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드리드 9. 마드리드 왕립극장
레알 마드리드?
Real madrid?
아니, 난 떼아트로 레알
Teatro Real!
어떻게 공연 몇 개 보고 싶어서 뉴욕까지 갈 수 있냐고? 어떻게 마드리드까지 가서 축구도 아니고 공연도 아닌 극장을 볼 수 있냐고? 사랑하면 그렇게 된다. 그 보다 더 멀리 있더라도 직접 보고, 껴안고 싶은 마음이 절로 생긴다. 나에겐 '레알 마드리드'를 외치는 대신 '극장 투어'를 신청하는 것이 하나의 애정 표현이었다.
나의 20대를 빈 틈 없이 채워준 것은 공연이었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무대에서 일어나는
모든 예술 말이다.
연극의 지금 이 순간을 사랑했고, 뮤지컬의 화려함에 매료되었다.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모든 시청각적, 육체와 비육체적 예술에 흥분했다. 그것은 핸드폰만 켜면 보고 또 볼 수 있는 영화나 기타 다른 영상물과는 차원이 다른 감동이었다. 오로지 객석에 앉아 있는 그 시간에만 내게 다가와줄 수 있는 존귀한 경험이었다.
복제할 수 없는, 오직 지금만 존재하는
순간의 예술이 나를 이곳으로 이끌었다
chapter 9.
마드리드에서 피카소의 게르니카 외에 하나 더 절대로 놓칠 수 없었던 것은 마드리드 왕립 극장(Teatro Real) 투어였다. 그 당시 극장의 이름이 축구팀의 이름 같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 Real의 뜻이 Royal [왕족의]이라는 뜻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
큰 극장들은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극장 투어를 예약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다. 객석과 무대의 안 쪽 구석구석을 직원이 따라다니며 설명해 주는 것이다. 이미 그것의 존재를 알고 있었던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스페인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는 이 왕립 극장의 홈페이지를 여행 전부터 조사해 그 티켓을 거머쥘 수 있게 되었다. (아마 축구 경기보다는 한참 못 미치는 경쟁률을 자랑한 테지만)
나는 유럽의 극장이
우리나라와 어떤 차이가 있을지
그것이 좀 궁금했을 뿐이다
당신이 극장에서 공연을 본 적이 있다면 무대 정면에 보이는 프로시니엄 아치(무대와 객석을 구분하는 액자 모양의 건축 구조)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 직사각형의 구조물을 경계로 무대와 객석, 허구와 현실의 세계가 나뉜다.
어찌 보면 이 구조물은 무언의 약속 같은 것일 수도 있겠다. 공연을 만드는 이들이 공연을 감상하는 자들에게 요구하는,
"지금부터 여기서 벌어지는 일들을
진짜라고 생각해"
라는 이해
그러나 이 허구의 세계를 관람객들에게 감히 진짜인 것으로 납득시키는 과정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영화는 그것을 장소에 크게 구애받지 않은 영상 작업으로 시공간을 초월해 구현할 수 있다면, 공연은 안타깝게도 저 네모난 공간이 물리적으로 전부이기에 그 안에서 온갖 기계적 아날로그 방법(기계를 사용하지만 작동을 인간이 해야 하는) 혹은 다분히 인간적인 방법을 총동원해야 한다.
가령 숲으로 무대 배경을 바꾸어야 한다면,
무대 위쪽에서 때에 맞춰 나무가 그려진 천이 내려오거나, 혹은 연극적 요소로써 빈 무대에 서 있는 배우가 "이 아름다운 숲을 보라!" 식의 대사를 날리던지 해야 한다.
다시 이 애잔한 프로시니엄 아치에서 무대 안 쪽으로 돌아와 보면 크게 천장, 무대 바닥, 측면 등으로 공간을 나눌 수 있다.
천장에는 각종 무대 세트나 무대 막, 조명 등을 걸 수 있는 바텐(Batten)들이 있다. 그것들은 극본에 따라 무대 감독의 사인에 맞춰 수직 이동 한다. 조명은 사이드에 있는 트러스(Truss)에도 설치할 수 있다. 무대 바닥으로는 상하로 움직 일 수 있는 장치(Lift)라던지 무대 지면보다 한 단계 낮은 앞쪽에는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실시간으로 연주를 할 수 있는 공간, 오케스트라 피트 (Orchestra pit)가 있다.
무대 자체에서는 우리나라와 큰 차이를 느끼진 못했지만 좀 더 재밌는 것은 여기에 있었다.
우리나라와 유럽의 극장의 건축 구조적 가장 큰 차이는 박스석, 그리고 그 역사이지 않을까 싶다. 국내엔 이 박스석의 존재 여부가 일반적이지도 않을뿐더러 유럽의 방식을 그대로 착안해 온 것으로 알고 있다. 반면 유럽의 극장들은 그렇지 않다
16세기말, 이탈리아에서 일어난 음악극의 흐름을 따른 것으로 '오페라'라는 장르가 시작됐다. 작품 전체가 통작된 이 음악극은 특유의 격조 있는 분위기로 귀족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유럽에서는 한 도시에 오페라 극장을 짓는다는 것 자체가 시민들의 자긍심을 고양시키는 일이었고, 극장의 발전은 더 많은 로열층을 끌어들이기 위한 뚜렷한 목적으로 자연스럽게 고급스러운 인테리어로 발전했다.
금빛으로 수놓은 화려한 극장은
객석의 역사이자 귀족의 역사 그 자체였다
마드리드 왕립 극장의 박스석들은 예전의 프라이빗한 그 모습 그대로는 아니었지만 뭔가 요즘의 느낌으로 사이사이의 기둥들을 길게 뚫어놓은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현대에 들어 이 박스석의 존재는 관객들이 계층적 소외감을 느끼지 않게 하기 위해 없애고 있는 추세라고 하지만 여전히 몇몇 극장의 박스 석들은 높은 계층 민들을 위해 존재하고 있었다.
귀족들 중에서도 비싼 값을 지불할 수 있는 사람들만이 이 프라이빗한 공간에서 공연을 즐길 수 있었는데, 단지 공연을 보기 위한 공간보다는 높은 층고에서 느낄 수 있는 하나의 우월감을 가지고 때로는 쌍안경을 들고 버젓이 반대편 마음에 드는 여인을 몰래 훔쳐보거나, 도박을 즐기거나, 사교의 장소로서 실컷 떠들며 공연을 보는 곳이었다는 기록도 있었다.
1818년 처음 초석을 세웠다는 마드리드 왕립극장 역시 200년이 넘는 세월의 풍파 속에서 많은 변화를 겪어온 것 같았다.
"마드리드 왕립극장은 스페인을 대표하는 오페라하우스로 자리를 지켜오다 1925년 마드리드 지하철 공사로 건물에 금이 가면서 폐쇄, 1960년대에 대대적인 보수 작업을 하여 1966년 다시 문을 열었다. 1997년부터 오페라하우스의 옛 명성을 되찾고 있다."
하나의 또 중요한 역사의 중심에서
다름을 이해하고, 좋아하는 것의 깊이를 더해가는 것,
그것이 내가 스페인을 일주하고 있는 의의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