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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브림 Aug 07. 2024

사진촬영금지라 감사했습니다

마드리드 8. 레이나소피아 미술관


"상상할 수 있다면 그것은 이미 현실이다."

- Pablo Picasso -






처음 미술학원에 간 중학교 3학년 때부터 나는 연필로만 그리는 소묘를 좋아했다. 길게 연필을 깎는 순간이며 그 연필심이 종이에 닿아 서걱서걱 소리를 내며 흰 도화지에 빛과 어둠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마치 무언가 깨우치고 싶은 자의 신성한 수련같이 느껴졌다.


무슨 색을 써야 할지 무슨 재료를 써야 할지 애써 고민하지 않아도 됐다. 내 눈에 흑백 필터를 끼워 그리고자 하는 물체 하나, 또 내 손에 기다란 연필 하나, 그것에만 온전히 집중하여 순수히 종이에 담아내는 과정이 의미가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유독 흑백 그림을 좋아했다.


최소한의 주어짐으로 만들어낸

그 깊이감을






Madrid

chapter 8.


2017. 레이나소피아 미술관


내가 좋아하는 화가들이 스페인 출신이라는 것은 미술을 공부하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됐다. 나는 살바도르 달리의 미친 상상력을 사랑했고 피카소 작품의 과감한 형태감을 존경했다. 초현실주의 화가라서, 입체주의 화가라서가 아니었다. 그저 내가 느낀 그 진솔한 느낌이 중요한 것이었다.


그래서 미술관을 아주 많이, 당신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많은 것 보다도 훨씬 더 많이 갔다. 나는 미술관이라는 공간에서



자유로운 표현을 혼자 조용히 흡수하고

내 것으로 받아들이는 그 비밀스러운 시간이 좋았다 



마드리드, 20일간의 스페인 여행 중 비가 내렸던 유일한 도시. 혼자 떠나온 이 여행에서 반갑지 않을 법도 한 그 쓸쓸함은 애환을 담고 있는 듯한 그들의 작품을 감상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적절했다. 네모 반듯한 창문들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줄을 지어 있었다. 아마도 레이나소피아 미술관은 내가 찾은 스페인의 건축물 중에 가장 '일반적'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 일반적인 것에는

전혀 일반적이지 않은 것들로 가득했다

 







미술관 건물 중앙에 있는 넓은 정원과 통유리 엘리베이터가 관람으로 지친 시야를 환기시켜 줬다. 우연히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아이들의 맑은 눈빛과 미소 역시 그랬다.


어디에서나 잠시 쉴 시간과 공간은 필요했다.








레이나소피아 미술관에는 피카소의 유명한 작품,

<게르니카> (스페인 내전을 주제로 전쟁의 비극성을 표현한 피카소의 대표작)가 전시되어 있다.


물론 내가 사랑하는 달리의 작품들도 볼 수 있었지만 나는 여기서 오직, 게르니카에 대해서만 이야기해보려 한다.



당신이 이곳에 도착했다면 미술관 안내 책자 따위 없이 게르니카의 위치를 알 수 있는 방법이 몇 가지 있다



하나는 압도적인 작품의 크기이고,

하나는 어디선가 들리는

사람들의 웅성웅성 거리는 소리이다



보고나 들었다면

그저 빠른 걸음으로 그쪽으로 걸어가기만 하면 된다


아주 빠르게, 아마 그렇게 될 것이다








그렇게 나도 모르게 명작 앞에 당도해 정신을 차리고 보니 꽤나 무섭게 집중하고 있었던 거다. 사진촬영 금지 사인을 보자마자 마치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자연스럽게 가방 안에서 노트를 꺼내 펼쳤고, 다시는 고칠 수 없는 펜으로 긴장감이 감도는 스케치를 이어나갔다. 참으로 본능적인 미술의 기원을 스스로 실천하고 있었다.


"Don't take a picture"


생각보다 굉장히 컸던 게르니카(약 7.8M X 3.5M) 옆엔 작은 스탠딩 의자와 그림 지킴이가 서 있었다. 오직 게르니카만을 위한 직원이었다. 모든 작품이 촬영 불가 했지만 게르니카는 유독 그 경계가 삼엄했고 그렇게 나의 창조 의지는 지극히 제한된 상황에서 벌어졌다.


눈앞의 것을 영원히 간직할 수 없다는 아쉬움, 어쩌면 미술의 탄생은 그런 아쉬움에서 비롯된 것 같았다



누군가는 기억하고 싶은 사람을

누군가는 기억하고 싶은 풍경을

누군가는 기억하고 싶은 아픔을


또 누군가는 그들의 작품을



스케치를 하던 내 옆으로 미술관 견학을 온 스페인 학생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다. 꼬마들은 내 뒤에서 어느 이방인 누나의 예술적 발산을 응원해 줬다.


아이들은 내게 방해가 되지 않게, 하지만 너무도 잘 들리게, 서로를 툭툭 치며 "이것 좀 봐" 하고 귓속말했다. 들키고 싶지 않은 귀여운 들림에 비록 입은 웃고 있었지만 원작을 향한 나의 강렬한 눈짓은 멈출 수가 없었다.



어떤 그림을 똑같이 따라서 그리다 보면

화가의 마음이 나의 마음에 투영되는 느낌을 받는다



왜 이런 그림을 흑백으로, 무겁게, 지독하게 그렸을지, 혹여나 아픔을 남기는 것이 더 아픈 일이진 않았을지와 같은 걱정과 연민이 뒤얽힌 슬픈 상상에 잠기게 됐다.







2017. 레이나소피아 미술관에서 구매한 게르니카 엽서


마침내 나의 이 본능적 행위가

그의 창작 이유와 큰 차이가 없음을 깨달았다


그는 전쟁의 아픔을 기록한다는 의미부여보다는 지금 이 비통한 현실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기력한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통로로써, 그토록 일말의 색채의 허용 없이 살벌하게 그리고자 했을 테다.



어쩌면 미술은

누군가에게 나를 보여주는 일이기 앞서

나에게 나를 보여주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지금 이 들끓는 표현의 절실함을 타는 듯한 붓질로 생생히 남기는 것, 그것은 일기장에 그날의 감정을 여과 없이 흘겨 쓰는 것처럼 나를 돌아보고 감싸 안는 행위였다.


사진을 찍을 수 없어 펜을 들었고, 가까이 다가갈 수 없을 것만 같았던 그의 마음을 들여다봤으며, 동시에 그것을 대하는 나를 느꼈다. 



미술관의 건축은 그저 느낄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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