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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ia Oct 24. 2021

코로나 시대의 런던 5.

ep 5. 연락이 끊어진 런던에서 홀로 살아가기

    코로나가 변화시킨 풍경 중 하나는, 나에게도 적용되는 것이기는 한데, 불필요한 것을 줄이고 정말 필요한 것에 집중한다는 것이다.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아주 명쾌하게 답을 내리기는 어렵다. 사람마다 다 다르겠지만 물품에 대한 소비든 인간관계든 불필요하거나 넘치는 것을 줄이는 데서 시작되고 있다. 계속 사고싶어서 망설이던 신발이 있었는데, 그 갈망이 좀 무뎌졌다. 마스크를 쓰는 것이 생활화되다 보니 소비의 기준도 조금씩 바뀌어 가는 게 느껴진다. 꼭 필요하지 않은 소비를 줄인다고나 할까. 여느 때면 샀을 대폭세일된 구두들도 사지 않게 되었다.

    메이크업을 할 일도 거의 없어지는 것 같다. 밖에 안나가서가 아니라 마스크에 화장이 다 지워지기 때문이고, 좋게 말하자면 불필요한 것을 버릴 줄 알게 되었다. 특히 사람을 만날 일이 별로 없으니 나의 얼굴에 결점을 가리고 장점을 부각시킬 일이 그렇게 중요하지는 않게 되었다. 

    하루에 500-1000명 사이의 확진자가 나오고 있는 영국이지만 그래도 사람 사는 곳은 모두 같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상황은 더 심각했을 것이다. 이까짓 코로나로 이것저것 전쟁을 배경으로 쓰여진 소설이나 전염병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들을 읽고있는데, 인간의 삶은 다 비슷비슷 했구나. 비슷비슷 하구나. 

    이 코로나 와중에도 런던 중심부의 세인트 제임스파크(St. James Park) 한 구석에서는 결혼식이 진행중이었다. 메이페어(Mayfair)에서 아이쇼핑을 하고, 딱히 할일은 없고, 그런데 설상가상(?) 날씨는 좋아서 정처없이 걷는 중에 우연히 보게 되었다. 삼삼오오 친구들과 가족끼리만 모여서 진행되는 결혼식이었는데 신랑신부가 어찌나 즐거워 보이던지. 큰 행사든 작은 행사든 즐거워야 한다. 코로나 시절이라고 즐겁지 않을 이유는 또 무엇인가! 친구들끼리 돗자리깔고 모여서 수다도 떨고, 일회용 잔에 샴페인 마시는 것도 좋아보였다. 

어려운 시국에 큰 결심을 내린 그들을, 알지는 못해도. 더 축복해주고 싶다.

    평소에는 외로움을 잘 느끼지 못하는 성격이지만, 그 옆을 지나는 데 갑자기 외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로움은 절대적인 것이라기 보다는 상대적인 것이 분명하다. 가볍든 무겁든 연애는 이 정도면 할 만큼 했고, 애정의 수렁에 다시 발을 담그고 싶은 마음도 없지만, 그냥 시시콜콜 일상을 나눌 누군가가 옆에 있었으면 싶다. 나이가 들어서 안정을 추구하게 되었다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안정이라는 것인지도 확실히는 모르겠다. 하지만 같이 있어서도, 떨어져 있어서도 함께 무언가를 공유한다는 자체로 나에게 에너지가 되는 사람이 그립다. 


    최근에 보리스 존슨(Boris Johnson) 영국 총리 및 그 내각이 강조하는 것이 소셜 버블(social bubble) 안에서 활동하라는 것이다. 코로나의 빠른 확산을 막기 위해서 마구잡이로 파티하는 것이 아니라 친구들, 친한 지인들끼리만 삼삼오오 모여서 서로 서포트할 수 있는 일종의 써클을 만들고 살라는 것이다. 나는 아직 소셜버블이 없는데, 나 같은 싱글 이방인에게 소셜버블은 너무도 그 테두리가 모호할 뿐이다. 나도 마음 기댈곳이 필요한 약한 인간이었다.

    코로나를 인간이 인간을 살육하는 전쟁과 비교하기는 너무 비약적인 것은 알지만, 마치 전쟁이 일어난 것처럼 서로를 믿기 어려워지고, 얼굴은 가리고 다녀야하고, 미소는 사라지고, 감정 교류라는 것이 마치 머나먼 이야기처럼 느껴지게 되었다. 그렇게 따지고 보면 입이 사람간의 교류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 것인가. 심지어, 지금 들려오는 소식으로는, 뱅킹을 비롯한 많은 대기업들이 올 12월까지 재택근무를 연장한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더 많은 사람들이 집돌이 생활을 하게 될 것 같다. 새로운 사람 만나기는 더욱 힘들어지고 나만의 사람과 함께 생활하는 시간이 더 많아질 것 같다. 함께 많은 시간을 공유할 사람, 소셜 버블을 빨리 찾아야하는 데 그것이 정말 힘들다. 친구만으로는 좀 부족하다. 난 밖에서 이것저것 체험하고 노는 게 좋은데 그게 안되니 답답하다. 

    그래도 락다운이 해제되고, 영국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여름이 왔으니, 그동안 얼굴 보는 것은 커녕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르는 남자들에게서도 속속 안부를 묻는 연락이 꽤 왔다. 그들은 런던에서 코로나가 유행하기 전까지 만났던 다양한 국적의 남자들이다. 가장 먼저 연락이 와서 만나게 된 것은 지난 번 언급한 인도계 씽이고, 그 다음이 북유럽사람을 연상케 하는 영국인, 그 중에서도 런던 중심부에서 태어나고 자란 순수 런더너였는데, 그의 이름은 '리'라고 하겠다. 

    여기서 한 가지 미리 말해두어야 하는 것이 '옐로우 피버(yellow fever)'라는 용어인데, 동양 여자들만 특별히 공략하고 다니는 남자들의 특성을 이야기 하는 말이다. 내가 생각했을 때 리는, 오십명에 가까운 내가 런던에서 만난 다양한 남자들 중 몇 안되는 옐로우 피버맨 중 하나이다. 옐로우 피버가 보편적인 것은 결코 아니지만, 동양 여자와 함께 손을잡고 걷는 특히 서양인 남성들을 보면 정말 미안하게도 색안경을 끼고 보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여기서 분명히 할 것은, 옐로우 피버가 부정적인 현상이라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마다 다양한 취향이 있고 옐로우 피버도 이름이 그렇게 붙었을 뿐 독특한 취향 중 하나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리는 딱 한번 만나고 그만두었는데, 만남없이 심심풀이로 연락은 자주 주고받았다. 그를 다시는 만나주지 않게 된 이유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 그는 가끔 최면걸듯이 호수같이 파란 눈동자로 나를 빤히 바라보고는 했는데, 부담스럽다. 북유럽같은 외모는 나에게 그다지 플러스 요인이 아니고, 그는 동양여자가 그런 외모의 서양남자를 보면 좋아죽을 것으로 착각하는 것 같기도 했다. 둘째, 성질이 더럽다. 만났을 때는 젠틀맨이고 집에도 정중히 데려다 주기는 하는데, 문자할 때는 욱하는 성격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셋째, 아무리 몇 개월에 걸친 락다운이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스스로 몸관리는 좀 했으면 좋겠다. 

    리 다음으로 만난 사람은 림이다. 림은 말레이시아인데 외모는 완전 한국인같아서 화교계 말레이시안으로 추정한다. 영국에서 의사로 일하고 있으며(아마 레지던트) 공부기간까지 포함 10년동안 살았으나 영국인 패치는 아직 덜 된 연하의 남자다. 그에 대한 이야기는 추후에 더 해야할 것 같다.

    림 다음으로는 알렉으로, 내가 만난 남자들 중 제일 객관적으로 잘생긴 러시아인이다. 알렉 다음으로는 거저 얻으려고 하는 독일인 벤, 착한 것은 좋았지만 인생의 경험치가 너무 적었던 리투아니아인 토마스, 토마스 다음으로는 동네주민 러시아인 샌더, 샌더 다음으로는... ... 아무튼 이렇게 코로나가 조금 잠잠해지고 락다운이 풀리고 나서부터는 많아야 세번의 짧고 생산적이지 않은 만남이 이어졌다. 그런데 그냥 사람을 만나는 것 자체가 원래는 굉장히 피곤하다고 생각했는데, 또 한편으로는 나에게 좋은 자극제가 되기도 한다. 이 세상에 다양한 남자들이 있다는 것을, 그런데 꼭 인종이나 국적이라는 잣대는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냥 '남자'라는 종을 이해하는 게 더 빠르다는 사실을 더욱 깨닫고 있다. 한 명 한 명 누구 하나 언급을 안하고 넘어갈 수 없는 나름의 교훈을 안겨준 사람들이기에, 기회가 되면 또 이야기를 풀도록 하겠다. 

    사람을 만나는 일은 줄어들지만 자연을 만나는 일은 늘어났다. 지금의 이 시기는 코로나 위기를 넘어서 나 스스로에게 재충전과 새로운 것을 배우는 방학이고 휴가이다. 이렇게 혼자 있을 시간에 자연을 나와 더욱 가까이 하는 법을 배우기로 했다. 이번 주부터 온라인으로 꽃꽂이 기초 강의를 듣는다. Philippa Craddock이라는 플로리스트가 운영하는 수업인데, floristry*에 대해서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쌩기초의 사람들에게 아주 유용한 수업이다. 어떤 물건을 사야하는지, 어디서 꽃을 사야하는지, 어떻게 기초적인 관리를 해야하는지, 정물 사진은 어떻게 찍어야 좋은지 등을 하나하나 다 알려준다. 그래서 요즘에는 공원에 가도 할 일이 하나 더 생겼다. 꽃과 식물사진을 잘 찍는 법을 배웠으니 한 번 응용해보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을 비우고 몸을 쓰는 것을 배우기 시작하면 시간이 금방 금방 간다. (*floristry를 어떻게 번역해야 좋을지 난감한 점이 있다. 화훼장식술 또는 화훼기술학?)

코로나가 아직 심각해지기 전 2월쯤 발렌타인 데이 전날이었던 것 같다. flower arrangement(화훼장식)에 관심이 부쩍 많아져서 유명 플라워스쿨에서 원데이 강의를 들었다

    가을이 오면 제인 패커(Jane Packer)라는 플라워스쿨 겸 플라워샵에서 정식 플로리스트 과정을 수강하려고 한다. 개학 전까지 그러다보면 시간이 또 금방 가겠지. 사람으로 채우지 못하는 것을 새로운 배움으로 채워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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