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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브림 Jul 10. 2024

역사적 맥락의 범람

그라나다 4. 알함브라 궁전


"인류의 가장 오래된 미술인 구석기시대의 '알타미라 동굴 벽화'에서 잉태된 스페인, 그들은 섬세한 솜씨로 들소들을 세밀하게 묘사했다. " <스페인역사 다이제스트 100>






엄마는 스크랩북 만들기의 달인이었다. 항상 A4 용지가 들어가는 두꺼운 파일에 가족사진을 날짜, 시간 순으로 붙여 옆에 한 줄이라도 설명을 쓰고 다시 비닐에 끼우는 그 지루한 일을 기꺼이 반복했다. 가끔 엄마는 눈을 치켜뜨면서 안경을 끼고 하기도 했다. 그렇게 수고스럽게 만들어진 스크랩북 파일의 개수는 나랑 오빠가 태어나던 해부터 우리가 좀 커서 부모님과 잘 놀지 않을 때까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서른이 넘은 우리는 가끔 부모님 집에서 그때의 스크랩북을 들춰본다. 아들이 있는 오빠는 내 자식이 이렇게 말을 안 듣는데 나도 옛날에 그랬는가에 내한 의문으로 씩씩대며 열어보기도 했고 나는 머리가 어지러울 때마다 내가 얼마나 엄청난 소녀였는지를 다시 한번 각인시키기 위해 살펴봤다.


그럼 좀 자신감이 생겼다


혼자 나무에 올라 열매를 따 먹는, 그저 웃음끼 가득하고 무모한 소녀를 보면서 “나 이때 좀 멋졌네” 할 수 있는 그런 시간이 좋았다.




엄마가 남긴 건 그저 사진 몇 장에 글 몇 줄이 아니라

우리 가족의 자부심이자 히스토리였다






Granada

chapter. 4


2017. 알함브라 궁전


낡은 것과 새로운 것이 각자의 자리를 지키며 서로 다른 매력을 발산하는 도시 발렌시아를 떠나 철저히 역사 또 역사만이 살아 숨 쉬고 있는 것 같은 이곳, 그라나다에 도착했다.


짐을 풀자마자 달려간 곳은 알함브라 궁전을 볼 수 있는 산니콜라스 전망대였다. 지는 태양을 놓치지 않으려면 서둘러야 했다. 다음날 가기로 한 알함브라 궁전에서는 알함브라 궁전의 전경을 볼 수 없으니 서글픈 전망대의 운명을 빌려서라도 개인의 사리사욕을 챙겨본다.




저 멀리 그림 같은 구름 아래로

여기와는 또 다른 근엄한 세계가 펼쳐졌다


저 미지의 세상엔 또 어떤 사연이 숨겨져 있을까. 궁전이라 부르기엔 투박했고, 요새라기엔 어딘지 모르게 따뜻했다. 타지마할급 세기의 러브스토리라도 담겨 있을지, 구름 속 궁전 사이로 빗자루를 탄 해리포터라도 나타날지, 그도 아니라면 어딘지 씁쓸한 역사의 잔재 중 하나일지. 그 장르를 섣불리 확신할 수 없는 건물은 저 두터운 성벽처럼 신비주의 컨셉을 제대로 뽐내고 있었다.








역사를 좋아하는 선배에게 고등학생 시절 명성황후가 죽은 이유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런데 어쩐지 선배는 설명을 어물쩍 넘길 생각이 없어 보였다. 오랜만에 동생으로부터 질문 다운 질문을 받았다는 듯 그의 두뇌에선 명성황후 시해 사건 100년 전의 일부터 끄집어내는 무시무시한 능력을 펼쳐내고 있었다.


무려 40분이 넘는 대장정이었다. 그 뒤로 나는 절대, 다시는 그에게 역사에 대해 묻지 않기로 다짐했었다. 나는 시험에 써먹을 간단한 원인과 결과가 필요했고, 그에겐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100년 간의 맥락이 필요했다




2월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화창한 날씨에

어떠한 역사적 맥락의 필요성을

절대적으로 느꼈던 그곳,


알함브라 궁전에 발을 들였다








궁전의 내부는 감히 ‘화려함’이라는 단어를 빼고는 설명하기 어려운 듯했다. 이국적인 문양과 조각들로 이루어진 벽면과 천장은 마치 하나의 거대한 예술품 같았고 그저 고개를 들고 있는 것만으로도 황홀경 그 자체였다.



미술관에 가서 도슨트를 따라다니는 것을 개인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워했다. 우르르 줄을 서서 "이 그림은 이런 의도로 그린 겁니다!"라는 단순한 정보 습득이 정말 미친 듯이 지루했다. 매 순간 변하는 인간의 얄팍한 생각에 마침표를 찍어버리는 태도에 나는 큰 신뢰를 느끼지 못했고, 그저 한참을 맘에 드는 그림 앞에 서서 물감의 터치와 질감을 관찰하고, 독특한 형태의 기원을 내 마음대로 상상하는 것이 훨씬 더 재밌었다.




그런데

갑자기 궁금해졌다


대체 왜?




질문에 대한 답을 얻는 것에 상상과 감성은 분명 한계가 있다. 그 둘은 나의 느낌 영역을 넓히기 위한 도구다. 가령 정열의 나라 스페인에서 뜨거운 열정보다 사람들의 걸음걸이에서 느껴지는 여유로움, 건물 곳곳을 장식한 모자이크의 화려함에서 섬세한 감각을 느꼈을 때


A스페인 = B열정이라는 생각이 때론

A스페인 = B열정 or C여유로움 or D 섬세함

일 수도 있다는 생각의 확장을 가져다준다




그런데 역사 기록, 확률, 과학, 천문학, 지리학 등의 다양한 학문의 의미 있는 연구를 바탕으로 A=B에서 equal (=)이 성립되기 위한 원인의 합당하고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한다 



상상이 느낌의 확장이라면

역사는 구체화를 담당했다








대체 스페인에 있는 이 유명한 궁전은 왜 곳곳에 정원을 만들고, 알 수 없는 아랍어로 벽면을 가득 채우고, 보고도 믿기지 않는 모자이크 기법과 석고 장식으로 이토록 화려한 건물을 지었는지, 이 모든 의문의 열쇠는 오직 역사에 있었다.



과거 이슬람 제국이 약 700여 년에 걸쳐

스페인을 정복했었기 때문이다



모자이크는 이슬람 건축 양식의 대표적인 특징 중 하나로 가우디를 포함한 많은 건축가들 역시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또한 정원을 중심으로 대칭적인 구조, 물가를 곁에 두는 건축 양식 역시 이슬람의 것이다. 특히 이슬람의 경전 코란은 인간의 육체를 형상으로 표현하는 것을 금했기 때문에 건물 안쪽을 장식할 때에도 기하학에 기초한 곡선으로 장식했다고 한다.




스페인 = 섬세함 을 느낀 어느 미대생의 감성은

단단하고도 구체적인 역사로 그 타당성을 획득했다








13세기 후반에 건축된 알함브라 궁전은 나스르 왕국의 왕들이 그라나다를 수도로 삼았을 때 건설됐다. 이슬람교도 최후의 왕국이었다. 그들은 이베리아 반도를 점령했던 그간의 찬란했던 문화와 역사적 위용을 널리 알리고 그 영광스러운 마지막 흔적을 남기기 위해 이곳에 처절한 예술적 몸부림의 수를 놓은 듯했다.



“그라나다에서

장님이 되는 것만큼 더 큰 형벌은 없다.”

- 비평가 프란시스코 데 이카사 -






인간으로 태어나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흔적을 남기고자 하는 욕구,

그때의 영광에 재차 자부심을 느껴보는 것


그것은 알함브라 궁전을 만든 이들의 마음이나

가족앨범을 만들던 우리 엄마의 마음이나

별반 다르지 않았을 거다


지금 나는 어떤 역사를 남기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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