 있는 걸까. 어느 순간 바라본 창밖에서는 판타지 영화에나 나올법한 언덕도 산도 아닌 자연의 융기가 펼쳐지고 있었다. 아직도 그 우뚝 선 것들의 정체가 무엇인지 모르지만
그때 나는 분명,
범상치 않은 곳으로 가고 있다고 믿었다
chapter. 5
맞다. 나는 고작 이 다리 하나 보려고 버스에 렌페까지 갈아타가며 늦은 밤이 되어서야 낡은 호스텔에 도착한 것이다. 도시는 어두컴컴했지만 누에보[Nuevo : 새로운] 다리 근처만큼은 조명으로 번쩍했다. 다리는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일괄적으로 분사된 노란 조명으로 본래의 색을 잃고 있는 듯 보였다. 누군가가 지었을 저 돌다리가 그저 옆에 붙어 있는 절벽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른 새벽에 눈을 떴다. 기상 후 베란다에 나가는 식의 고전적인 생활 루틴 같은 건 없지만 두 발은 이미 그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문을 열고 잠시 그 앞에 서성이며 눈을 깜빡깜빡했다. 이내 깊은 숨을 몰아 쉬었다. 눈 앞에 펼쳐진 벅찬 광경에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끓어오르는 흥분을 감추기 어려웠다.
위태로운 자연의 파도 속으로 수많은 벽돌들이 기꺼이 제 몸을 던진 듯했다. 절벽의 치명적인 서포트, 툭하면 우수수 떨어질 것만 같은 건물들, 다리 너머 새벽하늘의 핑크빛 아우라까지. 이 모든 건 아름답다고 불러도 되는 아찔함이었다.
인간이 만들 수 있는 것과 절대 만들 수 없는 것들의 조화 속에서 형용할 수 없는 감동이 몰아쳤다.
자연의 위대함 앞에서 나는 한 없이 겸손해졌고, 어쩌면 내가 지금 창조하고 있는 그 어떤 것도 그다지 큰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는, 약간의 부드러운 무기력함도 느꼈다. 나는 저 살아있는 자연의 풍경을 뛰어넘을 그 어떤 것도 만들어낼 자신이 없었다. 그러나 이것은 좌절감과는 또 다른 감정이었다.
충만한 자연과 숭고한 인간에 대한
존경심에 가까웠다
어쩌면 사람을 감동시키는 일은
굉장히 어려운 일일지도 모르겠다
예술이 또 한 번 어려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