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들갑 독일문학
호들갑 독일문학 52
- 가족과 자연스럽게 거리 두는 방법이 궁금할 때 읽으면 좋을 독일문학
한동안 잠잠하던 엄마가 또다시 결혼 잔소리를 시작했다. 일상대화를 하고 싶은데, ‘기승전결혼’으로 끝나는 엄마의 대화에 참지 못하고 화를 내면, 또 그게 영 속이 상해 친구 A에게 하소연을 늘어놓았는데...
“자식의 결혼 성사까지가 본인의 역할이라 생각하셔서 그래. 그 마음 알지만, 듣는 입장에선 힘들지. 우리 엄마도 다르지 않지만, 내가 자연스럽게 티 나지 않게 엄마와 거리 두는 법을 익혔지. 책을 읽다가 발견했는데, 엘리아스 카네티의 자서전 <자유를 찾은 혀>이었어.
어린 시절 부분을 읽는데, 완전 내가 바라던 모습이더라고. 아버지는 아들에게 소설을 선물하고, 아들은 그걸 읽고 생각을 말하고. 어머니랑은 희곡을 같이 읽으며 감상을 나누고 말이야. 그래서인지 자서전 이야기 안에 문학작품과 작가가 다양하게 등장해. 슈니츨러, 츠바이크, 고트프리트 켈러, 발저 등등 독일어권 작가에 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디킨스, 대니엘 디포 등 영미 작가, 그리고 어머니의 최애 스트린드베리까지. 당시의 분위기를 작가의 입을 빌려 들을 수 있어서 무척 흥미롭더라고.
평가는 또 어찌나 신랄하고 솔직한지 말이야. 스위스의 괴테라 불리는 켈러의 탄생 100주년 행사에 콧방귀를 껴. 뭐 나중에 <초록의 하인리히>를 읽고는 매료돼서, 200주년 행사를 바라기도 하지. 무엇보다도 어머니에 대한 언급이 흥미로운데, 슈니츨러의 작품에 빠져서 아들도 작가 겸 의사였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부분이 되게 웃기더라고. 거기에 또 작가는 어찌나 질색하는지. 엄마가 출신 가문에 대한 자부심을 표출할 때도 작가는 냉정하게 엄마를 평가하고 그러더라고. 그런 부분들이 소소하게 재미있더라고. 그래도 용돈을 모아서 엄마가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선물해 주면서 적당한 거리감을 조절하더라고. 여기서 내가 힌트를 얻었는데 말이야. 엄마의 취향에 반기를 드는 말을 하면 서서히 조용히 멀어지더라고.
너도 어머니가 가장 좋아하는 드라마나 트로트가수에 대한 평가를 신랄하게 해보란 말이지. 어느 순간 연락이 뜸해질걸? 엄마한테 이 방법이 통했단 말이야. 너도 성공하길 바라마...”
괜찮은 방법이다 싶었는데 엄마가 좋아하는 게 뭔지 몰라 난감해지기 시작했다. 일단 엄마의 취향을 파악해야 하는데, 과연 잔소리 없이 대화가 마무리될 것인지.
<자유를 찾은 혀 / 엘리아스 카네티(김진숙 옮김)/ 문학과지성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