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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해 Jun 22. 2024

"엄마한테 미안하더라고요."

 새학기가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다. 이제 막 복직을 한 후 아직 적응하지 못한 건 나만이 아니었다. 우리집 둘째 어린이는 내가 집에서 출발하는 순간부터 통화상태를 유지하고 있어야 마음이 안정된단다. 그의 마음의 안정을 위해 3월 전화요금이 13만원이 나온건 알뜰폰을 쓰는 사람으로써 치욕적인 일이었다.

 통화 무제한으로 급하게 바꾸고 한달 17500원으로 그의 마음의 안정을 샀다.

 통화를 하며 출근을 한다는 것은 서로 아무 말 없이 자기 할 일을 한다는 것을 뜻한다. 주절주절 말하는 걸 좋아하는 스타일도 아니고 우리는 그저 서로의 배경소음을 들으며 각자의 삶으로 뛰어들 준비를 한다. 그 배경에 서로를 깔고.

 

 어느날은 전화기 속 넘어 어린이가 짜증을 부렸다. 나 역시 짜증이 솟구쳤지만 조금 단호하고 조금 화가 난 목소리로 "땡땡아 지금 엄마가 어떡하라는 거야. 엄마는 이제 교실인데, 땡땡이가 알아서 해야지." 글로 쓰고 보니 되게 잘 말한 것 같지만 목소리는 굉장히 공격적이었다는 점을 미리 말해둔다. 수화기 넘어 어린이가 소리를 지른다.

 교실에 일등으로 등교한 5학년 어린이는 그 상황을 조용히 응시한다. 참고로 이 어린이는 2학년때 우리반이었고, 나머지 공부를 했으며 굉장히 예민한 스타일로 내가 눈치를 많이 본다. 그래도 기분이 좋을 때는 잘 웃고 나에게 와서 조잘대기를 좋아하며 가끔씩 뜬금없는 자랑을 하기도 하는 평범한 친구다.

 

 어찌어찌 통화를 끝내고 나는 한숨을 한번 쉰 후, 괜히 5학년 어린이의 눈치를 보며 한마디 한다.

 "에휴, 자식 키우기 힘들다."

 "선생님 아들이에요?"

 "응. 빨리 커서 너네들처럼 스스로 알아서 등교하면 좋겠다."

 잠시 생각하던 5학년 어린이는 제법 의젓한 말투로 사물함에서 교과서를 꺼내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한다.

 "저도 어렸을 때는 엄마한테 짜증 많이 부렸어요. 그러고나서 자고 일어나면 아침에 엄마한테 너무 미안하더라고요."

 응? 네가 어렸을 때? 지금도 어린데.. 음 흠흠. 나는 속으로 비어져 나오는 웃음을 숨기지 못하고 하하하하 큰소리로 웃어버린다.

 "어머, 그랬구나. 우리 찡찡이에게 그런 마음이 있는 줄 몰랐네. 아이들도 엄마에게 미안하구나?"

 "그럼요. 선생님 아들도 내일되면 미안할 거에요."

 "그래. 고맙다. 위로가 되네."


 그러고서 속속 등교하는 어린이들 덕분에 우리의 대화는 더이상 이어지지 못했지만 찡찡이와의 대화는 나의 뇌리에 콕 박혀버렸다. 언젠가 글로 써야지, 라는 생각을 그 때까지만 해도 하고 있었는데 벌써 3개월이 지나버렸다. 시간은 유수와 같이 흐르고 2학년 찡찡이는 5학년 의젓이가 되었다.

 어린이에게 위로받는 시간들이 쌓이고 쌓여 우리는 모두 성장하고 있다.

 2학년 어린이도, 5학년 어린이도, 40대 어른이도.

 서로 미안해하고 살아야 그게 사는거라고.

 그러니 미안할 일을 하더라도 너무 미안해 하지는 말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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