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비야 7. 메트로폴 파라솔
공간이 주는 상상력으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들은 무언인가?
chapter. 6
우리에게 Building이라는 것은 언제부터 도시의 상징이 되었을까? 번쩍이는 초고층 건물 하나 없이 도시 전체가 하나의 유적지 같은 이곳 세비야는 성장과 변화의 압박에 익숙한 나에게 참 많은 질문을 던졌다.
건물이야말로
역사와 문화의 산물이라고 생각을 한다
단순한 구조적, 물리적 존재 말고도 그 안에 머물렀을 무수한 사람들의 사랑과 인생의 쌓임이 그것을 증명한다. 그러나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문화의 홍수 속에서, 특히나 역사가 깊은 도시에, 건축적으로 '새로움'이라는 단어는 어떤 식으로 발을 들여야 할까?
다 부수고 새로 짓는 것,
그것이 혜안일까?
Since 1904
고작 추로스 가게일 뿐인데 백 년이라는 세월의 옵션이 붙으면 단번에 ‘역사’라는 말이 절로 붙는다. 서울에서 먼 나라 스페인까지 날아와 이 유서 깊은 가게에서 경험한 이국적 주전부리 섭취 행위는 100년간 드나들었을 익명의 타인들과 묘한 결속력을 느끼게 해 줬고, 긴 세월 동안 꾸준했던 공간 유지라는 엄청난 노력에 찬사를 보내게 했다.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낡은 나무 의자에 앉아
바삭 쫄깃한 스페인식 정통 추러스를
녹진한 초콜레타에 찍어 먹고 있자니,
과거와 현재를
꾀나 달달하게 관통하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 역사적인 스위트함에 취해 있던 것도 잠시, 가게를 나선 지 얼마 되지 않아 나는 이 자연과 비자연의 합동공연에 깜짝 게스트로 초대되고 말았다. 나는 그저 추로스로 배를 채우고 플라멩코 공연을 보러 가려던 것, 그뿐이었다.
지붕인지 다리인지 조차 알 길이 없는 건축물 앞에서 잠시 예약된 일정을 잊고 지는 노을의 움직임을 지켜봤다. 그것은 춤을 추는 무용수 같기도, 도시 전체를 품어주는 커다란 한 그루의 나무 같기도 했다.
이번에도 구글 지도의 힘을 빌려
그곳이 세비야의 버섯들,
메트로폴 파라솔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Thank you google
건축가 위르겐 마이어는 이 오래된 도시에
새로움을 끌어들이기 위해 어떤 고민을 했을까?
누군가 당신에게
"지금 당장 경주에 현대적인 건물 하나를 지어주세요"
라고 한다면 어떻게 시작할 것인가?
나는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지끈하다
그저 ‘전망대’라는 이 독특한 건물은 그 이상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지하인 줄 알았던 첫 번 째 층에는 공사 중 발견된 로마 유적지를 보존한 박물관이 건물의 한 부분으로서 당당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잠시 과거의 흔적을 대하는 유럽인의 자세와 더불어, 헤아릴 수 없는 역사적 재산의 가치를 무시하고 허무맹랑한 레고 가득한 랜드나 짓기 바쁜 우리나라의 자세가 비교되어 씁쓸한 맛이 입안을 감돌았다.
과거를 갈아엎어 새로움을 끼얹는 것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가 공존할 수 있도록
함께 조화로이 두는,
참으로 상호 존중적인 태도였다
두 번째 층은 현대 문명이 데려다준다. 놀랍게도 세비야에서 만난 첫 번째 에스컬레이터였다. 도착한 2층의 넓은 평지에서는 전망대를 지붕 삼아 아이들이 뛰어놀기도 했고 산책을 하거나 쉼을 즐기는 사람들도 있었다.
문득 이 자유로운 건물의 그림자 아래에서 아이들의 상상력은 얼마나 살아 숨 쉬고 있을지 생각했다
하다못해 놀이터도 한국(K)스러운 요즘이다
A 아파트의 놀이터나 B 아파트의 놀이터는 별반 차이가 없다. 고작 발견할 수 있는 차이라면 미끄럼틀 옆 난간을 주사위 모양으로 장식할지, 구슬 모양으로 할지 정도의 진부한 노력이려나.
놀이터 디자이너들에게는 심심한 사과를 전한다. 그들도 다 그렇게 해야 할 상당히 많은 이유(좁은 부지, 적은 예산, 공무원 등과의 협업)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놀이터야말로
'놀이기구'의 전형적인 [typical] 것을 벗어던지고
'놀이공간'의 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엇을 하고 놀아야 할지가 명확할수록 아이들의 창의력은 방해를 받는다. 어느 놀이터에나 미끄럼틀이 있고, 그네가 있다면 아이들은 그저 타는 방법을 터득하거나 놀이터란 그런 곳이라는 규칙만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창의력을 배웠으면 하는 미술학원도 사실은 이런 규칙과 질서를 배우는 곳임을 부모들은 머지않아 깨닫게 될 것이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맘껏 뛰어놀 수 있는 자유의 공간을, 가능한 모든 새로운 시도를 적극 반영하여 만들어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만의 나무를 그리는 것보다
'나무는 꼭 이렇게 그려야 함'만을
지독하게 배우게 될 것이다
3층의 전망대는 플라멩코 공연 일정 때문에 다음 날 아침에 방문했다. 덕분에 흥미로웠던 이곳의 석양과 일출을 모두 감상할 수 있었다. 전망대에서의 뷰는 1,2 층과는 완전히 달랐다. 이제야 이 건물의 목적이 여실이 드러나는 듯했다.
전망대라는 최종 목적을 위해 아래층들은 각자의 존재 이유와 그 매력을 충분히 발산하면서도 꼭대기 층을 탄탄하게 지탱해주고 있었다.
세비야 대성당의 볼트구조와 무화과나무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수많은 격자 조직의 물결 속에서 마치 서핑을 하듯 자유로이 움직이며 세비야의 풍경 위를 유머러스하게 넘나 들었다.
아마도 건축가는
세비야, 그 묵묵히 쌓아온
짙은 역사의 향기 속에서도
사람들에게
갓 짜낸 신선한 상상력의 숨결을
채워주고 싶었을 것이다
세비야의 버섯들은
이미 그들의 과거를 굳건히 지키면서도
새로움이라는 파도를 기꺼이 일으키고 있었다
그렇다면
매일이 새로워지고 있는 도시 서울,
앞으로 이곳의 새로움은 또 어떻게 생성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