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비야 6. 스페인 광장
광장
: 도시 속의 개방된 장소로서 많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마련된 넓은 공간
지금의 광화문 광장이 공사를 마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그곳을 찾은 적이 있었다. 잠시 길을 걷다가 마련된 의자에서 쉬었다 갈 요량이었다.
벤치에 앉아서 광화문과 세종문화회관, 교보타워를 나란히 쳐다봤다. 길가엔 저마다의 시간을 보내는 외국인들, 커피를 들고 지나다니는 직장인들로 가득했다. 이 길고 넓은 바닥에서 과거와 현재 그리고 전지구인들의 개인적이고도 정신없는 네트워킹이 펼쳐졌다.
그러나 이순신 장군님 하나, 저 멀리 세종대왕님 하나 덩그러니 모셔져 있는 그곳은 의인에 대한 존경심 외에, 과거와 현재를 잇는 '길'이라는 것 외에, 어떠한 예술적, 철학적 존재 이유는 잃어버린 듯했다.
누군가 "그래서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거야?"라고
묻는다면 숨이 턱 막힐 것만 같았다.
현대인들의 휴식 공간
도시를 상징하는 공간
목소리를 내는 시위의 공간
관광지로 알려진 공간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공간
우리가 생각하는 광화문 광장의 역할은 다양하다. 그만큼 중요한 공간이다. 나는 중요하고 소중한 것은 그만큼 투자하고, 충분히 생각하고, 멋지게 만들어 그 마음을 내비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서울의 상징과도 같은 광화문 광장이 대대적인 리모델링에 들어간다고 했을 때 너무 큰 기대를 했던 걸까. 그곳은 그저 여러 개의 도로를 합쳐놓은, 작은 공원들을 품은 큰길에 지나지 않았다. 허연 바닥 군데군데 형성된 애잔한 녹지, 그곳에서 나는 어떠한 한국의 감성도, 그것을 보여주기 위한 세심한 노력도 느낄 수 없었다.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광장,
그곳은 정녕 디자인이라는 게 필요 없는 공간일까?
chapter. 5
노을이 질 무렵, 세비야에 도착했다. 모든 도시 중 가장 날씨가 따뜻했던 세비야는 2월에도 20도의 높은 기온을 자랑했다. 덕분에 사람들은 얇은 옷차림으로 노천카페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저 멀리 길거리에서 플라멩코를 추는 당돌한 여인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제 좀 스페인답다
여행을 시작하기 전, 머릿속에서만 맴돌았던 스페인이라는 나라의 인상은 정확히 이곳 세비야의 느낌과 일치했다.
붉은 드레스를 입은 여인의 강렬한 춤선,
타는듯한 태양, 붉은 벽돌의 건물,
사람들의 짙은 눈썹까지도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스페인 광장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배우 김태희가 저 여인과 비슷한 옷을 입고 플라멩코를 추며 휴대폰 광고를 찍은 곳으로도 유명하다.
이 광장은 1929년에 열린 스페인, 아메리카 박람회장으로 지어진 건축가 아니발 곤살레스의 작품이다. 약 100년이 된 광장은 큰 반원 모양의 구조로 바깥쪽으로는 곤돌라가 지나다닐 수 있는 정도의 길을 만들어 대담한 물결이 굽이 치는 것을 허용했다.
문득 이 물길 역시 그라나다의 알함브라 궁전처럼
물을 곁에 두는 이슬람의 건축양식에서 비롯된 건 아닐까 생각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타일의 쓰임이었다. 붉은빛의 건물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정교한 타일 장식, 푸른 무늬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는 물길 앞 난간들도 스페인만의 독특한 예술적 감각을 보여주는 듯했다.
내가 스페인이 타일로 유명하다고 생각했던 건 가우디의 건축물, 알함브라 궁전 그리고 여기 세비야 광장까지 연달아 보면서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심지어 머물렀던 스페인 가정집 바닥조차도 너무나 아름다운 타일로 깔려 있었으니까.
역사를 공부하면서 깨달은 사실은 이 타일이라는 존재가 특히 중세 이후 스페인에서 중요한 건축 장식 요소로 자리 잡았는데 이는 이슬람 문화와 기독교 문화의 융합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이다.
한 나라의 문화란
고수하려는 의지와,
다름을 포용하는 치열한 작용 속에서
'우리의 것'을 만들고자 하는
창조적 의지에 대한 결과였다
스페인에는 안달루시아[Andalucia]라는 지역이 있는데 이곳은 지금의 세비야, 그라나다, 말라가, 코르도바 등의 도시를 포함하는 스페인 남부 지역을 뜻한다.
안달루시아라는 이름은 이슬람 지배 시기에 위 도시들을 통치했던 이슬람 국가의 이름이다. 특히 타일을 활용한 이슬람 예술 양식이 안달루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스페인 전역의 건축과 예술에 큰 영향을 미쳤다.
타일의 활용은 그 화려한 색감만큼 아주 다채로웠다. 주로 멀쩡한 타일을 깨부수어 모자이크 했던 가우디의 구엘공원 스타일, 여러 개의 타일로 하나의 무늬를 만들어 까는 타입 등 바닥뿐 아니라 공예품, 건물 외벽에서도 그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역사적 화합의 증거인 스페인 타일은 건축물에서부터 실내 장식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었다.
즉, 문화와 역사의 결정체가 광장의 건축 재료에
그대로 녹아들어 있었던 것이다
광장은 거대한 물리적 공간의 너비만큼 그곳을 찾는 이들에게도 무언가 전달할 수 있는 의미 있는 곳이어야 할 것이다.
그 의미가 국가에 대한 자긍심이든, 찬란한 역사에 대한 기록이든, 이상적인 과거와 현재의 연결이든 말이다.
머나먼 스페인의 어느 광장에 관하여 글을 쓰며
문득 벌거벗은 것과 같은 리모델링을 마친
광화문 광장의 디자인 철학에 대해 곱씹었다
역사적 이미지와 현대적 이미지가 뒤엉켜 있는 광화문 광장은 양쪽의 합의점(가령 구(舊)와 신(新) 중에 어느 쪽에 더 힘을 실을 것인지)을 찾기 어려워 빈 도화지처럼 광장을 만들기로 했던 걸까, 아니면 이제는 무엇이 우리의 것인지 말할 수 없는 불편한 경지에 올랐다는 증거일까. 그도 아니라면, 지키는 것보다 바꾸는 것의 민족적 익숙함 속에서 그저 '해야 함'으로 밀어붙인 무분별한 변화와 개혁의 중독, 그 결과인 걸까.
어느 쪽이든
유구한 역사와 뛰어난 적응력이 공존하는 나라에서
우리만의 철학이 없다는 건 아쉬운 일이다
뽐낼 우리만의 예술적 감성이 없다는 것도.
이건 좀 무척이나
당황스럽게도
100년 전의 건축 개념이
이해가 더 잘 될 때가 있다
우리는 현대적으로 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본질을 잃어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