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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희구 Oct 15. 2021

소주 한 병이 공짜

시와 시인의 말




막 금주를 결심하고 나섰는데

눈앞에 보이는 것이 

감자탕 드시면 소주 한 병 공짜란다

이래도 되는 것인가

삶이 이렇게 난감해도 되는 것인가

날은 또 왜 이리 꾸물거리는가

막 피어나려는 싹수를 

이렇게 싹둑 베어내도 되는 것인가

짧은 순간 만상이 교차한다

술을 끊으면 술과 함께 덩달아 

끊어야 할 것들이 한둘이 아니다 

그 한둘이 어디 그냥 한둘인가

세상에 술을 공짜로 준다는데

모질게 끊어야 할 이유가 도대체 있는가 

불혹의 뚝심이 이리도 무거워서야 

나는 얕고 얕아서 금방 무너질 것이란 걸

저 감자탕집이 이 세상이

훤히 날 꿰뚫게 보여줘야 한다

가자, 호락호락하게       

 




     ......................................................................................................................................................

   어느새 당신은 시퍼런 멍이 되어 내 속에 들어앉았습니다. 그 멍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멍 까닭인가요. 요즘 들어 부쩍 당신 꿈을 자주 꿉니다. 꿈속에서 당신을 입술로 벌컥 훔치고 나서는 소스라치게 놀라 일어나 식은땀을 흘리며 밤잠을 설치곤 합니다. 독하게 마음먹은 것과는 달리 아직도 내 입술과 내 뜨거운 가슴과 내 열뜬 몸이 당신을 다 보내지 못한 것인가 하여 내 속을, 자꾸만 꿈길에 당신을 향하는 내 몸속의 마음을 들여다봅니다. 무엇이 이리도 깊이 나로 하여금 당신께 젖어들게 했는지 생각해봅니다. 변변치 못하고 얕기만 한 내 의지 탓이었는지 황홀하고 안온한 당신의 체취, 당신의 품 탓이었는지 알 수도 없이 상처만 깊습니다.   

   

   당신과 이별한지 석 달째, 당신이 없는 내 마음속 당신의 빈자리는 날이 갈수록 커져만 갑니다. 당신 없이 나 혼자 휘적휘적 사람들 만나러 다니는 것이 처음엔 아무렇지도 않았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당신 없는 빈자리가 불쑥불쑥 느껴지고 당신 없이 하는 일들이, 당신 없이 사람들을 만나러 다니는 일들이 슬슬 부담스러워집니다. 이 흔들림이 흔히들 말하는 그 금단증세인가요. 급작스런 이별의 충격인가요. 쉽게 떨쳐낼 수 있을 것 같던 당신의 자리 당신이 없는 빈자리가 또렷이 각인되어 골속 깊이 파고듭니다. 이제 사람들을 만날 수가 없습니다. 

    

   돌아보니 내가 그동안 얼마나 당신만을 의지 했는지 당신 품속에 안겨 나를 잊고 나의 주변을 잊고 당신의 속, 아니 당신이 점령한 내 마음속에 갇혀 얼마나 안이하게 살아왔는지 낱낱이 느껴집니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당신의 손짓 따라 당신의 숨결 따라 당신의 넓은 오지랖에 몸과 마음 모두 다 안겨 살아온 날들이 다시 짙은 유혹으로 슬몃슬몃 고개를 들려합니다. 헤어진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이렇게 나 당신께로 흔들리어 내달리려 합니다. 스물다섯 해를 함께 해온 당신을 훌쩍 떠나보내 놓고 나니 마음이 헛헛하여 갈피를 잡을 수가 없습니다. 


   당신과의 추억을 고스란히 알고 있는 사람들과의 모임 자리에 가서는 당신이 없는, 당신이 차있지 않은 빈 잔 앞에 우두커니 앉아 있곤 합니다. 멀뚱하게 앉아서 빈 잔을 바라보며 나와 함께 했던, 이제는 내가 취할 수 없는 당신의 자취를 더듬어 봅니다. 당신과의 행적을 돌아보느라 사람들의 말소리는 하나도 들려오지 않습니다. 어쩌면 그리도 알뜰히 당신이 나를 챙기고 살펴주었는지 내가 얼마나 깊숙이 당신의 아늑한 품에 안겨 살아왔는지 당신 멀리 떠나보낸 이쯤에 이르러서야 저리게 느낍니다.     

 

   당신은 나의 연인, 유일한 나의 친구였습니다. 그동안 나를 살아온 것은 내가 아니고 내 속에 늘 생명수처럼 흘러 적셔있던 당신이었던 것을 당신 보내놓고 혼자되어 깨닫습니다. 나의 몸과 나의 마음이 온전히 당신에게 결박되어 당신의 눈과 당신의 귀와 당신의 가슴으로 살아왔습니다. 그렇게 당신의 격정적인 포로가 되어 당신의 껍데기로 살아왔습니다. 그렇다고 후회나 원망은 않습니다. 이제 와서 그런 것들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당신으로 인해 그르친 일들이 허다하게 많다 해도 그게 어디 순전히 당신 탓이었겠습니까.  

   

   어쩌면 이렇게 흔들리고 흔들리다 당신 품으로 돌아가 당신의 안온한 품에 결박되어 내 속을 온전히 당신으로 채우고 당신의 손길, 당신의 숨결로 다시 옛날처럼 살아가려 할지도 모릅니다. 그것이 두렵습니다. 나를 잃는 것은 두렵지 않으나 무엇인가에 내 삶을 의지하며 산다는 것이 두렵습니다. 당신의 도움 없이 혼자 서고 싶습니다. 당신의 손길을 벗어나 이 각진 세상에 찔리고 찔려 상처투성이가 된다 해도 만신창이가 된다 해도 그렇게 만신창이가 되어서 내 삶이 아주 끝장나버린다 해도 혼자서 당돌하게 살아보고 싶습니다.     


   일 년 삼백육십오일 단 하루도 빈틈없이 늘 내 머리와 내 가슴과 내 몸속에서 떠날 새 없었던 당신, 그런 당신과 헤어지고 나면 당신과 함께 떠나보내야 할 저리고 아플 것들 많을 줄은 알았으나 이렇게 처처에 구석구석 사방에 널려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당신과의 단절로 인해 세상의 모든 관계가 끊어져 나 홀로 혹독한 독방에 갇힌다 해도 그렇게 혼자 자멸하고 만다 해도 죽음보다 질길 몹쓸 인연 하나 끊어내기 위해 다 버리려 합니다.

   

   나를 당신으로부터 멀리 떨쳐내 주십시오. 당신 없이 혼자서도 온전히 내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었을 때 당신을 당신 그 모습인 한 잔의 술로 대할 수 있을 때 당신 앞에 서겠습니다. 나는 한 낱의 인간으로 당신은 한 잔의 술로 그렇게 서로를 술답고 인간답게 오롯이 지켜줄 수 있을 때 당당하게 당신을 찾겠습니다. 지금은 비록 비겁한 몸짓으로 소심하고 황망하게 당신으로부터 멀리 도망쳐가고 있으나 언젠가 당신 앞에 한 점 흐트러짐 없이 올곧게 설 그날을 위해 잠시 나를 접겠습니다. 사랑합니다. 내 사랑 한 잔의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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