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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희구 Oct 16. 2021

책방앞에서

시와 시인의 말


거리의 음악이 꽃잎처럼 날린다 

책방의 책들은 유행처럼 섹스를 속삭인다 

책방 앞 거리엔 안개꽃 속에 붉은 장미

꽃다발을 든 사과 같은 여자와

갈비뼈가 허전한 남자가 

길바닥에 떨어지는 노래 몇 소절 

허전했던 갈비뼈에 담는다      


까맣게 잊은 것 같았던 사랑이 

그 거리 노래에 섞여 떠오르고

수줍은 바람이 분다 책방에선 

곤두선 섹스들이 책방 밖으로 나온다 

하나 둘, 쏟아져 나온다     


책방에 가면 섹스가 있다 

책방 앞 거리엔 안개꽃 속에 붉은 

사과 같은 섹스와

섹스가 허전한 섹스가 

섹스 앞에서 섹스를 기다린다

길바닥에 떨어지는 섹스 몇 개 허전했던 

섹스 그곳에 채운다      


까맣게 잊은 것 같았던 섹스가 

그 책방 섹스에 끌려 일어서고 

그 거리에 

섹스가 분다 섹스들이 술렁인다     





   


     .......................................................................................................................................................

   종로서적이 문을 닫기 전, 나는 자주 그 거리 책방 앞에 서 있곤 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꽃잎처럼 흐르는 거리의 음악을 들으며 나는 그 거리의 상징 같은  커다란 책방의 문턱을 발이 닳도록 드나들었다. 궁색하게 이 책 저 책 기웃거리다가 머리가 핑 돌 때쯤이면 책방 밖으로 나와 약속한 사람들과 약속한 술을 기다리거나 집으로 타고 돌아갈 버스를 기다렸다.  

    

   마냥 기다리는 동안 책방 앞에서 안개꽃 속에 붉은 장미 꽃다발을 든 사과 같은 여자들과 갈비뼈가 허전한 남자들이 길바닥 리어카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의 절절한 노랫말들을 허전했던 갈비뼈에 담는 것을 바라보며 나는 또 나대로 까맣게 잊은 것 같았던 사랑을 그 거리 노래에 취해 떠올리곤 했다.     


   그러던 어느 해부턴가 난데없이 책방에 섹스들이, 온갖 망측한 섹스들이 들끓기 시작했다. 마치 출판사들이 너나없이 서로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섹스들을 쏟아냈다. 은밀하게 즐겨왔던 아름답고 맛있는 섹스, 공공연하게 떠벌려지기를 꺼려했던 섹스, 난데없이 섹스이야기를 뿜어내고 싶어 안달 난 출판사들과 책방들이 협잡해서 줄줄이 뽑아낸 섹스관련 서적들.    

  

   물론 섹스 관련 책들이 다 나쁘다는 말은 아니다. 어느 누가 어떤 이야기로 한 몫 잡으면 우르르 그 판으로 몰려가 독자들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며 너도나도 써 갈기고 찍어대고 팔아대던 그 섹스가 그 섹스인 수천 년 인류 섹스 역사에 비추어 별 특출할 것도 없는, 아는 사람 이미 다 알고 있는 그 뻔한 섹스류들의 그 섹스러운 광기가 좀 우스꽝스러웠다는 것이다.   

   

   거리의 음악이 꽃잎처럼 날리던 그 시절의 책방이 섹스들로 재미를 좀 보다가 뒤이어 내 놓은 것이 아마도 무슨 가지류의 책들이었을 것이다. 이십대가 알아야 할 스무 가지 어쩌고저쩌고, 삼십대가 알아야 할 삼십 가지 어쩌고저쩌고, 오십대가 알아야할 오십 가지 어쩌고저쩌고, 왜 이십대는 이십 가지이고 오십대는 오십 가지인지, 그것 숫자에 맞게 짜 맞추느라고 되도 않는 잔머리를 굴렸을 것을 곰곰 생각해보면 헛헛한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상술로 짜맞춘 것들을 삶의 지침서인양 사봤던 사람들, 그들이 있으니 출판사들이 산다. 그 사이사이 기가 막힌 시리즈물로 수많은 독자들이 책방으로 달려갔다. 그러다가 십억 만들기가 나타났다. 제목은 그럴듯한 아니 제목뿐인, 돈 있는 사람들의 돈 놓고 돈 먹기인, 땡전 몇 푼 없는 사람들이 멋모르고 사봤다간 돌아버리고 말 10억 모으기가 그들 말로 출판계를 강타하고 있었다. 그렇게 출판사와 서점들과 독자들이 한바탕 억 잔치를 벌이기도 했다. 

       

   별 시답잖은 내용으로 세계 최고의 판매 부수 어쩌고저쩌고 눈 가리고 아웅하며 독자들을 홀리기도 했다. 정치와 경제와 문화 등등이 서로 뒤질 새라 너나없이 썩어 나자빠지고 있던 시절, 물론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지만 실성한 책방 앞에서  더 이상 서성거리고 싶지가 않았다. 사람들이 모두 섹스의 심벌로만 보였던, 십억으로만 보였던 그 책방 앞의 사람들을 더 이상 바라보고 싶지 않았다.   

   

   책방의 섹스들 때문에 발정 난 개처럼 킁킁거리며 난잡하게 뛰어올 그 책방 앞의 버스를 더 이상 기다리고 싶지가 않았다. 오래전 일이다. 이제는 제발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부끄럽지 않은가. 도대체 얼마나 더 나자빠져야 제정신으로 돌아올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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