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시니어 앱 사용 설명서>를 쓰는 이유
엄마는 영화를 좋아하신다. 얼굴이 고운 배우가 등장해서 행복하고, 아름다운 배경을 감상하는 재미도 쏠쏠하다고 하신다. 다 큰 딸 좋다는 게 무엇인가. 큰마음을 먹고 엄마에게 아이패드를 선물하고 왓챠의 프리미엄 멤버십을 구독했다. 엄마는 곧 왓챠 앱에 익숙해졌다. 좋아하는 영화를 검색하고, 보고, 평가하는 일까지 수월해 보였다. 물론 아이패드에 앱을 깔고 로그인을 도와준 사람은 나였지만, 어차피 자동 로그인 기능이 있으니 엄마는 몰라도 되리라 생각했다.
이른 오후, 일이 한창 바쁠 때 전화가 왔다.
“너 혹시 왓챠 멤버십 해지했니? 돈을 내라고 하던데.”
한참 동안 통화를 하고 나서야, 문제의 원인이 밝혀졌다. 왓챠가 앱을 업데이트하면서 자동 로그아웃된 모양이었다. 로그인이 되어 있지 않았으니 ‘2주 무료 이용’을 권하는 화면이 메인으로 떴다. 언제나 그렇듯 엄마는 일단 쨍하고 크게 표시된 데다가 가운데에 떡하니 자리 잡은 ‘무료 이용 시작’ 버튼에 손이 간 모양이었다. 일단 무료 이용 시작 버튼을 클릭하면 이용권을 결제하는 페이지로 연결된다. 엄마는 가격이 나열된 페이지를 보고 덜컥 겁이 나서 내게 전화를 한 것이었다.
나는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로그인을 누르고, 아이디랑 비밀번호를 넣으면 돼!”
그리고는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속사포처럼 쏘아댔다. 엄마는 듣는 둥 마는 둥 하더니 로그인을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다며 그냥 다음에 본가에 왔을 때 다시 로그인해달라고 말씀하셨다. 짜증이 나서 머리털이 곤두서는 기분이었다. 고가의 멤버십까지 구매해 드렸는데, 로그인하지 못해서 본가에 가는 날까지 사용하지 못하신다니 납득이 되지 않았다. 결국 나는 짜증 섞인 말투로 통화를 마치고야 말았다.
“아니, 로그인 못 해서 못 쓴다는 게 말이 돼? 아, 몰라 나중에 얘기해!”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아이패드에서 왓챠 앱을 눌렀다. 역시나 자동 업데이트 때문에 로그아웃이 된 상태. 나는 로그인 버튼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왜 엄마가 로그인하지 못했는지 알 것 같았다. 메인 페이지에는 로그인 버튼이 있었다. 우측에, 아주 작게.
내 눈에는 작고 선명한 ‘로그인’ 세 글자가 보였지만, 화려한 메인화면이 익숙지 않은 엄마는 그 버튼을 찾지 못했다. 나중에 들어보니 혹여나 다시 결제 페이지로 넘어갈까 불안하여 아무것도 누르지 못했다고 하셨다. 무언가를 처음 하면 누구나 두려운 것이 당연한 일인데, 참 많이 미안했다. 진심이었다. 그러나 알량한 죄책감은 하루를 채 넘기지 못했다. 나는 곧 왓챠 앱 로그인 사건을 까맣게 잊어버렸다.
엄마는 한 달이 지나서야 다시 왓챠를 이용할 수 있었다. 게으른 내가 주말에 본가에 내려가지 못한 탓이었다. 나는 이번에야 말로 엄마가 완벽히 앱 사용법을 익힐 수 있도록 하겠다는 마음으로 직접 해보도록 권했다. 엄마는 금방 사용법을 익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작은 성취감에 압도되어 말했다.
“엄마, 이제 완전히 알겠지! 또 할 수 있겠지?”
“으응….”
엄마의 동공과 입은 다른 말을 하고 있었다. 나는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엄마가 아직 완전히는 이해하지 못했구나.
운동을 처음 배울 때가 떠올랐다. 트레이너는 입으로 운동 동작을 설명하며 열심히 시범을 보여주었다. 그녀의 시범과는 다르게 나의 움직임은 엉망진창이었다. 그러나 트레이너는 지치지 않고 나에게 매번 시범을 보여주면서 설명을 되풀이했다. 심지어 내가 운동을 하고 있는 중에도 같은 말을 지겹게 되뇌었다.
“날개뼈 내리고! 발 뒤꿈치 누르고! 무릎에 기대지 말고! 아랫배에 힘 빠졌다!….”
두 달이 지난 지금, 나는 비슷하게나마 동작을 따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도 트레이너는 여전히 설명을 멈추지 않는다. 자신은 습관처럼 하는 운동이지만 나처럼 일주일에 한두 번 운동을 배우는 사람들은 쉽게 잊기 때문이라 했다.
왜 진작 생각하지 못했을까. 모바일 세계가 익숙지 않은 우리의 엄마에게는 트레이너가 필요하다. 앱을 숨 쉬듯이 사용하는 자식이라면 제격이겠으나, 자식들이 어디 나긋나긋하던가. 성질은 어찌나 급한지 몇 분만에 뚝딱뚝딱 화면을 터치해서는 ‘됐지?’하고 말하는 게 전부다. 하나하나 물어보자니 자존심도 상하고 내 뱃속으로 낳은 저것이 머리 좀 컸다고 툴툴거리는 꼴이 짜증 난다. 딸램도 불만이 많기는 마찬가지이다. 아무리 답해 드려도 똑같은 질문이 되돌아올 때에는 귀찮은 마음이 샘솟고 때로는 작은 좌절까지 경험한다.
더 이상은 못된 딸램이 되고 싶지 않다.
더 이상은 언힙(un-hip)한 엄마가 되고 싶지 않아!
그런 분들을 위해 힙마마와 딸램이 쓴다.
앱 이름별 시리즈로 진행될 <시니어 모바일 앱 설명서>에는
힙마마가 시니어로서 모바일 앱을 이용하며 겪은 페인 포인트와
딸램의 친절한(?) 설명이 담겨 있다.
이 세상의 모든 엄빠♥가 앱을 쉽게 사용하는 그날까지!
힙마마와 딸램의 대화는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