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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해 Nov 17. 2023

범죄 혐의점은 없다

소설을 쓰고 싶었다. 스릴러를 쓰고 싶지만 글이 자꾸만 다른 곳으로 갔다. 그래서 그냥 사람이야기를 써보자, 쓰다 보면 생각이 정리되겠지, 했다.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정세랑 작가의 피프티피플처럼 앞 이야기의 스쳐 지나가는 누군가가 다음 이야기에는 주인공인 이야기를 좋아한다. 

누군가에게는 지나가는 행인일지라도, 자신의 인생에서는 주인공이라는 걸 말하고 싶었다. 모든 사람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써보고 싶었다. 교사의 입장에서만 쓰는 이야기가 아니고 싶었다.

예상 밖으로, 쓰다 보니 재미있었다. 

학부모 이야기, 학생 이야기로 나아가려고 하던 찰나, 그 사건이 뉴스에 보도되었다.

그렇게 내 소설은 8월 이후로 단 하나도 나아가지 못하고 말았다.

쓸 수가 없었다. 

우리의 여름은 집단 우울증으로 눅눅했고, 분노의 물결이 일렁였다.

사건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여기저기에서 터져 나왔다. 

과거를 견디고 견디는 것처럼 보이던 누군가는 사건 이후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나처럼 8살 아들이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계속 그걸 쓰고 싶다.

어딘가에 있을 것 같은 나의 인물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 

진상 학부모 이야기도 쓰고 싶지만 온전히 이해하고 다가갈 수 있을까, 모르겠다. 




학부모가 되어보니 학교는 불친절한 면이 없지 않았다. 그러한 "불친절함"이라는 말에는 친절에 대한 기대가 녹아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관계에서 친절함이란 기본 베이스가 아닐까 생각하는 나로서는 기본적으로 교사와 학부모 사이에는 예의와 친절함을 겉으로 드러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놀랍게도 요즘 학부모들은 교사에게 연락할 때 "안녕하세요 누구 엄마입니다."라는 말을 생략하는 경우가 많다. "오늘 00 이가 아파서 결석합니다." 또는 "오늘 00 이가 학교에서 이랬다던데요." 라든가.

별생각 없이 넘기자면 넘길 수 있지만, 이게 만약 교사가 학부모에게 보내는 문자라면 학부모들도 기분 나쁘지 않을 수 있을까? 

"오늘 00 이가 교실에서 친구에게 연필로 장난을 쳤습니다." 이렇게 한 줄 문자가 왔을 때 아이의 문제점은 차치하고라도 교사의 말투에 기분 안 나쁠 자신 있는 엄마가 과연 얼마나 될까.




나는 유독 나의 엄마에게 불친절했다. 엄마에게 다정함을 느껴보지 못해서 불친절한 걸까. 그래도 그렇지 딸이 엄마에게 이토록 다정하지 못하다는 것은 내가 생각해도 불효 중에 불효녀다. 엄마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들어보지는 못했지만 엄마의 격려와 응원이 마음속으로는 전해졌다는 걸 알고, 그러니까 그토록 잔소리 없이 나를 키웠을 것이다. 아니면 아예 기대가 없었거나, 어찌 됐든 간섭도 잔소리도 없이 알아서 잘하려니 내버려 둔 내가 밥벌이는 하고 살고 있으니, 내가 이토록 굳건하고 남들의 시선에 별로 연연하지 않고 줏대 있게 살고 있는 것도 어찌 보면 엄마가 그렇게 나를 키워줬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한동안 글을 쓰며 엄마를 많이도 원망했다. 아니, 글을 쓰기 전부터 엄마에 대한 원망이 있었다. 다른 엄마들은 이런데, 우리 엄마는 안 그랬다는, 비교 아닌 비교들. 

엄마는 나한테 그런 생각을 안 할까? 엄마가 나에게 악다구니를 쓰던 순간이 많았던 것도 아니라서 그 한순간을 너무 또렷이 기억하는 것이겠지. 

불친절하다는 것에는 친절했으면 좋겠다는 기대감이 있다.

친절함을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모두가 친절하다면 나 또한 친절하게 응대할 테고 말이다. 

그러다가 우리들은 서로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적대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도 든다.


학부모의 입장에서는 서운할 수 있는 일들도 교사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어쩔 수 없는 일들인 경우가 많은데 나는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 것일까. 서로 서운하기만 한 관계는 뭐가 잘못된 걸까. 

나부터 친절한 사람이 되라지.




소설을 쓰고 싶은 이유는 현실에서 있을 법하기 때문이다. 그런 이야기를 글로 쓰다 보면 내가 이야기를 만드는지 이야기에 내가 빠져드는지 나조차도 모를 때가 있다. 

재미있는 일을 하면서 살아도 모자란 판에, 가식적으로 웃으면서 살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굳이 불친절함으로 무장하고 고슴도치처럼 뾰족하게 살 필요는 더더욱 없지 않을까.

그렇게 현실인지 소설인지 구분이 안 가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이번에도 가해자는 없이 피해자만 남았다. 

현실이야말로 스릴러 소설 같다.




대문사진 출처 KBS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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