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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해 Nov 10. 2023

오늘은 아이의 기일입니다

2013년 11월 10일 오전 8시쯤, 나의 첫째 아이가 하늘나라로 떠났다.

그해 8월 13일에 태어났던 아이는 딱 90일을 살다 갔다. 살아있는 시간이 힘들었을 아이는 눈을 감는 순간도 아파했다. 너무 많은 약이 들어가는데 비해 신장이 망가져서 소변은 나오지 않아 온몸이 부어있었고, 태어나는 순간부터 몸무게가 늘어나는 게 당연한 다른 신생아들과는 다르게, 몸무게가 늘어나면 오히려 적신호가 되었다.

면회를 갈 때마다 오늘은 몇 그램 늘었어요, 소변이 안 나오네요.라는 말을 들었다.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중환자실에서 단 한 번도 따뜻한 어둠 속에서 엄마 품에 안겨 잠들어보지 못하고 그렇게 떠났다.

나는 아이의 손가락이나 이마를 쓸어보는 것 이외에 안아볼 수도 없었다.


나는 내가 뭘 잘못했는지도 모르는 채 여전히 살아가고 있다.


이제 많이 큰 둘째, 셋째 아이는(공식적으로는 첫째, 둘째 아이다.) 나도 오빠가 살아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나도 형이 있었는데 형 다시 낳아줘, 따위의 말을 하고 그런 말을 듣는 나조차도 더 이상 가슴이 찢어질 정도로 아프지는 않다.

살아가기 위해 기억을 조작하고 왜곡하고 잊어버린다.

떠올리지 않을 때는 별 일 없이 살아가다가도 한번 떠오르는 기억은 나를 그 시간으로 침잠시킨다. 

그 당시 나와 아이에게 사람들이 어떻게 했다던지, 어떤 말을 던졌다던지, 그런 생각으로 하루를 보내며 원망하고 저주를 퍼붓기도 했다. 또는 친하지도 않던 동료의 배려 깊은 말 한마디에 또 울거나.


아이가 떠나고 나니 내가 출산한 지 백일밖에 되지 않은 산모라는 사실조차 사라지고 말았던 직장에서의 일들과 말들이 한 번씩 떠오르는 날은 곱씹고 곱씹는다. 왜 그렇게 곱씹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계속 내가 불행해야 한다는 것이 당연하게 느껴져서 인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그런 기억들이 뭘, 어쩌라고. 

누구를 원망할 수 있다면 더 좋았을까. 더 나빴을까.


이번 주말 시댁 행사가 있다. 아이의 기일은 여전히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다.

어젯밤 남편과 통화하며 본가 행사 때문에 내일은 누가 와서 어떻게 할 거고 토요일에는 몇 시에 출발할 거고, 따위의 말들만 나누었다. 통화 말미에 나는 "그런데 내일이 무슨 날인지는 알지?" 물었다.

3초 정도의 정적이 흘렀고, 겨우 기억을 떠올렸다.

그도 잊고 있었던 아이의 기일을 누구에게 기억해 달라고 해야 하는 걸까.

통화를 듣고 있던 둘째 아이는 "아빠, 그걸 까먹었어? 나도 기억하는데!" 하며 제 아빠를 타박하며 "나도 형 있었는데." 했다.

자신이 존재하기도 전에 이 세계를 떠난 형을 무슨 수로 기억할까. 

이건 마치 내가 유관순 열사를 기억하는 듯한 기분일까.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거냐고 악다구니를 쓰던 시절은 지나갔지만 여전히 나는 조금 시큰거리고 한번 울기 시작하면 멈추기가 어렵다. 


아이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가족들조차도 기억하지 못하는 건 누구의 잘못인 걸까. 혹은 누구의 잘못도 아닌 거겠지만. 

마치 볼드모트처럼 이름을 말하면 안 되는 존재라도 된 듯, 아무도 아이의 이름을 입에 올리지 않은 건 잊어버려서일까 잊기 싫어서일까.


아이의 기일에는 결론도 없는 부질없는 생각들이 가득하다. 그렇게 십 년을 지내왔으니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나만이라도 그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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