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다리가 너무 아파요”
추억 하나 때문에 나는 딸 둘과 친정부모님과 소백산을 걷고 있다. 살랑 살랑 코 끝에 스치는지 아닌지 모르는 기분 좋은 바람이 불던 따뜻한 어느 봄,
하늘은 휘파람 부는 소리가 들릴 것 같은 파랑새의 하늘 빛깔이었고 구름은 그 색감과 어울리는 양털구름의 모습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 쯔음, 내 머릿속 기억은 철쭉이 가득했고 아래의 풍경이 펼쳐졌던 그 소백산의 한 자락을 찾기 위해 이곳까지 온 것이다.
어린시절 나는 등산이 정말 싫었다. 교사였던 아버지는 방학이 되면 거의 매일, 200m정도 높이의 산을 데리고 가셨다. 선택의 여지는 없었고 매일 가야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200m는 8살 초등학교 저학년 시기의 나에게 꽤 높은 산이었는데 매일 가야했다. 가기 싫어했던 나에게 돌아온 말은 너희 오빠는 더 어렸을 때부터 갔었어!라는 말이었기에 마음속으로 오빠는 나보다 더 힘든 세월을 살았다는 생각에 마지못해 따라 갔다.
어느 겨울 방학이었다. 그 때도 등산하자, 산에 가자 그 말이 너무나 듣기 싫었던 10살의 나는 집을 나섰다. 그리고 그 200m의 산을 혼자 올랐다. 매일같이 드나들던 산이었기에 길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반항이었지만 결국 순종(?)과 마찬가지였던 나의 등산 홀로서기, 평소에는 1약수터까지 갔지만 그 날은 내가 반항(?) 해야했기에 정상-2약수터-1약수터까지 돌고 집에 돌아왔다. 나중에 알았던 이야기지만 부모님이 나의 뒤에서 같이 찾아서 올라와 빨간 코트 입은 여자아이 못보셨냐고 물어봤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 곰곰이 생각해보니... 조금 올라오다가 내려가셨던 것 같기도 하고, 나를 찾는 경찰 하나 없이 평온한 하산길을 맞이한거 보니. 그러다 하루는 1000m가 넘는 산을 등반한적이 있다. 올라가는 길은 너무 힘들었지만 꼭대기에서 내려다 본 풍경이 생생했고 그제서야 사람들이 힘겹게 산을 오르는 이유를 조금이나마 알 것 같았던 순간이었다.
소백산에 대한 기억은 딱 하나, 아니 두 장면이 있다. 철쭉이 곳곳 가득한 능선, 그리고 폐암 투병중이신 할아버지와 산 입구까지 같이 올라갔던 모습, 할아버지와 입구까지 같이 올라갔던 기억이 난 것은 한 장의 사진 때문이었다. 나는 작년에 몸이 아파 수술을 하고 11년만에 휴직을 하고 쉼을 얻었다. 쉬면서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은 나의 추억을 돌아보는 것, 철쭉이 언제 필까 개화시기를 살펴보며 나의 고향에 가까운 소백산으로 두 딸, 부모님과 함께 갔다. 그 때 등산이 무척 싫었던 내가 이제는 우리 딸들을 설득해가며 산으로 간다. 워낙에 높은 산이기에 스틱을 미리 준비하고 같이 올라간다. 등산을 할 때는 분명 함께 가던 사람들이 나중엔 점점 보이지 않고 우리 밖에 없다. 아이들은 힘들다고 하지만 그래도 등산으로 다져진 아이들이라 함께 올라간다. 올라가는 내내 보이는 하늘은 진하면서도 연한 느낌이었다. 중간에 간식도 먹고, 잠깐 쉬고 올라간다. 올라가면서 왜 철쭉이 보이지 않을까 약간은 불길한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끝까지 올라가본다. 결국 도착한 ‘연화봉’ 그곳에는 철쭉이 없었다. 거의 몇 송이 볼수가 없었다.
그래도 우리는 올라가며 아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었다. 아빠는 친구들과 함께 소백산에 올라와서 놀다가 같이 내려갔다고 했다. 여행을 좋아하던 할머니, 할아버지께서는 솥을 들고 산에 올라와서 밥도 지어먹고 여행을 하셨다고 한다. 할아버지가 암투병 하실 때, 컨디션 좋은 날 함께 소백산에 올라왔는데 그 당시 엄마가 할아버지께 김밥 하나 못드린 것이 마음에 남는다고 얘기하셨다. 나 역시, 할아버지가 함께 등산하지 못하셨던 마음을 생각해본다. 철도 기관사였고 그렇게 여행을 좋아하셨는데 아파서 등산을 함께 하시지 못한 그 마음이 조금 느껴진다.
그렇게 소백산에 철쭉이 가득했던 영주 시내가 한눈에 보이던 그 능선은 찾지 못했다. 하지만 그 곳에서 나는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었고 아빠의 어린시절의 이야기를 들었고 엄마의 마음을 들었다. 우리 아이들에게 소백산은 어떻게 기억에 남을까.
나중에 우리 아이들이 커서, 아이들의 아이들과 소백산을 함께 오고 또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하고 그런 날이 올 수 있도록 오늘도 하나 더 보여주고 하나 더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