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해 Nov 08. 2023

우리 아이만 안 나왔어요

5교시를 하는 날의 하교 시간은 1시 40분이다. 

교사일 때는 5교시인 날, 아이들이 하교할 때쯤 되면 온몸의 진액이 다 빠져나간 듯 흐물거리고 정신은 몽롱한 상태가 되기 일쑤다. 

하지만 학부모 입장에서는 사실, 너무 일찍 집에 오는 일이 못내 아쉽다.

1년 내내 엄마가 데리러 와야 한다는 우리 집 어린이는 도통 알 수 없다. 낯설어서 학원에도 가고 싶어 하지 않아 하고 엄마가 데리러 오지 않으면 걱정되어 눈물이 글썽이는 우리 아이를 주변 엄마들은 의외라고 한다. 그만큼 학교 밖에서의 생활모습은 천방지축 천둥벌거숭이다.


"네가 너무 끼고 키워서 애가 버릇이 없어. 소리도 막 지르고."

얼마 전 엄마와의 통화에서 이런 말을 들었다. 내가 잘못 키웠다는 지적은 나 이외에 누구도 할 수 없는 것 아닌가, 어떤 엄마도 자식을 잘못 키우고 싶지 않을 테니까. 금쪽이의 엄마들도 마찬가지일 테다. 하지만 누군가의 지적을 받으니 저절로 생각이라는 것을 하게 된다. 

많은 제지를 하지 않아서? 그렇지만 교사라는 나의 특성상 보통의 아이들 이상으로 아이를 틀 안에 가두려고 하는 나의 모습을 자꾸만 반성하게 되는 일들이 더 많았다는 생각이 떠오른다. 

이러면 안 돼, 저러면 안 돼, 여기서는 조용히 해야지, 인사해야지, 예의 지켜라, 등등

그렇게 제지를 한다고 했는데도 남들 눈에는 부족해 보였던 모양이다. 지금은 우리 아이가 엄마들 사이에서, 선생님들 사이에서 금쪽이로 불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아이의 반에서는 그날 잘못해서 칠판에 이름이 적히면 남아서 교실 청소를 하고 와야 하는 규칙이 있다. 그래서 하교 시간에 반 친구들보다 늦게 나오면 암묵적으로 "저 집 아이는 오늘 청소하나 보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그나마 2학기 들어서 엄마들이 하교시간에 많이 나오지는 않지만, 나와있는 엄마들이 거의 똑같기 때문에 그런 생각과 눈치 보는 일들이 오히려 더 심해진다. 


그날은 특히나 오랫동안 아이가 나오지 않았다. 유난히 우리 반이 늦게 끝난 데다가 다른 아이들은 제 엄마를 찾아서 가버리고 안 그래도 쓸쓸한 가을 거리에 낙엽과 함께 뒹굴고 있는 건 내 자존감뿐이었다. 

아무리 청소를 한다고 해도 너무 오래 안 나온다 싶었는데, 학교지킴이 선생님께서 교문을 닫아버리시는 지경까지 가버렸다. 교문이 닫힐 때 내 마음도 덜컹덜컹 요란한 소리를 낸다. 이것은 분노인가, 걱정인가, 실망인가, 슬픔인가.

하교 시간이 25분이나 지나가고 있었고, 핸드폰에 학교 교실 번호가 뜬다. 학교에서 오는 전화는 심장병을 유발한다는 연구결과는 없지만, 올해 나의 심장은 여러 번 강타를 당했으니 이제 제발 그만해, 마음속으로만 소리를 지르며 목을 흠흠 가다듬고 전화를 받는다. 

"00이 어머님 안녕하세요? 오늘 00 이가 쉬는 시간에 화장실에서 친구들과 잡기놀이를 하다가 화장실 칸 안으로 들어간 친구를 잡으려고 문을 발로 심하게 차서 문이 떨어져 버렸어요. 다행히 아이들이 다치지는 않았지만 다칠 수도 있는 상황이어서 남겨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쉬는 시간에도 이야기를 나눴지만 반성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아서 야단을 쳤어요. 수업시간에도 앞에 앉은 친구와 떠들어서 주의를 많이 줬습니다. 쉬는 시간에 볼 일이 없어도 화장실에 가서 장난을 자주 쳐서 이제는 화장실에 허락받고 가라고 했습니다."

죄송하다는 말을 하며 전화를 끊고 나니 이미 아이는 교문 밖으로 나와서 나를 히죽히죽 웃으며 쳐다본다. 선생님도 몽롱한 정신으로 아이들을 빨리 집에 보내고 싶으셨을 테지만 방과 후 시간까지 할애하여 아이를 지도해 주셨으니 감사하다. 커피 한 잔 사드리고 싶지만 김영란법이 뭐길래. 커피에는 우리 아이 너무 미워하지 마세요,라는 마음을 한 꼬집 담고 싶다. 그런 사심이 담겨있으니 커피조차도 거절하는 지금의 법도 당연히 감사하다.


지난 세월 내가 야단친 우리 반 개구쟁이들의 모습이 스쳐 지나가며, 그 아이들을 너무 야단을 쳐서 내가 이런 벌을 받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는 나에게 아이를 잘못 키우고 있다고 말한다. 담임선생님과의 통화에서도 그런 언중유골을 느꼈다.

나는 과연 아이를 잘 못 키우고 있는 것일까. 위험하지 않은 선에서는 많은 것들을 허용해 주고 키웠다고 생각했는데, 학교라는 정형화된 틀에서는 그런 것들의 허용범위가 너무 컸나 돌아본다.

"엄마는 너를 사랑하지만, 지켜야 하는 규칙을 어기는 사람은 혼이 나야 하고 앞으로는 네 행동이 변하지 않으면 더 크게 야단을 맞아야 해. 그리고 잘못한 것에 대해서는 반성을 해야 한다. 너에게 많이 실망했어."


어른들 사이에서는 '화장실 문짝이 떨어지게 한 놈=미친놈'인데, 남자아이들 사이에서는 "최고"의 개구쟁이라는 평을 얻었기에, 사실 기분이 좋다는 아들. 정말 미친놈인가. 최근에 최민준 소장님의 책을 읽었으니 망정이지, 아들사이에서는 이런 마음이 당연한 거라는 걸 머리로는 이해한다. 하지만 마음이 아직 따라가지 못하고 있어서 인지부조화가 심각하게 진행 중이다.


교사 자녀는 두 가지 부류라는 말이 있다. 진짜 모범생이거나 진짜 최악이거나.

우리 아이가 진짜 최악까지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남들 눈에는 그렇게 비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니 아들 엄마는 최민준 소장님의 아들백과를 재독 하려고 책꽂이에서 꺼내본다. 

내 교직 인생 십몇년동안 화장실 문짝이 떨어지게 만든 미친놈은 한 명도 못 봤는데, 8살이 얼마나 힘이 세길래 화장실 문짝이 떨어졌을까. 문짝이 시원찮게 달려있었던 건 아닐까 라는 나에게는 합리적인 의심이 들었지만 누구에게도 이렇게 말할 수는 없다.

문짝을 부순 우리 아이가 남자아이들 사이에서 영웅처럼 회자되는 모습을 상상하니 남자들의 세계란 정말이지 알 수 없지만, 내가 그런 아이들을 앞으로도 20년은 만나야 하니, 나는 정말 이해심이 하늘 같은 교사가 될 수 있겠다. 허허.

좋은 선생님으로 만들어준 아들에게 이 영광을...... 돌리고 싶지만 아마 학교에서는 교사들 사이에 최고의 미친놈이 되어 있을 우리 아이의 남은 학교 생활이 조금 걱정이 된다. 


선생님께 야단맞고 엄마에게 야단을 맞은 아이는 자기 전에 아빠와의 통화에서 또 야단을 맞은 후에야 울음을 터트렸다. 좋은 말도 한두 번이지, 같은 일로 여러 번 야단을 맞았으니 억울하지? 문짝을 부순 대가로는 너무 약한 거 같은 건 엄마 생각이고.

화장실 문을 떨어트리고 교문이 닫힐 때까지 하교하지 못한 아들을 하염없이 기다리던 교문 밖의 엄마 역할은 처량하고 쓸쓸했다. 그러면서 고난도의 아들을 키우며 교사 엄마는 좋은 선생님이 될 수 있을 것 같아, 기쁘다는 정신승리를 해본다.


인생이 심심하면 아들을 키우세요.




ps. 문짝은 부순 게 아니고 떨어진 거라 시설주무관님이 바로 달아주셨다고 합니다. 문짝이 그렇게 떨어지다니 사실 원래도 좀 덜렁거린 게 아닐까 의심하는 나는 진상학부모겠죠. 





매거진의 이전글 엄마가 교사라도 별 수없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