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들갑 독일문학
호들갑 독일문학 55
- 유능한 변호사의 덕목이 궁금할 때 참고해 볼 만한 독일문학
친구 여럿이서 모여 희곡을 낭독하는 모임을 비정기적으로 하고 있다. 주로 한국 현대 창작극으로 하다가 고전이나 해외작품을 해보자는 의견이 나와 친구 A에게 추천해달라 요청했는데.....
“독일 희곡은 대체로 주제가 무겁고 어두운 편인데, ‘통속 오락극’이라 평가될 만큼 밝고 도파민 폭발하는 희곡이 있더라고. 쿠르트 괴츠의 <호쿠스포쿠스>라는 작품이야. 아그다라는 여성이 자신의 남편을 살해했다는 죄목으로 법정에 서게 돼. 근데, 수상한 점이 많고, 법정에서 진술도 여러 번 바꾸고, 심지어 남편을 잃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졌다고 하고. 그러니깐 전형적인 남편을 잃은 여성상에서 벗어나서 더욱 의심받는 상황에서 벌어지는 재판 이야기이야. 피고인의 태도에 의구심이 생긴 변호사는 결국 사임하고 새로운 변호사가 등장해. 도파민 터진다고 했잖아. 바로 이 새로운 변호사가 도파민의 주요한 역할을 하지. 총 4막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일단 1막을 지나면 멈출 수 없이 4막까지 달리고 있을 거야.
아그다의 새로운 변호사는 변호를 예술로 보이게끔 전략이 다양하게 펼쳐. 희곡은 공판 전날 재판장의 집을 배경으로 이야기가 시작되거든. 이때부터 벌써 변호사의 전략은 펼쳐지지. 우리가 믿는 것은 무엇일까? 결국은 믿고 싶은 대로 믿는 게 아닐까? 정황과 증거들이 너무나도 뻔하게 아그다에게 불리하게 적용되는데, 사실 다른 시각에서 보면 그럴 수도 있단 생각이 들어. 우리는 과연 무엇을 믿을 것인가. 객관성이라는 건 정말로 존재하는 개념일까? 이런 상황에서 과연 유능한 변호사는 어떤 전략을 펼칠 것인가! 여기에 새로운 변호사는 우리를 실망하게 하지 않지. 전략이 진짜 너무 유쾌하고 재미있어서 친구들끼리 낭독하기에 좋을 거 같아. 근데 읽다 보면 왜 제목이 호쿠스포쿠스일까하는 의구심이 들 거야. 호쿠스포쿠스는 라틴어로 마술 주문이라고 하더라고. 수리수리마수리, 윙가디움 레비오사, 비비디바비디부 같은 거 말이야. 마지막 장을 덮으면 제목을 이렇게 지은 이유를 알 수 있게 될 거야. 근데, 너 왜 나한테는 낭독모임같이하자고 안한거야?...”
아뿔싸! 이 모임은 친구 A에게는 비밀로 하고 시작하게 된건데, 다른 이유는 아니고, 책 얘기가 나오면 끝도 없이 책 얘기를 쏟아내니깐 내향인들이 쉽게 지쳐버린 탓에 내향인들끼리만 모여서 하자고 한건데. 아. 나는 어떤 전략으로 이 상황을 모면해야하는가...
<호쿠스포쿠스/ 쿠르트 괴츠(이재준 옮김)/ 지만지드라마>