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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ia Oct 24. 2021

코로나 시대의 런던 4.

ep 4. 관광 명소는 결국 사람이 만드는 것임을

    락다운 이후 처음으로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었다. Delamia라는 퓨전 음식을 만드는 곳인데 딱 트렌디한 런던의 음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게 뭐냐하면, 일단 돼지호박이나 컬리플라워, 오크라와 같은 트렌디한(?) 야채를 베이스로 그릴링하거나 튀기거나 하는 방식으로 식감을 다채롭고 좋게 만든다. 그 위에는 아시안적인 향취가 나는 것으로 소스를 뿌리되, 이탈리안이나 중동지방의 재료인 올리브오일이나 요거트, 각종 허브를 장식하듯 맛좀보라는 느낌으로 흩뿌려주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요거트도 좋아하고 못먹는 허브도 없는지라 이런 실험적인 퓨전요리가 매우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코로나가 한창인 런던을 피하여 돌아온 서울에서도 점점 이런 시도를 하는 곳이 많아지는 것 같았다. 좋은 것은 다 같이 공유하는 것이지.

씽이 철저한 채식주의자인 것을 깜박 잊고 대구요리를 시켰다

    물론 락다운 해제 이후 빠르게 정상화되는 모습이 보이기도 하지만 내가 사랑하던 레스토랑들은 여전히 문을 닫았다. 생각해보면 락다운 이전이라고 해도 모든 작은 상점들이 손님들로 가득한 것은 아니었지 않은가.

    

    이 레스토랑에서 기업을 상대로 뱅킹 일을 하는 인도계 영국인 '씽'을 만났다. 락다운 해제 직후 런던으로 돌아와서 만난 첫 친구이기도 하거니와 이 날은 두번째 만남이었다. 씽을 처음 만난 것은 내가 런던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킹스크로스 옆 IT기업들이 입주한 캐널(canal) 근처에서였다. 힙한 바에서 칵테일 몇 잔 마시며 가벼운 썸씽을 즐기던 친구였는데, 인도계 사람은 처음이라 솔직히 깊은 감정으로 만났다기 보다는 호기심이 강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는 극동에서 온 여자가 궁금했고 나는 이민 2세로 영국에 정착한 인도계 남자가 궁금했다. 결론적으로 인도인이라고 해서 엄청나게 다른 것은 없다. 

    그의 장점이라 하면 입술이 상대적으로 도톰하고 부드러운 편이라서 키스를 할 때 조금 더 감미로운 느낌을 준다는 것과, 여자를 대접하는 데 능숙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직 때가 덜 탔다고 느껴지는 점이다(나보다 한 살 어리기도 하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절대적인 단점이 하나 있었는 데 그것은 소위 겨드랑이에서 난다는 그 냄새다. 한중일이나 동남아시아의 동양인들은 이 냄새 나는 사람이 별로 없지만 유럽에서는 백인이든 흑인이든 인도계나 아랍계든, 내가 만난 남자의 90퍼센트는 이 냄새가 났었고 데오도란트로 아무리 관리한다고 해도 다음날은 어김없이 이 냄새로 내 아침을 열어주었다. 

    아무튼 그는 가족이 모두 힌두교도이면서 채식주의자라 그를 만날 때면 각종 야채요리를 먹는 것이 나에게도 새로운 경험이다. 채식만 하는 남자는 처음 만나봤는데, 가끔 런던에서 처음 데이트에 나서는 비채식주의 남성들이 가지는 두려움을 조금 알 것도 같다. 한편, 2존*에 부모님이 사준 아파트를 소유한 그는 소위 말하는 부모 덕좀 본 부유한 인도계 이민자였다(*런던은 1존이 센트럴 즉, 중심부. 서울로 치면 중구나 종로구정도 되며, 2존은 영등포구 또는 관악구와 비슷하다). 발음도 우리가 흔히 아는 알아듣기 힘든 인도식 영어가 아니라 완전한 영국식 영어를 구사하는 영국화된 인도인이라서 나에게는 더 신기한 유형의 사람이었다.

    이보다 2주 전쯤 다시 만난 씽은 전보다 머리가 꽤 길었는데 미용실을 세 달간 가지 못했다고 한다. 그는 락다운 때문에 사람을 거의 만나지 못했지만 집 근처에 사는 친구들 위주로 주말마다 만났다는 것 같다. 가족들은 거의 보지 못했는데 엑시터(exeter)에 사는 동생을 제외하고는 두바이에 아버지가, 델리에 어머니가 갑자기 취소된 비행편 때문에 서로 생이별하고 있는 중이라고도 덧붙였다. 그는 거의 밖으로 나가지 않고 운동도 하지 않고 집에서 주로 생활했다. 코로나가 무서워서 모든 음식 재료는 배달하고 직접 요리해서 먹었다고 한다. 나를 만나기 2주 전부터는 그래도 밖에도 나가고 대중교통도 이용했다고 한다. 

    그는 항상 내가 있는 웨스트 센트럴쪽으로 오곤 했다. 만난 시간은 퇴근시간과 정통으로 겹치는 시간대이지만, 현재 지하철은 거의 사람이 없고 객차 한 칸에 사람 다섯 명 정도가 전부라고 했다. 불과 다섯 달 전, 2월만 해도 퇴근시간대 객차는 까치발을 들고 서야 할 정도로밖에 움직일 수 없어야 정상이었다!

    그와 옛날 이야기를 쭉 하는데 아, 그 때는 그런 것이 참 괴로웠었는데 이제는 그저 사무치도록 그립다. 발 딛을 틈 없던 지하철도 그립고 관광객들로 복작복작한 셀프리지 백화점 식품관도 그립다. 스산하고 썰렁한 하이드 파크(Hyde Park)가 그립다.

하지만 이렇게 밖을 걸어다닐 수 있는 것조차 감사해야겠지. 따스한 햇살과 삶에.

    왜 사람들이 마스크는 안쓰면서 라텍스장갑은 끼고 덧신은 꼭 신기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으니 자기도 정말 모르겠다고 한다. 마스크도 일반 덴탈마스크 역시 괜찮다고 의사인 사촌이 말했다며 언제나 구비는 하고 있었다(쓰지는 않고).


    서울에 있는 3개월동안, 부모님 집 근처의 한강공원에서 자주 걸어다녔다. 그것도 가장 땡볕아래서. 오후 12시에서 3시 사이에. 작렬하는 태양 아래 있자니 땀은 나도 에너지를 더 흡수하고 있는 느낌을 즐겼다. 원래는 그렇게 많이 걷는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런던이 나를 긍정적으로 바꿔놓은 것 중 하나이다. 물론 런던은 대중교통이 무척 잘되어있지만 역과 역 사이 거리가 멀지 않아 한 번 타는데 삼천원 정도 드는 튜브(영국에서는 지하철을 메트로라고 하지 않고 tube라고 한다)를 탈 바에는 그냥 걷는게 나은 경우도 많다.

    오늘은 걸어서 코벤트 가든(Covent Garden)까지 가보았다. 그토록 활기넘치고 생글생글하던 쥬빌리 마켓(Jubilee Market)은 너무 썰렁했다. 쉐이크쉑 버거는 이제 더 이상 줄 선 사람들을 보기 힘들었다. 어디에도 줄은 없다. 관광객이 그전에는 그만큼 많았다는 증거일 터. 

    처음 그 쥬빌리 마켓은 학교 초반에 2시간 정도 되는 공강을 어떻게 때울까 고민하던 차에 갔었다. 팔라펠 샐러드를 먹었었지. 그냥 관광객들처럼 나도 아무 벤치에 앉아서. 그조차 이제 볼 수 없는 풍경이 되어버렸다. 코벤트 가든에는 얽힌 사연이 많다. 내가 다니던 학교 근처이기도 하지만 제피가 이 근처에 살았기 때문에 겸사겸사 데이트도 이 근처에서 자주 이루어졌다. 가보지 않은 가게가 거의 없다.

잘 보이지는 않지만, Lady of Grapes라는 레스토랑 겸 바가 있다. 제피랑 세 번째 데이트 하려고 했던 곳.

    코벤트 가든 근처 한 골목에는 Lady of Grapes라는 레스토랑 겸 바가 있다. 작년 겨울쯤 예약 안하고 갔다가 단체예약으로 그냥 돌아가야 했던 낭패를 보았었지. 추워 죽겠는데 나를 생고생시킨 그 놈(제피)에 대한 분노도 이제는 추억으로 변해버렸다. 그 앞을 서성이던 나. 이제는 발길이 끊긴 코벤트 가든. 다시 여기에도 사람들이 복작복작해질 수 있을까.

마지막 wine and dine은 이곳 Sabor에서. 미슐랭 1스타 중 가장 저렴한 가격이지만 갈리시아의 멜팅문어(?)를 가장 잘 구현한 런던의 스페인 레스토랑 겸 타파스 바.

    모든 공간마다 생생한 그 날의 기억이 잔재했다. 이제는 사라져버린 풍경과 그 때 그 사람. 앞서 언급한 레마르크의 소설 ‘사랑할 때와 죽을 때’에 “영원한 상실”이라는 표현이 나오는 데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 때가 올 수 있을지 어찌 알았겠는가. 가장 북적여야 하는 거리들이 텅 빈 모습을 보니, 내일은 그나마 런던에서 현재 북적인다고 할 수 있을만한 해롯이나 셀프리지로 향해야만 할 것 같다. 결국 나는 사람을 향해 떠난다. 비록 내 사람이 아닐지라도 사람이 있는 곳이 좋다.

원래는 관광객들로 가득했어야 할 피카딜리 서커스. 코로나 이전에는 전광판의 온전한 모습 자체를 찍기가 무척 힘들었는데 이제는 온전하지 않은 모습을 찍는 것이 더 어렵다.

    항상 관광객으로 붐비던 피카딜리 서커스도 아주 썰렁하다. 아주 간간히 보이는 관광객들이 있는데 어디서 온 사람들일까 이 위험을 무릅쓰고서. 사람이 없으니 저것은 그저 커다란 전광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그 유명한 런던 시내 곳곳의 명소들이 더 이상 명소같지가 않다. 관광지를 관광 지답게 만드는 것은 결국 사람이었음을 오늘에서야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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